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3-04 19:37:16

척 웨프너

파일:gettyimages-517431638.jpg
척 웨프너
Chuck Wepner
<colbgcolor=#000000><colcolor=#aa9872,#8c7a55> 본명 찰스 웨프너
Charles Wepner
출생 1939년 2월 26일 ([age(1939-02-26)]세)
미국 뉴욕주 뉴욕시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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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투
전적
51전 35승(17KO) 14패(5KO) 2무
신장 196cm
체급 헤비급
스탠스 오서독스
링네임 The Bayonne Bleeder

1. 개요2. 전적3. 커리어4. 파이팅 스타일5.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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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전 권투 선수.

2. 전적

  • 주요 승: 도널드 매캐티어, 마이크 브루스, 마누엘 라모스, 랜디 뉴먼(2), 어니 테럴
  • 무승부: 에버렛 코플랜드(2)

3. 커리어

뉴욕시에서 태어났으나 뉴저지주 베이욘에서 성장했다. 고등학교 시절 농구를 했었고 졸업 후 미 해병대에 입대했다. 부대 내에서 복싱을 접했고 1964년 프로 전적을 시작했다.

USA 뉴저지주 헤비급 타이틀을 획득했으나 세계 레벨에 뛰기엔 부족한 실력과 커리어였다. 1975년 무하마드 알리의 방어전 상대로 지명되었을 때 30승 10패 2무라는 평범한 커리어였고 대중들 역시 알리가 압승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경기는 생각 외로 접전이었고 알리는 풋워크를 활용해 정교하게 유효타를 집어넣었으나 웨프너는 맞아가면서 압박해갔다. 9라운드 링사이드 시계방향으로 도는 알리를 왼손 더블잽에 이은 오른손 바디블로우로 알리를 다운시켰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알리에게 무수히 많은 정타를 허용했으며 15회까지 버텼으나 종료 19초를 남겨두고 TKO패했다.[1] 이로 인해 인지도가 급격하게 상승했다.

그러나 이 경기는 실제로는 미화됐다는 말조차 아까울 정도로 더럽기 짝이 없는 경기였다. 1라운드부터 웨프너는 지속적으로 알리의 후두부를 대놓고 가격했다. 마지막 15라운드에서조차도 클린치 후 후두부 가격의 루틴이 계속됐고, 오죽하면 알리 말년의 알츠하이머 증세가 이 경기 때문 아니냐는 우스개소리까지 있을 정도. 알리는 이에 대해 심판에게 항의했으나 심판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으며, 화가 난 알리는 본인도 웨프너의 후두부를 가격하기도 했다. 심지어 웨프너는 알리에게 은근슬쩍 로우킥을 날리기까지 했으나 역시 이것도 심판이 제지하거나 지적하지 않았다. 위에 언급된 9라운드 다운 역시 바디블로우가 제대로 들어가지조차 않았는데 다운이 되어서 사람들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웨프너가 백스탭을 밟는 알리의 발을 밟았기 때문에 넘어진 것 뿐이었다. 심판은 이 때에도 그대로 카운트를 진행시켰다. 말 그대로 인종차별이라고 봐도 될 정도로 편파판정의 극치를 보여준 경기였다.

이후로 세계 타이틀에 도전하지 못했고 변두리에서 활동하다가 1978년 패배해 USA 뉴저지 타이틀을 상실하고 현역에서 은퇴했다.

은퇴 후엔 약물중독으로 고생했었고 1985년 코카인 소지죄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출소 후에는 부인[2]과 함께 주류판매업을 하고 있다.

4. 파이팅 스타일

5. 여담

폴란드, 우크라이나, 독일계 혈통을 갖고있다.

영화 록키를 만들어준 계기가 된 선수다. 당시 실베스타 스텔론은 알리와 웨프너의 경기를 보고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영화 세트장에 웨프너가 초대되기도 했다고 하나, 금전적인 보상을 받지는 못했는지 이후 2000년 웨프너는 스텔론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스탤론은 2003년 웨프너와 합의했다. 보상금은 얼마인지 알려지지 않았다. 2012년 웨프너의 일대기가 다큐멘터리로 나왔다.

해병대를 전역한 후 생계를 위해 클럽의 바운서로 일하기도 했다.

[1] 당시 웨프너는 코뼈가 부러졌고 눈가에 피가 흐르고 있었다.[2] 웨프너는 두번의 이혼경력이 있다. 세 번째 부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