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菅野ひろゆき[1](1968.5.8 ~ 2011.12.19)일본의 시나리오 라이터. 도쿄 도 출신.
주된 활동 분야는 미스터리 장르의 에로게 시나리오 집필이다. 특히 오컬트나 SF적인 소재를 결합한 특수설정 미스터리를 주로 다룬다.
일본의 에로게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로 그때까지 그냥 야한 일러스트에만 집중했던 에로게 업계에 완성도 높은 시나리오를 선보이는 파격적인 행보를 통해 그때까지 말 그대로 야겜에 불과했던 에로게를 보다 한 차원 위로 끌어올렸다고 평가받는 사람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자신이 설립한 게임 회사 아벨의 경영을 막장으로 하여 게이머들에게 비난을 받는 사람이기도 했다.
2011년 12월 19일. 뇌경색 및 뇌출혈로 사망했다.(#)
2. 경력
2.1. 시즈웨어 시절
원래는 프로그래머로 입사하나 원래 에로게 업계가 프로그래머가 시나리오와 디버깅을 동시에 하는 괴랄한 업계인지라 어느 사이인가에 시나리오 라이터를 겸하게 된다. 그러나 칸노가 만든 게임 '열락의 학원(悦楽の学園)'이 엄청난 악평을 받게 되자 그 충격으로 다음 작품에서는 스토리성과 게임성을 중시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탄생한 것이 바로 DESIRE 배덕의 나선이다. 그리고 이어서 출시된 작품은 EVE burst error. 시장이 작았던 당시로서도 파격적인 성공을 거둔 EVE 덕분에 칸노는 일약 유명인사가 된다.EVE Burst Error는 1995년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발매 후 15년이 넘은 후까지 리메이크가 나올 정도로 대박을 기록해 일시적으로나마 에로게=EVE를 뜻할 정도의 영향력을 발휘했고 EVE의 성공을 본 다른 회사들도 스토리성을 중시한 게임을 제작하게 된다.
다만 이것은 업계전체를 보았을 때의 이야기고, 실제로는 EVE 이전에도 스토리 중시의 게임은 드물지 않게 있었다. 에로게를 단순한 돈벌이 정도로 본 회사들의 경영진, 혹은 회사에 제작자금을 대는 유통회사들은 그저 적당한 성인용 서비스신이 있으면 게임자체에 대해서는 거의 신경쓰지 않는 무관심, 몰이해한 태도를 보였는데 이를 역으로 이용해서 적당히 윗선의 체크를 통과할 만한 신을 집어넣고 나머지는 실무진들이 자기들 입맛에 맞는 게임을 만드는 경우가 있었고, 그 밖에도 에로게의 제작은 소규모 자본만 들어가는 점을 이용해서 처음부터 취향이 맞는 사람들이 회사를 차려서 만들고 싶은 게임을 만드는 것도 그 당시에는 매우 흔한 일이었다. 실제로도 사이코 서스펜스인 미친 과실(92), 생물학적 포스트 아포칼립스-디스토피아를 다룬 판도라의 숲(94)같은 오늘날에도 기획단계에서 통과가 안될 것 같은 게임들도 상당수가 발매되었다. 성인용 게임을 모두 에로게로 친다면 데이터 웨스트에서 개발한 주인공이 인간의 정신에 들어가 문제를 해결하는 사이킥 디텍티브 시리즈가 84년이다. 한국에도 정발된 KSS의 영화 감독 이야기는 HARD에서 제작한 어서오세요 시네마하우스에의 표절인데 이것도 94년. 게임의 내용은 영화를 만드는 것으로, 작중 등장인물들의 대사로 영화제작이 처리되는 것이 아니라 플레이어가 실제로 배우를 고르고 신의 내용을 정하는 영화제작 시뮬레이션이다.
