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탈리아의 前 축구 감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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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bgcolor=#eee><colcolor=#000,#e5e5e5> 이름 | 지노 피바텔리 Gino Pivatelli | |
| 출생 | 1933년 3월 27일 | |
| 이탈리아 왕국 산구이네토 | ||
| 사망 | 2025년 10월 17일 (향년 92세) | |
| 국적 | | |
| 신체 | 키 178cm|체중 75kg[1] | |
| 직업 | 축구 선수 (공격수|수비수 / 은퇴) 축구 감독 (은퇴) | |
| 소속 | <colbgcolor=#eee> 선수 | 인테르나치오날레 (1947~1949 / 유스) 체레아 (1949~1950) 엘라스 베로나 FC (1950~1953) 볼로냐 FC (1953~1960) SSC 나폴리 (1960~1961) AC 밀란 (1961~1963) 바라카 루고 (1965~1966) |
| 감독 | 바라카 루고 (1964~1970) 리미니 FC 1912 (1970~1972) 라벤나 FC (1972~1973) AC 몬차 (1973~1974) 라벤나 FC (1974~1975) 프로 바스토 (1976~1977) 파도바 (1978~1979) 볼로냐 FC 1909 (1987~1992 / 코치) | |
| 국가대표 | 7경기 2골 (이탈리아 / 1954~1958) | |
1. 개요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 출신 前 축구 감독. 공격수로 활약했으며, 특히 1950년대 세리에 A에서 이탈리아인으로는 유일하게 카포칸노니에레를 수상한 선수로 유명하다. 볼로냐 FC 1909에서 7시즌 동안 105골을 기록하며 전성기를 보냈고, AC 밀란에서는 1962년 세리에 A 우승과 1962-63 유러피언컵 우승을 경험했다. 기술적으로 뛰어난 중앙 공격수였지만 다재다능한 선수로서 세컨드 스트라이커, 공격형 미드필더, 심지어 수비수로도 활약할 수 있었다.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에서는 7경기에 출전해 2골을 기록했으며, 1954년 스위스 월드컵 대표팀에도 선발되었다. 은퇴 후 여러 팀에서 감독으로 활동했다.2. 선수 경력
2.1. 클럽
1933년 3월 27일 이탈리아 베네토 주의 산구이네토에서 태어난 피바텔리는 어린 시절 인테르나치오날레의 유스팀에서 축구를 시작했다. 원래 세컨드 스트라이커로 성장했지만, 나중에 민첩하고 기술적인 중앙 공격수가 되었으며 오른발로 강력한 슛을 구사했다.그러나 피바텔리는 인테르 유스팀에서 방출되었고, 4-5번의 테스트를 거쳐 1950년 베로나에 입단했다. 그리고 17세의 나이에 세리에 B에서 데뷔했으며, 프로 두 번째 경기에서 첫 골을 기록했다. 이는 비첸차 칼초와의 경기에서 4-1 승리를 거둔 경기였다. 다음 시즌부터는 주전으로 활약했으며, 3시즌 동안 68경기에서 25골을 기록하며 팀의 강등을 막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53년 여름 볼로냐 FC로 이적한 피바텔리는 1953년 9월 13일 아탈란타와의 홈 경기에서 2-1 승리를 거두며 세리에 A 데뷔전을 치렀다. 볼로냐에서 그는 7시즌 동안 뛰며 총 105골을 기록했다. 특히 1955-56 시즌에는 30경기에서 29골을 넣어 카포칸노니에레에 오르며 1950년대 이탈리아인으로는 유일하게 세리에 A 득점왕을 차지했다. 이는 경기당 거의 1골에 달하는 놀라운 기록이었다.
1960-61 시즌을 SSC 나폴리에서 보낸 후, 1961년 AC 밀란에 합류했다. 밀란에서 그는 네레오 로코 감독 하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로코 감독은 피바텔리를 더 후방 포지션으로 활용했는데, 동료들의 득점을 돕는 역할로 영입되었지만 나중에는 중앙 수비수로도 활약했다. 밀란에서 1961-62 세리에 A 우승과 1962-63 유러피언컵 우승을 경험했다.
1962-63 유러피언컵에서 피바텔리는 1963년 3월 13일 갈라타사라이와의 8강전 2차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5-0 대승에 기여했다. 1963년 5월 22일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결승전에서는 선발로 출전하여 밀란이 벤피카를 2-1로 꺾고 우승하는 데 일조했다. 이는 밀란 역사상 첫 번째 유러피언컵 우승이었다.
피바텔리는 밀란에서 2시즌 동안 38경기에 출전해 11골을 기록한 후 1963년 현역에서 은퇴했다. 현역 통산 세리에 A에서 254경기 출전 127골, 세리에 B에서 68경기 출전 25골을 기록했다.
2.2. 국가대표
피바텔리는 1954년 스위스 월드컵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명단에 포함되었지만 실제 경기에는 출전하지 못했다. 1955년 3월 30일, 22세의 나이에 10번 등번호를 달고 서독과의 친선경기에서 국가대표 데뷔전을 치렀다. 이 경기는 슈투트가르트에서 열렸으며, 피바텔리는 결승골을 넣어 당시 월드컵 우승팀이었던 서독을 2-1로 꺾는 데 기여했다.두 번째 국가대표 골은 1957년 12월 22일 포르투갈과의 1958년 월드컵 예선 경기에서 기록했다. 이 경기는 밀라노에서 열렸으며 이탈리아가 3-0으로 승리했다.
당시 스포츠 언론의 혹독한 비판으로 인해 국가대표 출전 기회가 제한되었다. 특히 잔니 브레라는 1955년 11월 27일 헝가리와의 경기 후 그의 용기 부족을 비판하며 "그의 성격상 다시는 아주리 저지를 입을 자격이 없다"고 혹평했다. 이러한 언론의 영향력이 당시 대표팀 선발에 큰 영향을 미쳤다.
피바텔리는 1954년부터 1958년까지 총 7경기에 출전해 2골을 기록했다.
3. 지도자 경력
은퇴 후 피바텔리는 감독으로 전향하여 주로 이탈리아 하부리그 팀들을 지도했다. 1987년부터 1992년까지는 과거 선수로 뛰었던 볼로냐에서 코치, 유스팀 감독, 부감독 등의 역할을 맡으며 지도자 경력을 마무리했다.4. 사망
2025년 10월 17일에 사망했다. 향년 92세.[2]#[1] 출처[2] 1954년 스위스 월드컵 참가 선수 중 마지막으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