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08 15:24:37

카주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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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다리야 마하데바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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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슈바나트 사원의 섬세한 부조

1. 개요2. 역사3. 카주라호 기념물군
3.1. 락슈마나 사원3.2. 비슈와나타 사원3.3. 칸다리야 마하데바 사원3.4. 둘라데오 사원3.5. 자이나교 사원들
4. 관련 문서

1. 개요

힌디어 खजुराहो
영어 Khajuraho

인도 중북부 마디아프라데시 주의 차타르푸르 시(Chhatarpur city)의 지방도시.[1] 인구는 약 2만명이다. 북인도의 주요 관광지 중 하나로, 1986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힌두교자이나교 사원 단지의 관능적인 조각상들로 유명하다. 별칭으로 카마수트라 사원(kamasutra temple)의 '카마수트라의 도시'가 있다. 관광 산업 덕에 소도시임에도 남쪽 외곽에 공항이 있고, 델리(Delhi) ~ 아그라(Agra) 및 보팔과의 기차도 다닌다.

2.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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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 구역의 사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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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을 기념해 세워진 비슈와나타 사원

옛 지명은 대추야자 잎이란 뜻인 카르주라바하카였다. 바트사, 마우리아, 슝가, 쿠샨, 파드마바티 나가들, 바카타카, 굽타, 푸슈야부티, 프라티하라 왕조 등이 일대를 지배했다. 굽타 왕조 시기부터 카주라호에는 불교, 힌두교 사원들이 세워졌다. 641년 카주라호를 방문한 현장은 대당서역기에 활동이 중단된 사찰들과 수천의 브라흐민이 활동하는 힌두 사원들을 묘사했다. 9세기 말부터 프라티하라 왕조 하에 있던 현지의 찬델라 왕조는 10세기 말엽 가즈니 왕조의 침공으로 북인도가 혼란에 빠지자 독립했다.

1022년, 술탄 마흐무드의 실패한 칼린자르 원정[2]을 동행한 페르시아인 학자 아부 리한 알 비루니는 카주라호가 자자후티의 수도라 명명하였다. 현존하는 사원군을 세우는 등 뛰어난 문화를 꽃피우던 찬델라 왕조는 1182년 샤캄바리의 차하마나들에 의해 패배한 후 1202년, 후일 델리 술탄 왕조를 세우는 구르 왕조의 장수 쿠트브 앗 딘 아이바크에게 패배하고 찬델라 왕조가 중심지를 마호바 / 칼린자르 / 아자야가르 요새로 옮기며 카주라호는 작은 마을로 쇠락했다.

다만 명성은 여전했는지 14세기 카주라호 (카자라로 언급)를 방문한 이븐 바투타는 (무슬림들이 훼손한) 사원의 화려한 황색 부조를 묘사했고, 아직도 많은 요기 (요가 수행자)들이 있으며 무슬림들도 종종 배우러 온다고 기록하였다. 사원단지는 1495년 델리 술탄 시칸다르 칸 로디에 의해 일부 훼손되었다. 무굴 제국기 카주라호는 버려졌다가 1819년 영국군 소속 학자 C. J. 프랭클린에 의해 재발견된 후 1838년 장교 T. S. 버트에 의해 다시 세간에 알려졌다. 1852년과 1855년에는 알렉산더 커닝햄이 방문해 조사하였다.