칸노의 캐리어의 스타트를 끊은 열락의 학원 역시 94년작품인데 그런 시대에 그런 걸 내놓았으니 욕을 먹은 것이고, 이후 EVE의 성공을 본 경영진들, 스폰서들도 시나리오 중시의 게임이 돈이 된다는 것을 알고 게임의 내용에 더 신경을 쓰면서 시나리오 중시의 게임을 만들도록 지시했는데 이것은 에로게 업계 전체의 시나리오의 질적 향상의 원인이 되었지만 반대로 체크가 더 들어가게 되면서 진정으로 창의적인, 혹은 B급 감성을 가지거나 SF나 호러같은 안팔릴 것 같은 장르가 도태되는 원인이 되었다.
반대로 그 문제의 회사의 윗선이 시나리오 집필능력이 뛰어나고 업계에 대한 이해도 깊은 회사가 있었는데 바로 그게 엘프였다.
2.2. 엘프 시절
잡지의 인터뷰 등을 통하여 이름을 날린 칸노는 그 후 시즈웨어에서 엘프로 이적한다. 일설에 의하면 엘프의 초대 사장이자, 시나리오 라이터인 히루타 마사토가 자신의 후계자로 칸노를 점찍어놓고 좋은 조건으로 스카우트했다고 한다. 다만 일부에서 말하는 것처럼 남의 사원을 멋대로 뽑아간 것은 아니다. 당시 칸노는 정사원을 그만두고 계약직으로써 시즈웨어에 소속되어있었기 때문. 칸노 본인은 시즈웨어의 개발환경에 문제가 있었다고 하며[2] 이후 시즈웨어는 칸노 없이 EVE 시리즈의 속편을 만들어 시리즈 팬들의 비난을 받기는 했으나 경영진들의 기질이 낡아서 아무런 간섭을 안한 것인지 어떤지 여러 뛰어난 시나리오 라이터들이 거쳐가며 이런저런 수작을 만들어 내며 연명했으나 결국 2017년에 도산했다. 칸노 없이도 20년 이상 버틴 셈이다.한편 엘프로 이적한 칸노는 이 세상 끝에서 사랑을 노래하는 소녀 ~YU-NO~를 만든다. 그러나 엘프는 당시 사내정치가 만연해 있던 상태로 이 때문에 히루타조차 진저리를 내던 시기였다. 당연히 히루타가 들여온 외부인사인 칸노 역시 집중적인 견제를 당했다. 유노의 제작기간은 8개월로 이를 두고 말이 많으나 이런 사정과는 별개로 당시에는 평균 3개월에서 6개월만에 하나씩 신작이 발매되던 시기였으므로 칸노가 좋은 대우를 받은 것은 맞으며 칸노 본인 역시 대우자체는 훨씬 개선된 것을 인정했다.
결국 유노의 문제점은 칸노가 주어진 환경과 구상의 균형을 제대로 잡지 못한 것이었고 이 때문에 원래는 현대편과 별개의 시나리오로 구상된 이세계편이 현대편에서 이어지는 최종파트라는 구성을 취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칸노의 엘프 입사 당초, 칸노와 히루타가 번갈아가면서 하나씩 게임을 내는 것으로 각자의 부담을 줄이기로 합의가 된 상태였으나 결국 칸노가 유노만을 만들고 엘프에서 이탈한 것때문에 더 이상 버티지 못한 히루타 역시 엘프를 그만두게 되고, 경영은 아무것도 모르는 중역들과 자기가 담당한 파트이외에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관리직들만이 남은 엘프는 평범한 회사로 추락, 범작이나 만들다가 몰락하게 된다.
