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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랍어 القنيطرة베르베르어 ⵇⵏⵉⵟIIiI
영어, 프랑스어 Kenitra
모로코 중부의 도시. 수도 라바트에서 북쪽으로 30km 떨어진 세부 강 하류의 남안에 위치한다. 인구는 45만명으로 모로코에서 9번째로 큰 도시이고 케니트라 주의 주도이다. 지명은 아랍어로 '교량'을 의미하는 칸타라 (قنطرة)의 축소형으로, 쿠웨이트나 주바일의 지명과 같은 원리이다. 비옥한 세부 강 하류 평원에 자리하여 역사가 깊다. 고대에는 동북쪽의 타무시다 유적, 중세에는 서쪽 하구의 카스바 메흐디야가 일대의 중심이었다.
현재의 시가지는 1912년 프랑스령 모로코의 병영 도시로 세워졌고, 1932 ~ 1956년에는 초대 모로코 총독 위베르 리요테의 이름을 딴 포르 리요테 (Port Lyautey)라 불렸다. 냉전기에는 미군 기지가 있었고, 현재도 도시 북쪽에 모로코 공군 기지가 있다. 시가지 남쪽에는 이븐 토파일 대학교와 철도역이 있고, 동쪽 12km 지점에는 산업 단지인 대서양 자유 경제구와 1975년까지 미군이 주둔한 시디 야흐야 군 통신 시설이 있다. 자체적인 공항은 없으나 서남쪽 20km 거리의 라바트-살레 국제공항을 이용한다. 기후는 선선하여 여름에도 30도를 잘 넘지 않고 겨울에는 0도 대까지 떨어진다.
2. 역사
타무시다 유적지
모로코 최대의 곡창 지대를 지나고, 북부와 중북부의 경계를 이루는 세부 강 하류 일대는 고대부터 중시되었고, 케니트라 동북쪽 7km 지점에 페니키아 ~ 로마 제국기에 세워진 타무시다 유적이 남아있다. 타무시다는 로마령 마우레타니아 팅기타나 주 최대의 군사 기지였다. 7천의 인구를 자랑하던 기독교계 도시 타무시다는 285년 디오클레티아누스가 리메스 (방어선)를 북쪽의 리쿠스 (현 라라슈)로 옮기며 버려졌다. 그리고 425년경 반달족의 침공으로 폐허가 되었고, 1913년과 1959-62년에 발굴되었다. 12세기 무와히드 왕조의 칼리파 아브드 알 무민이 세부 강 하구에 라바트에 이은 해안 성채로써 카스바 마흐디야를 건립하였고, 항만 시설을 더하였다. 1515년 포르투갈 제국이 점령했으나 1562년 축출되었다.
2.1. 근대
카스바 메흐디야의 성문. 1942년 포르 리요테 전투 당시 일부 파괴되었다가 후일 복원되었다
17세기 메흐디야 성채는 살레와 함께 해적의 거점이었다가, 1614년 스페인 제국이 점령하여 현재의 뾰족한 형태로 증축되었다. 1681년 스페인을 축출하고 일대를 수복한 알라위 왕조의 술탄 이스마일 빈 샤리프 (물라이 이스마일)는 성벽을 보강하고 보물고와 모스크, 마드라사, 병영, 마굿간, 여관 등을 세웠다. 현재의 도시는 1912년, 현지인 반란을 진압한 모로코 총독 위베르 리요테 (부임 : 1912년 ~ 1925년)가 성채에서 동쪽으로 3km 떨어진 곳에 프랑스 군 병영을 세운 것에서 비롯되었다. 이듬해 세부 강 하류에 항구가 설립되었고, 모로코의 주요 항구 중 하나로 부상하였다. 현지 지명인 케니트라는 동쪽 외곽의 푸아라트 호수에 있던 수도교에서 유래되었는데, 1928년 파괴되었고 5년 후 프랑스식 지명인 포르 리요테로 개칭되었다.
2.2. 현대
케니트라 공군 기지 (크로우 필드) |
2차 대전 중인 1942년 11월, 횃불 작전 당시 미군은 사피와 함께 세부 강 하구에 상륙하였고 비시 프랑스 해군과의 포르 리요테 해전이 벌어졌다. 전투 결과 미군 79명, 프랑스군 5백여명이 전사하였다. 종전 후에도 포르 리요테는 미국 해군 기지로 남았고, 미군 내에서는 크로우 필드라 지칭되었다. 1947년 공식적으로 프랑스령 모로코에 반환된 이후로도 미군은 계속 주둔하였고, 한때 1만 인원이 상주하여 일본외 해외 미군 기지 중 최대 규모였다. 냉전기에는 해군 뿐만 아니라 공군까지 주둔하도록 확장되었다. 1956년 모로코가 독립하여 포르 리요테가 케니트라로 회복된 후 기지는 모로코 군과 공유되었다. 1977년 해군 기지에 이어 냉전 후인 1991년 공군 기지 역시 완전 반환되며 미군은 모두 철수하였고, 현재는 모로코 공군 기지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