3. 카주라호 기념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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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373a3c><colbgcolor=#ff671f> 문화유산
1983년

아잔타 석굴
अजंता गुफाएँ
1983년

엘로라 석굴
एलोरा गुफाएं
1983년

아그라 요새
आगरा का किला
1983년

타지마할
ताज महल
1984년

코나라크의 태양신 사원
कोणार्क सूर्य मंदिर
1984년

마히발리푸람 기념물군
महाबलिपुरम के स्मारक समुह
1986년

고아의 성당과 수도원
गोवा के गिरजाघर एवं कॉन्वेंट
1986년

카주라호 기념물군
खजुराहो स्मारक समूह
1986년

함피 기념물군
हम्पी
1986년

파테푸르 시크리
फतेहपुर सीकरी
1987년

파타다칼 기념물군
पत्तदकल
1987년

엘레판타 동굴
एलिफेंटा की गुफाएँ
1987년

대 촐라 사원
महान चोल मंदिर
1989년

산치의 불교 기념물군
साँची के बौद्ध स्तूप
1993년

델리의 후마윤 묘지
हुमायूँ का मकबरा
1993년

델리의 쿠트브 미나르 유적지
कुतुब मीनार एवं अन्य स्मारक
1999년

인도 산악 철도
भारतीय पर्वतीय रेल, दार्जिलिंग
2002년

부다가야의 마하보디 사원 단지
बोधगया का महाबोधि विहार
2003년

빔베트카의 바위 은신처
भीमबेटका शैलाश्रय
2003년

차트라파티 시바지 역
(옛 빅토리아 역)
छत्रपति शिवाजी टर्मिनस
2003년

참피네르 - 파바가드 고고 공원
चंपानेर-पावागढ़ पुरातत्व उद्यान
2007년

붉은 요새 복합단지
दिल्ली का लाल किला
2010년

자이푸르의 잔타르 만타르
जंतर मंतर, जयपुर
2013년

라자스탄 구릉 요새
राजस्थान के पहाड़ी दुर्ग
2014년

구자라트주 파탄의 라니키바브
(왕비의 계단 우물)
रानी की वाव
2016년

비하르 날란다의 날란다 대승원
(날란다 대학교)
नालन्दा महाविहार (नालंदा विश्वविद्यालय)
2016년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 작품
: 모더니즘 운동에 관한 탁월한 기여