2.3. 아벨 시절
엘프를 퇴사한 칸노는 아벨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이 경영하는 회사를 설립하였고 회사 설립 후 데뷔작으로 "40만명이 울었다!"라는 공격적인 카피라이트로 유명한 엑소더스 길티를 발표하여 성공을 거두었다. 엑소더스 길티는 팬들에 의한 보정이 들어가 실제보다 높은 평가를 얻기는 했지만 그런 점을 고려하더라도 수작정되는 되는 게임이었다. 현대편의 중요인물이 당시에는 아직 일본에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던 FN Five-seveN를 사용하여 밀덕들의 사이에서는 화제가 되기도 했다.[3] 이브시절에도 등장인물들의 사용총기를 설정하는 것을 보면 은근히 그런 취향이 있었던 듯.이후 차기작인 <불확정 세계의 탐정 신사>는 발매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전작과 마찬가지로 미스터리 요소가 가미된 게임으로서 소정의 성공을 거두었다.
문제는 거기서부터였는데 국제탐정조직과 범죄조직, 국가정보기관의 대립같은 떡밥을 흘리면서도 신작 게임의 발매는 몇 년씩이나 걸렸고 거기에다가 신작이 나오더라도 떡밥은 전혀 회수가 되지 않았다. 그러니 팬들의 관심도 점점 식어갔고, 신작발매까지 회사의 경영자금을 벌기 위하여 구작을 음성추가판, CG를 조금 추가하여 신장판이라 하는 식으로 우려먹기 시작하면서 팬들 사이에서 조차 칸노에 대한 평가가 거품이 아니었는가에 대한 여론이 일게 된다.
또한 계속해서 발매되는 게임의 질이 예전만 못하다는 팬들의 평가도 있어서 현재 아벨은 듣보잡 레벨까지 떨어진 상태이며 신작도 집계를 할 필요가 없을 정도의 양밖에 팔리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가 결국 게임을 반토막을 내서 출시하는 등의 막장행보를 거듭했다.
예전의 레젠드가 이렇게 망가진 것은 요코타 마모루와도 비교가 된다.
3. 인물
3.1. 제작자로서
제작자로써는 두말할 것도 없이 일시적이기는 하지만 업계를 견인한 인물 중에 한 명이다.대부분의 제작자들이 자신의 전문분야에 대해서만 능한 반면 칸노는 시스템과 시나리오, 캐릭터 조형등 다양한 방면에서 재능을 드러냈기에 업계인들 사이에서도 천재로 평가받는다.
동종업계인들 사이의 평가가 좋은 것은 주로 그 작업방식덕분인 듯한데 보통 천재스타일의 인물들이 자신의 천재성으로 작업을 억지로 끌고 가다시피하는 원맨스타일이 많은 반면 칸노는 자신이 신임하는 동료들의 의견을 구한다고 한다. 다만 그 때문에 이것저것 요구하는 게 많아서 정작 같이 작업하면 피곤하기에 피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유노의 작업도중 음악담당인 우메모토 류가 야반도주[4]하자 예전에 우메모토와 같은 팀에서 일했었고 칸노와도 면식이 있던 후지미 류와 카나에 카즈히로가 불려와서 작업을 잇게 된다. 후지미와 카나에는 우메모토의 작업물을 바탕으로 우메모토의 작업스타일에 최대한 가까운 음악을 만들게 되는데 칸노는 힌트없이 유노를 우선 플레이해볼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게임의 분위기에 맞는 음악을 원했기 때문인데 어떻게 보면 당연하게 보이지만 90년대 당시도 그렇고 그 뒤로 30년이 지난 2020년대에도 게임업계에서는 대체로 음악을 그냥 외주를 주거나 하여 게임음악에 크게 신경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점[5]에서 칸노에 대한 업계인들의 평가가 납득이 가는 부분이다.
다만 자기복제적 성향이 강한 점에 대해서는 작품성이라는 결과물이라는 좋기에 간과되는 일이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칸노가 만들었던 대개의 작품들은 자기복제였다. 예를 들어 열락의 학원에서 들었던 비평들을 피드백해서 나온 게 디자이어였지만 그 디자이어가 상부의 간섭으로 반토막이 나자 정사원에서 계약직으로 스스로 낮춰서 디자이어의 원래구상대로 만든 것이 이브였고 아벨시절에 나왔던 게임들고 기본적으로는 이브나 유노의 복제다. 애초에 칸노의 작품 중 양대산맥인 이브는 열락의 학원의 완성형이고 유노 역시 시즈웨어 시절에 만들었던 제논의 미사용 아이디어를 재활용한 것이라 제논의 완성형이었다.
