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슬란드의 前 축구선수 | ||
콜베인 시그소르손 Kolbeinn Sigþórsson | ||
<colbgcolor=#eeeeee,#191919> 출생 | 1990년 3월 14일 ([age(1990-03-14)]세)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 | |
국적 | [[아이슬란드| ]][[틀:국기| ]][[틀:국기| ]] | |
신장 | 186cm, 76kg | |
포지션 | 스트라이커 | |
유스팀 | 비킹귀르 (1996~2006) HK (2006~2007) AZ 알크마르 (2007~2010) | |
소속 클럽 | HK 코파보귀르 (2006~2007) AZ 알크마르 (2010~2011) AFC 아약스 (2011~2015) → 용 아약스 (2015) FC 낭트 (2015~2019) → 갈라타사라이 SK (2016 / 임대) → FC 낭트 B (2018) AIK 포트볼 (2019~2020) IFK 예테보리 (2021) | |
국가 대표 | 64경기 26골[1] (아이슬란드 / 2010~20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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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이슬란드의 前 축구선수.자국의 레전드인 아이두르 구드욘센에 이은 아이슬란드 축구 국가대표팀의 간판 스트라이커로서 데뷔 초기부터 촉망받는 유망주로 이름을 날리며 많은 기대감을 드러냈으나 정작 부상이 커리어의 발목을 잡으면서 안타깝게도 성장이 정체된 선수이다.
2. 클럽 경력
그는 아이슬란드의 축구팀 비킨구르에서 축구를 시작한다. 10년간 비킨구르의 아카데미팀에서 축구 실력을 배양한 그는 2006년 3월에 HK 코파보귀르로 팀을 옮긴다. 그리고 2006 시즌, 16살의 나이에 프로 무대에 데뷔한다. 데뷔 시즌에 5경기동안 1골을 기록한 시그도르손은 레알 마드리드 CF와 아스날 FC의 관심을 받기도 했으며 실제로 트라이얼에 참가하기도 했으나 결과적으로는 AZ 알크마르에 입단하게 된다.2.1. AZ 알크마르
2007년 3월, 그는 에레디비시의 AZ 알크마르에 입단한 뒤 유소년 팀에서 3년간 실력을 쌓는다. 남다른 재능으로 유스팀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시그도르손은 2010-11 시즌을 앞두고 본격적으로 퍼스트 팀에 콜업된다. 2010년 8월 5일, IFK 예테보리와의 UEFA 유로파 리그 예선경기에서 첫 경기를 가진 뒤 29일에는 엑셀시오르전에서 데뷔골을 기록했다. 데뷔 시즌에도 불구하고 팀의 주포로 거듭난 그는 VVV 펜로전에서는 전반전에만 3골을 득점하는 등 폭발적인 득점력을 과시했다.인상적인 그의 활약에 구단은 재계약을 제의했으나 본인은 거절한다. 그 사이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 뉴캐슬 유나이티드 그리고 리그내 강호인 AFC 아약스가 그에게 관심을 보였고 아약스는 200만 유로라는 구체적인 액수까지 제시하며 적극적인 영입 의지를 드러냈다. 선수와 아약스는 이미 개인합의를 본 상태였으나 AZ 측에서 몇 주간 이적료에 동의하지 않으면서 이적이 지연되기도 했다.
2.2. AFC 아약스
2011년 7월 4일, AZ는 450만 파운드에 AFC 아약스로 이적을 동의했음을 발표한다. 그는 이적 후 인터뷰에서 데니스 베르캄프와 프랑크 더부어의 밑에서 축구를 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고 밝혔다. 바로 팀의 프리시즌에 합류한 그는 브뢴뷔 IF전에서 헤딩골을 기록하는 등 순조롭게 적응했다. 아약스에서의 공식 데뷔전은 요한 크루이프 스할 FC 트벤터전이었고 팀은 1:2로 패했다. 8월 14일, SC 헤이렌베인전에서 첫 득점을 가동한 후 VVV 펜로, SBV 피테서와의 경기에서도 골을 성공시키면서 4경기 4골 순조로운 출발을 보였다. 그러다 10월에 발목 골절로 인해 잔여 시즌에 나서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고 만다. 그러나 이듬해 3월 12일, 빠른 회복력을 보여준 덕분에 훈련에 복귀할 수 있었다. 그리고 4월 1일에 헤라클레스 알멜로전에 교체로 출전한 뒤 득점까지 기록하며 6:0 대승을 견인하는 등 만족스러운 복귀전을 치렀다.다음 시즌에도 크고 작은 부상으로 많은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으나 나올때 마다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2013-14 시즌에는 모처럼 부상없이 풀타임 시즌을 소화하며 건강함을 입증했다. 2014-15 시즌까지 아약스에서 뛴 그는 105경기동안 35골을 기록했다.
