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크리핑(Creeping)은 토크 컨버터가 내장된 완전 자동변속기 장착 차량에서만 나타나는 특징이자 현상이다. 잘 활용하면 운전 시에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 되기도 한다.2. 원리
'Creep'는 영어로 '살금살금 움직이다', '살살 기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이다. 크리핑 현상은 단어 그대로 액셀러레이터 조작을 하지 않았음에도 차가 포복 전진하는 것처럼 천천히 움직이는 것을 말한다. 물론 무작정 차가 움직이는 것은 아니며, 주행 모드인 D, 3, 2, L 같은 모드에서만 크리핑 현상이 생긴다. N(중립)에서 차가 움직인다면 차가 완전한 정차 상태가 아니거나, 평지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이처럼 액셀러레이터를 밟으면 가고 브레이크를 밟으면 선다는 매우 당연한 이치를 벗어난 현상이 벌어지는 이유는 토크 컨버터 때문이다. 토크 컨버터는 엔진과 변속기 사이에서 유체를 이용하여 동력을 단속하는 역할을 하는데, 브레이크를 잡게 될 경우 토크 컨버터와 변속기 사이의 동력 전달을 멈추게 된다. 하지만 입력측(엔진-토크 컨버터)에서는 Idle 상태에서도 계속 동력이 전달되고 있으므로, 브레이크를 잡지 않는 경우 이 동력이 반대편에 전달되어 차가 조금씩 움직이게 된다. 즉, 크리핑 현상은 토크 컨버터가 있기에 생기는 부수적인 효과이기 때문에 토크 컨버터가 없는 수동변속기 장착 차량, AMT[1] 장착 차량, 모터가 장착된 전기자동차[2]에서는 이 현상이 생기지 않는다. 이러한 차량만 조작하던 사람이 자동변속기 차량을 몰게 될 경우 저절로 슬슬 기어가는 차량 때문에 잠시 혼란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해당 차량들은 주차 시, 도로 정체 시 등의 다양한 상황에서 운전자의 편의를 위해 크리핑 현상을 일부러 구현해놓은 경우가 많다.
이 크리핑 현상 때문에 자동변속기 차량은 정차 중 반드시 브레이크 페달을 밟고 있어야 하며, 브레이크 페달에서 안전하게 발을 떼려면 오토 홀드 기능을 사용하거나 기어를 P 또는 N으로 옮긴 후 주차 브레이크를 체결해야 한다. 이를 모르거나 주의하지 않으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차량이 앞으로 스르륵 기어가면서 매우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는데, 가장 극단적인 사례가 인천외고 운동장 교통사고이다.
동력이 적은 부분만 전달된다는 점에서는 수동변속기 차량 운용시 정지상태에서 반클러치를 쓰는 것과 대체로 같다.
수동변속 이륜자동차의 경우 클러치 레버(케이블)을 완전히 당겨도 대체로 클러치 디스크가 미세하게 스치도록 세팅하는 것이 기본이기 때문에 중립기어가 아닌 이상 미세하게 동력이 전달되고 있다. 그러나 더 당겨서 완전히 떼어도 일반적인 수동변속이륜차는 오일이 들어차있는 습식 다판 클러치를 사용하기 때문에 유체 회전에 의해 토크컨버터처럼 어느정도 동력이 전달된다. 센터스탠드가 있는 모델에서 시동을 걸고 1단을 넣고 클러치를 완전히 떼도 후륜이 회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엔진의 토크가 자동차보다 강하지 않고 미세하게만 전달되기 때문에 그정도의 동력만으로는 전진할 수 없으며 띄워놓은 상태에서만 확인 가능하다. 모터사이클 변속기에 1단을 넣었을 때 덜컥 하고 충격과 함께 들어가는 이유이기도 하며 이는 배기량(=토크)가 클 수록 심해져 스쿠터 종류만 몰다 수동변속기 입문을 250~400cc급으로 하는 사람들이 당황하기도 한다.