칸노는 SF요소가 녹아든 미스테리물만 썼는데 그런 장르가 대중적으로 먹히지 않게 된 시점부터 평가가 낮아지는 것은 어쩔 수 없으며 심지어 아벨 이후에는 주변에서 피드백을 줄 인물이 없어진 것도 문제였다. 원래 현장에서 피드백을 주던 우메모토는 야반도주 사건으로 같이 일을 할 수 없게 되어 그 후계자로 점찍은 것이 우메모토의 서브였던 후카미 류였으나 후카미는 피드백을 요구하는 칸노 히로유키의 작업스타일이 주는 피로감을 이유로 그 자리를 사퇴했고 세가새턴판을 만들 때 원곡을 편곡한 사토 류이치를 음악담당으로 발탁하긴 했으나 사토 역시 칸노의 파트너까지는 아니었다. 그 때문인지 칸노의 작품은 점점 더 엉성한 자기복제를 반복하게 되었고 그조차 미완성품을 대충 발매하는 밑바닥의 밑바닥까지 떨어지게 된다.
이후 병으로 쓰러지자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듯 자기반성을 하며 그 동안 질질 끌어먹던 미스테리트2를 시리즈 완결편으로 고치던 작업을 하던 도중에 사망하여 스스로 망친 크리에이터로써의 평가를 끝까지 만회하지 못하게 되었다. 한 때 같이 작업한 우메모토 류와의 관계는 단순한 직급을 넘은 관계였다고 옛 동료들에게 평가되는데 그 우메모토가 죽은 것도 2011년으로 칸노보다 4개월 빠르다. 그래서 우메모토가 죽은 것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칸노의 증상이 악화된 이유 중에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
3.2. 경영자로서
경영자로써는 밑바닥 중의 밑바닥으로 더 이상 떨어질 곳도 없는 인간말종 취급을 받는다.십차원입방체 사이퍼의 경우, 디버깅 작업의 부족으로 인스톨시 에러를 일으켜 윈도우를 파손시키는 재앙을 일으켰는데 물론 여기에 대해서 진지한 태도의 사과나 보상이 이루어지지는 않았고 이 직후부터 칸노의 평가가 수직하락 하게 된다. 그나마 사이퍼의 경우 게임의 내용물자체는 어느 정도 찬반이 있긴 했지만 수작정도의 평가를 받아서 버그가 수정된 이후로는 그럭저럭 평가가 좋았다. 다만 사이퍼의 작업물 자체는 전형적인 칸노 스타일로 이미 이 시점에서는 거의 먹히지 않았던 것이 명작이나 걸작 소리를 듣지 못하는 원인이 되었다. 칸노가 시대에 따라가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 이후는 미완성 제품을 아무렇지도 않게 팔고 심지어 자기들의 유책을 인정하지 않기 위하여 패치를 애드온이라 칭하는 등 온갖 추한 행위를 저질러서 팬들조차 등지게 만들었다. 아벨 말기에는 사전정보 없이 게임을 구매하는 층이 패키지를 보고 샀다가 후회하는 정도의 게임밖에 만들지 못했으며 아벨의 게임인 것을 알고 구매하는 층은 대개 칸노를 무조건적으로 추앙하는 소위 말하는 신자급 팬들하고 칸노가 얼마나 망가졌는지를 비웃기 위하여 구매하는 층으로 양분되었다. 에로게판 KOTY에도 이름이 올라가기 시작하면서 쿠소게 헌터까지 몰려들어 칸노의 경력 마지막은 끔찍하기 그지없었다.