2.3. FC 낭트
2015년 7월 2일, 프랑스 리그 1의 FC 낭트와 350만 유로의 이적료에 5년 계약을 채결하며 빅리그 무대로 진출한다. 등번호 9번을 배정받은 시그도르손은 시즌 내내 주전 스트라이커로 출전했지만 리그 26경기동안 3골이라는 처참한 득점력을 선보였다. 결국 33라운드 스타드 랭스전 이후로 마지막 5경기 동안은 아예 명단에서 제외되는 등 고초를 겪기도 했다.첫 시즌에서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 뒤 터키 쉬페르 리그의 갈라타사라이 SK로 1년간 임대를 떠났지만 단 한경기도 출전하지 못하고 그 해 12월에 원소속팀으로 복귀해야했다.
설상가상으로 2017년 초, 반월상연골 파열로 인해 다시 한번 장기간 재활에 들어갔고 2018년 3월이 돼서야 부상을 털고 리저브 팀에서 경기를 치를 수 있었다. 그리고 2018년 5월 12일, 리그 1 37라운드 앙제 SCO와의 경기에서 후반 37분에 교체투입되며 19개월여만에 1군 무대에 복귀했다.
그는 두 차례의 장기부상을 겪으며 폼이 심각하게 무너진 상태였고 2018-19 시즌에는 단 한경기도 나서지 못한다. 결국 2019년 3월 8일, 낭트와 상호 계약해지하며 팀을 떠난다.
2.4. AIK 포트볼
낭트를 떠난지 약 3주만에 스웨덴 최상위리그인 알스벤스칸의 AIK 포트볼에 입단한다. 계약기간은 2021년 12월 31일까지다.2.5. IFK 예테보리
2021년 1월 27일, 포트볼에서 2시즌간 활약한 그는 같은 리그팀인 IFK 예테보리와 올 연말까지 단기계약을 맺고 이적했다.3. 국가대표 경력
길피 시구르드손, 아론 군나르손과 더불어 '인도어 키즈'[2] 라고 불리는 아이슬란드 축구 황금세대의 대표주자였다. 당연히 연령대 대표팀을 두루두루 거치며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고 2011년에는 UEFA U-21 챔피언십에 출전하기도 했다.
2010년 3월 21일, 페로 제도전에서 성인대표팀 첫 경기를 치른 시그도르손은 전반 37분에 데뷔골까지 기록하며 팀의 2:0 승리를 기여하는 등 A매치 데뷔전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주었다. 이후 A대표팀의 핵심 스트라이커로 거듭나며 많은 득점을 기록한다. 특히 2012년 5월 27일 프랑스 원정에서 치른 프랑스와의 친선전에는 2:0으로 앞서나가는 득점을 성공시키며 잠시동안 뢰 블레의 간담을 서늘게 하기도 했다. 이후 팀은 내리 3골을 내주며 2:3으로 아쉬운 역전패를 당했으나 경기 내내 보여준 그의 활약에 많은 축구팬들이 감탄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4골을 기록하며 팀의 플레이오프 진출을 이끌었으나 크로아티아에게 발목을 잡히며 아쉽게도 생애 첫 월드컵 본선진출은 좌절되었다.
이후 철지부심하여 UEFA 유로 2016 지역예선에서 여전히 팀의 주전 스트라이커로 활약했고 역사상 최초로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 본선행에 큰 기여를 한다. 그리고 본선무대에 참가한 그는 잉글랜드와의 16강전에서 역전골을 기록하며 팀의 8강행을 이끌었다. 비록 8강에서 개최국 프랑스를 만나 2:5로 대패했지만 만회골을 기록하기도 했다.
유로 대회 마친 뒤에는 상술했듯이 반월상연골 파열이라는 큰 부상을 겪으며 한동안 대표팀에서 볼 수 없었고 조국의 역사적인 첫 월드컵 본선 무대에도 동행 할 수 없었다.[3]
부상 회복 후에는 다시 대표팀에 소집되고 있으나 장기 부상으로 실력이 예전만큼은 아니여서 큰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1] 아이슬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최다 득점자.[2] 아이슬란드의 기후 특성상 실외 축구가 불가능해지면서 협회측에서 실내 축구시설에 대대적인 투자를 했는데 여기서 축구를 시작한 첫 세대를 말한다.[3] 조국의 월드컵 본선 첫 골의 주인공은 알프레드 핀보가손이었는데 그가 시그도르손의 백업이었던 걸 생각하면 더욱 아쉬운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