| 네덜란드의 前 축구 선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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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bgcolor=#eee><colcolor=#000,#e5e5e5> 이름 | 테오 판뒤펀보더 Theo van Duivenbode | |
| 본명 | 테오도뤼스 판뒤펀보더 Theodorus van Duivenbode | |
| 출생 | 1943년 11월 1일 ([age(1943-11-01)]세) | |
| 네덜란드 국가판무관부 암스테르담 | ||
| 국적 | | |
| 신체 | 키 181cm|체중 미상 | |
| 직업 | 축구 선수 (수비수[1] / 은퇴) 사업가 | |
| 소속 | <colbgcolor=#eee> 선수 | DWS (?~? / 유스) VVA/스파르탄 (1964 / 유스) AFC 아약스 (1964~1969) 페예노르트 로테르담 (1969~1973) HFC 하를럼 (1973~1974) |
| 국가대표 | 5경기 (네덜란드 / 1968~1970) | |
1. 개요
네덜란드의 前 축구 선수. 암스테르담 출신으로 아약스와 페예노르트에서 활약했으며, 1970년 페예노르트의 유러피언컵과 인터컨티넨탈컵 우승에 기여했다. 참고로 유러피언컵 결승전에서 준우승을 기록한 뒤 곧바로 우승을 차지한 최초의 선수다.[2]2. 선수 경력
2.1. 클럽경력
암스테르담에서 태어난 판뒤펀보더는 1964년 5월 3일 고향 클럽 아약스에서 스파르타를 상대로 성인팀 데뷔를 했다. 그렇게 아약스에서 꾸준히 활약하던 판뒤펀보더는 1968-69 유러피언컵에서 아약스 최초의 결승 진출에 공헌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69년 밀란과의 1969 유러피언컵 결승전에서 패배한 후 감독 리누스 미헬스에게 경기력이 충분히 강하지 않다고 판단되었다.이후 판뒤펀보더는 아약스의 라이벌 클럽인 페예노르트로 이적했다. 그는 에디 피터르스 흐라플란트와 헹크 흐로트 이후 페예노르트로 이적한 세 번째 아약스 선수였다. 1969년 11월 2일 그는 페예노르트 유니폼을 입고 첫 더 클라시케르에서 친정팀을 상대로 유일한 골을 넣었다. 판뒤펀보더는 페예노르트에서도 좋은 활약을 펼쳤다. 그는 1969-70 유러피언컵에서 페예노르트의 첫 결승 진출을 이끌었고, 1970년 셀틱과의 1970 유러피언컵 결승전에서 승리하며 처음으로 국제 대회 우승 트로피를 획득했다.[3]
그는 하를럼에서 겨우 30세의 나이에 선수 생활을 마쳤으며, 마지막 경기는 1974년 12월 엑셀시오르 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