3. 운전 기술로 활용
여기까지만 읽으면 왜 이러한 현상을 아직까지 해결하지 않는지 의아해할 수 있지만, 이 현상을 잘 이해하면 운전 기술로 활용할 수 있다. 차량이 조금씩 앞으로 전진하는 만큼 정체 상태에서는 불필요한 가속 페달 조작 없이 브레이크 조작만으로 차를 천천히 움직일 수 있어 몸의 피로가 줄어든다. 토크 컨버터를 '재미 없는 운전', '비효율적인 변속기'라고 평가절하하는 몇몇 수동변속기 운전자들도 명절 고속도로나 출퇴근 시간의 시내처럼 정체가 보통 긴 것이 아닐 때는 토크 컨버터 차량을 부러워하게 된다.[3] 또 주차를 할 때도 가속 페달을 밟을 필요 없이 브레이크 조작만 신경쓰면 되니 훨씬 편하다. 그 외에도 멈춰 있던 차를 출발할 때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자마자 액셀을 밟기보다는 크리핑 현상을 이용해 천천히 가속을 준 다음에 액셀을 밟으면 부드러운 출발이 가능하며, 오르막길에서 약간의 밀림 방지 효과를 제공하는 효과도 있어 경사로 밀림 방지 장치가 따로 갖춰지지 않은 차량을 운전하더라도 뒤로 밀려내려갈 위험이 낮다.크리핑이 비록 자동변속기의 부수적인 현상이긴 하지만 하나의 운전 기술로 자리잡을 정도로 활용도가 높은 만큼, 구조적으로 크리핑 현상이 발생할 리가 없는 전기자동차나 듀얼 클러치 변속기 차량에도 이를 인위적으로 구현해 두는 경우가 있다. 물론 모든 차량에 크리핑이 구현되어 있는 것은 아니고, 원래 없는 기능을 모방해서 재현한 것이기 때문에 크리핑 자체가 약하거나 이질감이 있는 경우도 있다. 일부 전기자동차는 이러한 인위적인 크리핑의 사용 여부를 선택할 수 있도록 설정을 제공하기도 한다. 특히 원 페달 드라이빙을 지원하는 차량들은 해당 모드 사용시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면 자연스럽게 브레이크가 들어가기 때문에 크리핑이 사라진다.
수동 변속기 차량도 1단 상태에서 반클러치를 유지하면 차가 움직이는 현상을 볼 수 있는데, 이 반클러치 상태가 정확히 자동변속기 차량에서 크리핑이 일어나는 때와 같은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유체로 연결된 토크 컨버터와 달리 수동 변속기의 클러치는 물리적으로 마찰하는 부품이므로, 반클러치를 오래 유지하면 클러치판의 수명이 아주 빠르게 깎여나가게 되므로 주의. 위에서 언급한 듀얼 클러치 변속기 또한 주행 기어 상태에서 가속 페달을 밟지 않고 출발하면 반클러치 상태로 크리핑하게 되므로[4] 일반적인 자동변속기 차량을 몰던 운전자라면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운전면허 2종 보통 자동 기능시험을 매우 편하게 해 주는 고마운 존재이기도 하다. 가속이 반드시 필요한 구간(경사로·가속 구간)을 제외하면 액셀 페달을 전혀 밟지 않아도 제한시간(9분 50초) 내에 코스를 모두 돌 수 있기 때문. 심지어 대부분의 학원에서도 경사로 및 가속구간 외에는 굳이 액셀을 밟지 말라고 가르치는데, 괜히 불필요하게 엑셀을 밟았다가는 도리어 과속으로 감점될 수 있기 때문이다.
크레용 신짱에서 미사에가 신짱을 차에 두고 쇼핑을 갔는데 하필 차가 자동변속기라서 신짱이 잠에서 깨 운전석으로 가서 기어를 D로 맞추고 주차 브레이크를 풀어서 운전하는 에피소드가 있다.[5][6] 물론 요즘 차량들은 안전 장치로 브레이크를 밟아야만 기어를 P에서 이동할 수 있게 되어있기 때문에 웬만한 어린 아이들은 조작하지 못한다고는 하지만, 혹시 모르니 무조건 P단으로 해 놓고 어지간하면 사이드 브레이크까지 채우고 내리자.
[1] DCT 포함.[2]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전기 주행 모드 포함[3] 운전 면허가 없거나 자동 면허만 취득한 사람의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클러치 조작은 기어 변속 시에만 하는 것이 아닌 정지/출발 상황에서도 해야 한다. 클러치를 밟지 않고 차량을 완전히 정지시키면 차량이 심하게 흔들리면서 엔진이 꺼진다! 때문에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정체 상황에서는 클러치를 조작하는 왼발의 피로가 매우 심하다. 그래서 몇몇 수동 변속기 운전자들은 장시간 정체시에는 아예 기어를 중립으로 두기도 한다.[4] 특히 토크 컨버터 차량처럼 브레이크를 밟은 상태로 크리핑하는 것은 듀얼 클러치 변속기, 특히 건식DCT의 수명에 가장 치명적이다. 습식도 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으나 어느정도 상황은 나은 편.[5] 애니판과 원작의 결말이 다르다. 애니판은 안전 펜스에 부딪히기 전에 신짱이 주차 브레이크를 걸어서 멈추자 미사에가 타일렀다. 하지만 헤드 라이트를 켜놔서 쇼핑이 끝나자 주먹돌리기를 당한다. 원작은 그걸 발견하고 "너 죽고 싶어 환장했어?"라고 혼을 낸다(...)[6] 애니판에선 치는 드립도 가관인 게 엄마랑 여자아이가 손잡고 지나가는데 그 옆에서 운전하면서 “HEY 아가씨들! 나랑 드라이브 안 갈래?”(…)라고 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