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7-15 20:23:36

크레시미르 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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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판 1세 페타르 크레시미르 4세
드미타르 즈보니미르 스테판 2세 라슬로 1세 페타르 스나치치 }}}}}}}}}}}}}}}

<colbgcolor=#f00><colcolor=#fff> 크로아트 8대 국왕
크레시미르 3세
Krešimir III.
제호 크레시미르 3세
(Krešimir III.)
출생 미상
사망 1030년
재위 크로아트 왕국의 국왕
1000년 ~ 1030년

1. 개요2. 행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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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크로아트 왕국 8대 국왕. 형제 고이슬라브와 공동 왕이다.

2. 행적

크로아트 왕국 6대 국왕 스테판 드르지슬라브의 아들이다. 996년 또는 997년, 스테판은 사망하기 전에 장남 스베토슬라브 수로냐를 공동 통치자로 삼아 왕위를 계승하도록 했고, 두 아들인 크레시미르 3세와 고이슬라브를 각자 특징 지역의 반(Ban)으로서 통치하게 했다. 그러나 스베토슬라브는 아버지의 뜻을 따르지 않고 크로아티아 전역에서 통치를 행사했다. 이에 반감을 품은 크레시미르 3세는 고이슬라브와 함께 불가리아 제1제국차르 사무일과 동맹을 맺고 스베토슬라브를 축출하기로 했다.

사무일은 자신의 최대 적수인 동로마 제국과 동맹을 맺고 있는 스베토슬라브를 전복하는 걸 도와주기로 하고, 998년 크로아티아를 침공해 스플리트, 트로기르, 자다르까지 공략한 뒤 보스니아와 라슈카를 거쳐 불가리아로 돌아갔다. 사무일은 자기가 점령한 크로아티아 영역을 두 형제에게 넘겼다. 1,000년, 크레시미르 3세는 고이슬라브와 함께 공세를 개시해 스베토슬라브를 축출하고 크로아트 왕국의 공동 왕이 되었다.

한편, 베네치아 도제 피에트로 2세 오르세올로는 스플리트, 트로기르, 비오그라드 등 해안 도시들과 크르크, 크레스, 라브, 코르출라, 라스토보 섬 주민들의 보호 요청에 따라 그곳을 빠르게 접수했다. 여기에 자다르도 네레트바의 크로아티아인들이 998년 자다르 시민 40명을 생포한 뒤 베네치아의 보호를 받아들였다. 또한 트로기르로 피신한 스베토슬라브의 아들 스테판 스베토슬라비치와 자기 딸인 히셀라 오르세올로의 결혼을 실시했다. 이리하여 달마티아 전역이 베네치아 공화국의 손아귀에 놓였고, 동로마 제국 황제 바실리오스 2세는 사무일과의 전쟁에서 베네치아 공화국의 협조를 받기 위해 베네치아 도제가 달마티아 대공으로서 주권을 행사하는 걸 받아들였다.

크레시미르 3세와 고이슬라브는 달마티아를 탈환하려고 몇 차례 무력 원정을 벌였고, 1018년까지 오소르(Osor), 크르크(Krk) 및 라브(Rab) 등 섬 지역을 제외한 달마티아 일대를 탈환했다. 1018년 불가리아 제1제국이 바실리오스 2세에게 멸망한 뒤, 바실리오스 2세가 양자간의 대립을 중재했다. 불가리아를 정복하면서 발칸 반도의 패권을 확립한 동로마 제국을 감히 거역할 수 없었던 두 형제는 베네치아 공화국과 평화 협약을 맺었고, 동로마 제국의 가신이 되었다. 1020년 고이슬라브가 사망하면서 단독 통치자가 되었다. 1027년, 베네치아 공화국과 헝가리 왕국은 스베토슬라브 수로냐의 아들인 스테판 스베토슬라비치를 지원해, 그가 크로아티아 동부 일대를 장악하는 걸 도왔다. 그 후 스테판 스베테슬라비치의 후손들은 슬라보니아 공작을 대대로 자처하면서, 크로아티아 국왕을 명목상 주권자로 받들면서도 광범위한 자치를 누렸다.

1030년 크레시미르 3세는 사망했고, 솔린의 성 베드로 교회에 안장되었다. 사후 아들 스테판 1세가 왕위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