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1-16 15:50:12

챔피언스 데이

1. 개요2. 첫 번째 대회3. 이후4.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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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MBC GAME의 최대 흑역사 중 하나이자 완불엠의 상징 중 하나.

참고로 두 대회 모두 장충체육관에서 개최되었다.

2. 첫 번째 대회

당시 엠겜은 결승 개최비를 아끼고자[1] 프라임리그를 포함한 타 게임리그를 부흥시키기 위한 방안을 고심하다가 MSL 결승과 같이 치루자는 의견이 나오게 되었다.

이 의견을 수렴한 엠겜은 2004년 초 첫 번째 챔피언스 데이의 개최를 발표했다. 당시 개최된 리그의 결승전은 다음과 같다.
  • 4월 18일
    • 인텔-전자신문 베스트 커플 최강전(여성부 워크래프트 3)
    • MBC MOVIES배 워크래프트3 CTBⅢ
    • 하이서울 페스티벌(피파 2004)
    • 손오공배 워크래프트3 Prime LeagueⅢ
  • 4월 19일

하지만 메인 리그인 MSL의 결승 이전의 마지막 승부인 패자결승이 이미 3월 초에 끝난 상황이었는데 챔피언스 데이의 개최는 4월 18~19일인지라 리그 자체가 거의 1달 반을 쉬어버려 흥행 연속성이 끊겨버렸고, 주 관객층인 중·고·대학생들의 시험기간이 겹치는 대악재가 발생했다. 또한 본 대회의 메인 캐스터인 김철민 캐스터가 대회 도중 위암으로 인하여 수술을 받게 되는 악재가 발생하면서 결승전을 미룰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2][3]

프라임리그Ⅲ의 결승과 CTBⅢ의 결승 같은 경우는 박세룡 vs 장재호/손오공 프렌즈 vs SK Gaming[4]이라는 초대박매치가 나왔음에도 결승은 관중 300명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MSL도 비슷한 결과. 그리고 중간 중간에 끼어있는 아마추어 리그나 기타 게임 리그 결승들은 관계자들 이외에는 관중이 없다시피한 결과가 나왔다.

파일:external/www.gamedonga.co.kr/mbcgame040825.jpg
MSL 결승의 위엄(...)

게다가 부대행사인 랜파티를 위해 설치한 컴퓨터들의 문제도 많았다.[5]

그래서 첫 번째 챔피언스 데이는 처참하게 망했고 차기 챔피언스 데이 개최가 불투명해 보였다.

3. 이후

MBC GAME은 규모를 줄여 다시 한 번 시도해 두 번째 챔피언스 데이를 개최했지만 첫 번째 챔피언스 데이의 이미지 때문에 관중들이 기피했다. 사실 MSL 대진도 그 재미없다는 T1 팀킬이었던지라... 또한 팀리그 결승 역시 하필 옆 동네 팀 대회 결승전이 '광안리 10만 관중'이라는 이야기가 돌 정도로 초대박이라서... 그밖에 프라임리그Ⅳ도 이재박 vs. 강서우라는 실력자들의 매치였지만 당시 인기는 그렇게 좋지 않았다. 결국 MBC GAME은 챔피언스 데이를 없앴고, 그 뒤로는 개최 리그를 줄이는 방향으로 갔다.

참고로 두 번째 챔피언스 데이에 열린 결승전은 다음과 같다.

이 당시 2004년 6월 15일 개막했던 현대자동차 투싼배 팀리그가 이 일정에 맞추기 위해 3주간 주 2회(화, 목)을 진행했고, 5월 20일 개막했던 Spris MSL이 4주차(승자조 8강) 일정을 마치고 3주간 휴식기를 가지기도했다.

덧붙이자면 챔피언스 데이에 열린, Spris MSL을 제외한(…) 모든 결승은 아직까지도 명경기들로 손꼽히고 있다.[6] 그 Spris MSL도 결승을 제외한(...) 대부분의 경기가 명경기인 리그로 유명하다. 이 결승전의 졸전은 우승자인 최연성과 준우승자인 박용욱의 평가절하로까지 이어졌으며, 이 2명에게 패해 3위를 차지한 강민이 오히려 가장 강렬하게 기억남는 아이러니를 남기게 된다.[7] 다시 말하자면 '흥행은 실패했지만 경기는 재미있었다' 정도. 또한 팀리그도 T1이 우승해서 한 달 전에 열린 프로리그 준우승 당시의 아쉬움을 달랬다.

4. 관련 문서



[1] 이건 농담이라고 볼 수 없는 게 결승을 야외에서 진행하면 그 비용이 만만치 않다. 오죽하면 스폰서에게 후원을 받을 때 후원 금액 중 절반이 결승 개최 비용이라는 농담 아닌 농담도 나오는 게 현실이다. MSL은 메인 리그이니 그렇다 쳐도 당시 위상이 MSL에 버금가던 프라임리그 결승도 박세룡 vs. 장재호라는 대박 매치가 잡히는 바람에 야외에서 해야 할 상황이었다.[2] 실제로 김철민 캐스터는 본 대회 중계를 승자 결승까지만 진행하고 패자 결승은 당시 팀리그, 마이너리그를 중계하였던 최상용 캐스터가 대신 중계하였다.[3] 이 때 MSL 측에서는 대회가 미뤄지는 기간 동안 유망주 프로게이머들이었던 박지호, 서경종, 안기효, 안석열, 한동욱의 5인을 초청하여 풀리그 방식으로 '센게임 MSL 루키특별전'을 개최하였다.[4] SKT가 아니라 독일의 팀인 슈렛 코만도(Schroet Kommando). CTB3 당시 세인트 예카스테이션(SAINT)으로 출전했다.[5] 네트워크 불량은 물론이고 워3와 스타는 하위버전이 깔려 있기도 했다.[6] 특히 하나포스 센게임 MSL 머머록 결승은 MSL의 최초이자 마지막 테테전 결승이자 역대 최고의 동족전 결승전 중 하나로 평가받고, 마찬가지로 투싼 팀리그 결승전도 팀리그 결승전 중에서 유일하게 7전제까지 가는 치열한 명승부로 평가받는다.[7] 그도 그럴것이, 이 시절 강민의 경기들은 스1판 역사에 남은 불후의 명경기들이 많았다. 대표적으로 VS 이병민 in 패러렐 라인즈 3 패자 준결승전 2경기전으로 그 유명한 할루시네이션 리콜을 방송에서 최초로 보여준 경기이다. 그 외에 승자 8강전에서 조용호를 상대로 보여준 시즈 리버 등의 명경기도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