ली कोर्बुज़िए के वास्तुशिल्प
2017년

아마다바드 역사 도시
अहमदाबाद का ऐतिहासिक शहर
2018년

뭄바이의 빅토리아와 아르데코 양식의 건축군
मुंबई का विक्टोरियन और आर्ट डेको एनसेंबल
2019년

라자스탄의 자이푸르
राजस्थान जयपुर
2021년

라마파 사원
रामप्पा मंदिर
2021년

돌라비라
: 하라판 도시

धोलावीरा
자연유산
1985년

카지랑가 국립공원
काज़ीरंगा राष्ट्रीय उद्यान
1985년

마나스 야생동물 보호 구역
मानस राष्ट्रीय उद्यान
1985년

케올라디오 국립공원
केवलादेव राष्ट्रीय उद्यान
1987년

순다르반스 국립공원
सुंदरवन राष्ट्रीय उद्यान
1988년

난다 데비 국립공원과 꽃의 계곡 국립공원
नन्दा देवी राष्ट्रीय उद्यान एवं फूलों की घाटी
2012년

인도의 서 고츠 산맥
पश्चिमी घाट
2014년

그레이트 히말라야 국립공원 보존 지역
ग्रेट हिमालयन राष्ट्रीय उद्यान
복합유산
2016년

칸첸중가 국립공원
कंचनजंगा राष्ट्रीय उद्या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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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유산
파일:유네스코 세계유산 로고(흰 배경).svg
이름 한국어 카주라호 기념물군
영어 Khajuraho Group of Monuments
프랑스어 Ensemble monumental de Khajuraho
국가·위치 인도 마디아프라데시주 카주라호
등재유형 문화유산
등재연도 1986년
등재기준 (i)[3], (iii)
지정번호 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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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2세기 라지푸트 일족의 힌두 국가인 찬델라 왕조 시기에 세워졌다. 거대한 규모와 섬세한 조각을 모두 지니고 있어 인도 7대 불가사의로 불리기도 한다. 대부분의 사원은 10세기 중 ~ 11세기 초에 세워졌다. 한때 85개의 사원이 20여 km에 걸쳐 늘어서 있었으나, 세월의 풍파와 우상을 금하는 이슬람 왕조들의 파괴로 현존하는 것은 22개 정도이다. 사원군은 크게 동서로 구분되어 있으며, 그 사이와 남쪽에 시가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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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지는 크게 두 구역으로 구분된다. 우선 서쪽 구역에는 바라하, 락슈마나, 마탕제슈와라, 칸다리야 마하데바, 치트라굽타, 초프라 탄크, 파르바티, 비슈와나타, 난디 사원 등 주요 유적들과 고고학 박물관이 있다. 동쪽과 남쪽 구역에는 간타이, 파르슈바나트, 아디나트, 샨티나트, 둘라데브, 차투르부자 사원 등이 있다. 가장 유명한 락슈마나 사원은 찬델라 왕국을 자립시킨 야소바르만이 세웠고 비슈바나타, 파르슈바나타, 바이드야나타 사원은 야소바르만의 후계자인 당가 왕이 세웠다. 가장 규모가 크고 형식적으로 완벽하다는 평을 듣는 칸다리야 마하데바 사원은 1020년경 간다 왕이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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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들은 기본적으로 높은 기단 위에 세워졌고, 지붕으로 덮인 현관을 통해 여러 기둥으로 둘러싸인 홀 (mandapa)과 성소 등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본당은 다층 형식의 시카라(Sikhara)로 되어 있는데, 이는 산봉우리란 뜻이다. 이는 힌두 사원 양식 중 하나인 나제라 (Nagera)의 특징인데, 우주를 상징하는 카일라스 산을 상징한다. 또한 대부분의 주요 사원들은 동향이다.

장하 (Jangha)라 불리는 외벽에는 섬세하고 생명력 넘치는 역동적인 성적 부조들로 가득하다. 이들은 다채로운 힌두 신화 묘사한 것으로, 여성이 주로 등장한다. 그중 아프사라스, 스라슨다리 등의 선녀가 사랑을 표시하는 나이카 혹은 포옹하는 자세인 미투나를 취하고 있는 모습이 보기에 매우 관능적이라 인기가 많다. 옆에 시녀가 등장하는 경우 대부분 부끄러운 듯 손으로 얼굴을 가리거나 다른 것을 보고 있다.
파일:Khajuraho-1.jpg파일:Reliefs_in_Khajuraho (1).jpg

성적인 조각들에 대해 원초적인 본능을 자극하는 인간의 모습을 솔직히 표현했다는 긍정 평가와 종교의 거룩함을 흐리는 망측한 표현이라는 부정 평가가 공존한다. 일부 부조에는 정상위, 후배위, 69 등 다양한 남녀 체위 뿐만 아니라 동성애와 수간까지 묘사되어 있어 노약자나 종교적인 사람과 동행시 유의해야 한다.

[(시청 주의) 카주라호의 선정적인 탄트라 부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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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선정적인 부조는 당시 유행했던 탄트라 사조 (Tantric school)의 영향으로, 인간의 삶을 솔직하게 개방적으로 다루었다. 성 역시 그 예외는 아니었고, 오히려 세상 만물이 음과 양의 두 원리로 나뉜다는 이원론을 바탕으로 했에 성을 중시했다. 탄트라 철학에서 음과 양은 각각 에너지와 방법 및 대비를 상징했고, 인간은 타인과의 공존과 협력을 통해서만 다른 것을 얻을 수 있다. 다만 사원의 외부가 전부 성적 조각으로 덮인 것은 아니고, 장하 외의 부분은 삶과 정신세계, 속세의 다른 면을 표현한 부조들로 장식되어 있었다.