칸노가 그렇게 망가진 원인은 주변에서 칸노를 통제하고 그 재능을 잘 써줄 사람이 없어진 것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브를 만들던 때는 시즈웨어의 계약사원이었고 유노를 만들던 때는 엘프의 사원이었다. 제작자로써의 재능이나 경영자로써의 재능을 둘 중에 하나라도 가진 사람은 드물고 그 둘다 가진 사람은 매우 드물기에 자기 스스로의 재능을 과신했던 것이 문제인 듯. 칸노는 동시대의 천재인 히루타를 라이벌시했다는 것은 동종 업계인들도 인정하는 바인데 아마도 스스로도 히루타 정도의 재능을 가지고 있으니 히루타처럼 제작과 경영을 둘 다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칸노와 함께 엘프에서 일하며 한 때나마 업계를 선도했던 원화가들인 타케이 마사키나, 요코타 마모루도 칸노와 비슷한 삶[6]을 살고 있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셋이 사이좋게 전부 허풍을 잘 치고 오만한 성격이라는 것도 공통되며 이런 경향은 한창 젊은 나이에 성공하여 주변의 찬사를 받아 인간성이 망가진 자수성가타입에서 흔히 보이는 경향이라는 점에서 결국 천재 소리 듣던 칸노도 보통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만큼은 아니지만 한 때 바이퍼 시리즈로 시대를 풍미했던 소니아의 사장 나카무라 켄이치로도 그런 인물로, 에로게 업계는 자본규모가 작고 개발팀의 규모 역시 작아 개개의 인원의 능력에 작품의 완성도가 좌우되는 경향이 많아 그런 인물들을 낳기에 좋은 환경이다.
4. 작품
- 열락의 학원 (1994년 2월 25일)
- DESIRE 배덕의 나선 (1994년 7월 22일)
- XENON -몽환의 지체- (1994년 12월 9일)
- EVE burst error (1995년 11월 22일)
- 이 세상 끝에서 사랑을 노래하는 소녀 ~YU-NO~ (1996년 12월 26일)
- 엑소더스 길티 (1998년 11월 26일)
- 불확정 세계의 탐정 신사 (2000년 4월 21일)
- 미스테리트 (2004년 5월 28일)
- 십차원 입방체 사이퍼 (2004년 12월 24일)
[1] 본명은 동일한 발음의 菅野洋之.[2] EVE burst error는 칸노가 4개월간의 공밀레를 통해 원화, 음악을 제외한 기획, 시나리오, 스크립트, 프로그래밍, 디버깅 등을 모두 혼자 작업했다고 한다. 또한 시즈웨어는 직원들의 임금이 짠 것으로도 유명했다.[3] 작중 파이브 세븐은 프로의 권총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실제로도 파이브 세븐의 민수용이 나온 것은 엑소더스 길티가 발매되고 수년후의 일이며 총자체도 게임의 개발당시에 막 나온 따끈따끈한 물건이었다. 충분한 양이 풀려서 객관적인 평가가 나오기전까지 파이브 세븐은 철갑탄을 쓰는 권총으로 FN의 미래권총취급을 받았던 시기였으니 그런 말이 나온 것.[4] 우메모토는 엘프의 사원으로써 유노와 동시에 노노무라 병원의 사람들의 작업도 동시 진행 중이었고 젊은 나이에 요절한 것을 보면 원래 건강한 것과는 거리가 멀었기에 하드 스케줄을 버티지 못했던 듯. 후지미와 우메모토는 룸쉐어를 했는데 당시 우메모토를 엘프에 틀어박혀 작업만하다가 가끔 들어왔는데 그 때마다 헬쓱해져서 들어왔다고 한다.[5] 예를 들어서 일본 게임업계의 큰 손인 스퀘어에서조차 그냥 납기를 맞추기 위하여 스톡해놓은 곡 중에서 좋은 것을 골라 채워넣는 일은 흔하다.[6] 업계의 거물이 됨→자기회사 설립→망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