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前 축구 선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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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ee><colcolor=#000,#e5e5e5> 이름 | 클라우디오 비차리 Claudio Bizzarri | |
출생 | 1933년 12월 21일 | |
이탈리아 왕국 치비타노바마르케 | ||
사망 | 2016년 11월 6일 (향년 82세) | |
이탈리아 포르토산텔피디오 | ||
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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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 키 미상|체중 미상 | |
직업 | 축구 선수 (공격수 / 은퇴) | |
소속 | <colbgcolor=#eee> 선수 | 치비타노베세 (1951~1952) AC 베네치아 (1952~1954) ACF 피오렌티나 (1954~1958) SS 라치오 (1958~1963) 치비타노베세 (1963~1964) 마체라테세 (1964~1965) |
국가대표 | 없음 |
1. 개요
이탈리아의 前 축구 선수. 센터포워드로 활약하며 피오렌티나와 라치오에서 뛰어난 득점력을 보여준 공격수였다. 피오렌티나에서는 팀의 1955-56 시즌 세리에 A 우승과 1957년 유러피언컵 결승 진출에 기여했으며, 라치오에서는 1958년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끌었다. 마르케 주 출신으로 고향팀 치비타노베세에서 시작해 이탈리아 최고 무대에서 활약한 후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2. 선수 경력
2.1. 클럽
1933년 12월 21일 이탈리아 왕국의 마르케 주 치비타노바마르케에서 태어난 비차리는 1951년 고향팀 치비타노베세에서 축구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치비타노베세는 마르케 주 프로모치오네 레지오날레에서 활동하고 있었다.1952년 AC 베네치아로 이적한 비차리는 2년간 40경기에 출전해 11골을 기록하며 재능을 입증했다. 이 활약을 바탕으로 1954년 당시 이탈리아 최강팀 중 하나였던 피오렌티나로 이적하게 되었다.
피오렌티나에서 비차리는 풀비오 베르나르디니 감독 밑에서 기술과 전술적 이해도를 크게 발전시켰다. 4년간 67경기에 출전해 19골을 기록한 그는 팀의 황금기를 함께했다. 1955-56 시즌에는 피오렌티나의 첫 세리에 A 우승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으며, 1956-57 유러피언컵에서는 이탈리아 클럽 최초로 결승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결승전에서는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가 이끄는 레알 마드리드에게 패했지만, 이탈리아 축구사에 한 획을 그은 업적이었다. 또한 1956-57 시즌에는 코파 그라스호퍼스 국제 토너먼트에서도 우승을 차지했다.
1958년 비차리는 다시 베르나르디니 감독을 따라 라치오로 이적했다. 로마에서의 5년간은 그의 선수 생활 중 가장 안정적인 시기였다. 109경기에 출전해 19골을 기록하며 팀의 주력 공격수로 활약했고, 한때 팀의 주장을 맡기도 했다. 1958년 라치오 이적 첫 해에 1958 코파 이탈리아에서 우승을 차지했는데, 결승에서 1-0으로 꺾은 상대는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전 소속팀인 피오렌티나였다.
1963년 라치오에서의 마지막 시즌을 마친 후, 비차리는 고향으로 돌아와 치비타노베세에서 다시 뛰기 시작했다. 이후 마체라테세에서 1964-65 시즌을 보낸 후 다시 치비타노베세로 돌아와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2.2. 국가대표
비차리는 이탈리아 B대표팀에 차출되어 경기에 출전한 기록이 있지만, A대표팀 출전 기록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이탈리아 공격진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A대표팀 진입에는 실패했다.은퇴 후 비차리는 고향인 마르케 주에서 생활했으며, 2016년 11월 6일 포르토산텔피디오에서 8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