3.1. 락슈마나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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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Lakshmana_Temple_01.jpg파일:India-5679_-_Flickr_-_archer10_(Dennis).jpg

954년 야소바르만 (락샤바르만) 왕이 세운 신전으로, 카슈미르 유래의 비슈누 신을 봉헌했다. 힌두 나가라 양식의 대표작으로, 매우 정밀한 조각으로 유명하다. 아드바티아 베단타 문학을 따라 5개 구역으로 구성된 판차야타나 양식을 지니고, 중앙의 본당이 제일 크다. 카주라호가 수풀로 뒤덮인 후에 처음으로 재발견된 힌두 사원이다.

3.2. 비슈와나타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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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년경 당가 왕이 자립을 기념하며 건립했고, 락슈마나 사원 양식을 답습했지만 비슈누 대신 시바 신에게 봉헌되었다. 이름은 '우주의 주인'이란 뜻이다. 락슈마나에 비해 부조들은 더욱 역동적이며, 시바의 링가 외에도 그의 아내 프라바티와 아들 가네샤 등도 곳곳에 조각되어 있다. 춤추는 가네샤 부조가 유명하고, 실내에는 여인들의 일상을 다룬 부조도 있다. 바로 옆에 가네샤를 봉헌한 만타게샤바라 사원이 있다.

3.3. 칸다리야 마하데바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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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0년경 간다 혹은 그의 후계자인 비드야다라[4] 왕이 건립했다. 일설에 의하면 술탄 마흐무드의 침공을 격퇴한 기념으로 세워졌다 한다. 의미는 '동굴의 위대한 왕'이란 뜻이다. 비슈바나타 사원처럼 시바 신에게 봉헌되었다. 다만 이후에 비슈누, 수르야, 샥티 등에 봉헌되기도 했다. 서부 구역 사원들 중 가장 크고 웅장하며, 예술적으로나 건축학적으로나 완벽하다고 평가된다. 힌두 신화의 메루 산을 상징하는 높은 기단부에 더하여 층층이 높아지는 탑과 그런 탑들이 서서히 올라가 31m의 중앙탑으로 연결되는 구조는 세상의 중심으로 여겨지는 히말라야 산맥을 상징한다. 다믄 대외적으로는 벽면에 새겨진 관능적인 부조들로 유명하다.

[(시청 주의) 선정적인 탄트라 부조들]
||파일:Le_Temple_Kandariya_Mahadeva_(Khajurâho)_(8503001895).jpg||파일:Kandariya_Mahadev_Temple,_Khajuraho,_picture_17.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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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둘라데오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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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신전들 중 가장 마지막인 12세기 중반에 세워졌다. '신성한 신랑'이란 뜻으로, 역시 시바 신에게 봉헌되었다. 특이하게도 팔각 형태이다. 벽에는 각종 신들과 관능적인 모습의 선녀 (아스파라) 등이 조각되어 있다. 기법이 칸푸르 인근 잠소르 신전과 유사하여 같은 조각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3세기 가까이 이어진 찬델라 예술의 마지막 걸작으로 평가된다.

3.5. 자이나교 사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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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디나트 사원 파르슈바나트 사원

카주라호는 전통적으로 자이나교 성지가 있었고, 자이나교도 중에서는 부자가 많아 근대까지도 사원을 관리했다. 따라서 동부 구역에 있는 3개의 자이나교 사원들은 보존 상태가 좋고, 힌두 사원들과 달리 지금도 사제들이 예배를 올린다. 비록 외관상으로는 나체의 남성 입상 부조 외에는 다른 힌두 사원들과 양식 면에서 구분이 거의 안되지만, 내부에는 검은 빛깔의 마하비라 좌상 등의 고유한 모습이 있다.

4. 관련 문서


[1] Chhatarpur(छतरपुर)Madhya Pradesh 471001 ,India#[2] 다만 후속 협상에서 찬델라 왕은 가즈니 군의 회군을 대가로 배상금을 내기로 했다[3] 인간의 창의성으로 빚어진 걸작을 대표할 것[4] 술탄 마흐무드도 칭찬한 용맹한 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