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3-04 14:47:15

치요노후지 미츠구

<colbgcolor=#000><colcolor=#fff> 치요노후지 미츠구
千代の富士貢
파일:Kokonoe_(cropped).jpg
본명 아키모토 미츠구([ruby(秋元 貢, ruby=あきもと みつぐ)])
출생 1955년 6월 1일
홋카이도 마츠마에군 후쿠시마초
사망 2016년 7월 31일 (향년 61세)
도쿄도 분쿄구 도쿄대학의학부 부속병원
국적
[[일본|]][[틀:국기|]][[틀:국기|]]
신체 183cm, 127kg[1]

1. 개요2. 생애3.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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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일본의 전 스모 선수.

2. 생애

홋카이도 마츠마에군 후쿠시마초의 어부 집안에서 태어나서 어렸을 때부터 어업 일을 도왔다.[3] 중학교 때는 육상 높이뛰기와 세단뛰기의 마츠마에군 대회에서 우승하는 등 두각을 나타냈고, 본인도 육상 선수로 올림픽에 출전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고 한다. 그래서 같은 후쿠히마초 출신의 전 요코즈나(41대) 치요노야마가 스카우트하러 왔을 때는 스모에 관심도 없고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절했는데 치요노야마가 스모에 입문한다면 비행기를 태워주겠다는 권유에 혹해서 입문을 결정했다. 처음에는 도쿄 상경 후에도 육상 경기를 병행했지만[4] 결국 중학교를 중퇴하고 본격적으로 스모 선수의 길을 가기 시작했다.#

스모 입문 후 초창기에는 주로 던지기 기술을 구사했는데, 작은 몸[5]으로 자신보다 체중이 훨씬 많이 나가는 선수들을 상대로 어깨에 무리가 많이 가는 기술을 구사하다 보니 어깨 탈구가 자주 발생했다. 그러다가 어깨 치료를 받으러 간 병원의 의사가 어깨 주변의 근육을 강화해서 극복하라고 어드바이스를 해줬고 이때부터 치요노후지는 여가 시간에 매일같이 팔굽혀펴기,[6] 바벨 운동 등 다양한 웨이트 트레이닝을 통해 어깨 근육을 강화시켰다.#

1981년 1월 바쇼에서 처음으로 우승했고,[7] 바쇼가 끝난 후 오제키로 승진했다. 같은 해 7월 바쇼에서 2번째 우승을 차지했고, 바쇼가 끝난 후 요코즈나로 승진했다. 이후 1990년 11월 바쇼까지 31회 우승을 달성했는데 이는 2025년 현재도 하쿠호(45회), 다이호(32회)에 이은 역대 3위에 해당하는 대기록이다. 1988년에는 53연승을 달성했는데 이 역시 역대 3위의 대기록이다.[8]

1991년 5월 바쇼 기간 도중 기자 회견을 열고 체력의 한계를 이유로 은퇴를 선언했다. 현역 시절 통산 성적은 1045승 437패 승률 .705

은퇴 후에는 자신의 현역 시절 소속 도장이었던 코코노에베야의 오야가타로 취임[9]해 지도자 활동을 시작했고, 2008년 2월에는 일본 스모 협회 이사에 취임해 홍보부장 및 지도실행부장을 역임했다.

2016년 7월 31일, 도쿄대학의학부 부속병원에서 췌장암으로 사망했다.

3. 기타


[1] 일본 스모 협회 공식 프로필[2] 단 영상에서 몇 부분 오류와 스모에 대한 비하가 있다.[3] 덕분에 자연스럽게 몸이 단련되었다고 한다.[4] 다이토구 대회에서 투포환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5] 마쿠우치(스모 최상위 리그)에 막 올라왔을 무렵 체중은 96kg으로 최경량이었다.[6] 매일 500회씩 했다고 한다.[7] 우승이 결정됐을 때의 최고 시청률은 무려 65.3%였다.[8] 1위는 후타바야마(69연승), 2위는 하쿠호(63연승).[9] 1993년 1월 바쇼에서 우승해 외국인 최초로 요코즈나에 오른 아케보노 타로에게 요코즈나 도효이리를 가르쳐 주기도 했다.[10] 덕분에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에서 이 경주마를 모티브로 창작된 사쿠라 치요노 오도 아버지가 스모 선수이고 본인도 상당히 스모 지식을 보유하고 있다는 설정이 있다.[11] 리키시는 일본에서 스모 선수를 지칭하는 단어로 쓰인다.[12] 국내에선 커피 커피 뿜는 짤방으로도 나름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