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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년

파일:주재연.jpg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창씨명 신시로 자이넨
新城在年
출생 1929년 1월 28일
전라남도 여수군 돌산면 금성리
(現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금성리 작금마을[1] 559번지[2])
사망 1944년 3월[3] (향년 15세)
전라남도 여수군 돌산면 금성리
묘소 전라남도 여수시
본관 신안 주씨[4]
서훈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1. 개요2. 생애3.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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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독립유공자. 2006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2. 생애

1929년 1월 28일 전라남도 여수군 돌산면(現 여수시 돌산읍) 금성리 작금마을 559번지의 농가에서 아버지 주순지(朱順之, 1879. 7. 20 ~ 1945)[5]와 어머니 김순심(? ~ ?. 2. 6)[6] 사이에서 3남 3녀 중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마을 서당에서 주상규(朱相奎)로부터 천자문과 한글, 일본어를 배웠으며, 5년간의 서당교육을 수료하고 1939년 4월 돌산공립심상소학교 3학년에 편입하였다. 1943년 3월 고향의 돌산국민학교(現 돌산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형편상 이듬해인 1944년에 중학교에 진학하기로 하고 집안일을 도왔다.

국민학교 재학시절부터 항일의식이 투철했던 그는, 1942년 음력 12월 초순경, 그의 형 주재연(朱在淵, 1921. 5. 23 ~ 1943. 2. 17)의 한센병을 치료해주기 위해 사랑채에 함께 기거하던 약장수 송낙섭(宋洛燮)[7]으로부터 "대동아전쟁이 발발한 이후 일본은 남방에서 큰 전과를 올려 미국·영국의 영토를 거의 점령하고 있으나, 전쟁이 장기화 되면 일본은 국토가 협소하고 물자도 부족해 점령한 남방의 지역에서 중요물자를 다량 확보하여도 이를 일본으로 운반하는 도중 곳곳에 많은 미국·영국의 잠수함이 잠복하고 있어 운반이 불가능하므로, 현재 일본 국내에 있는 물자가 모두 없어지면 일본은 패망할 것이고, 조선은 미국과 영국의 힘으로 독립하게 될 것이다"라는 말을 들었으며, 또 그가 국민학교 재학생들에게 '일본과 한국은 다른 나라인데 메이지 43년(1910) 합병으로 인하여 한 나라가 되었다'라고 말한 것을 기억하고서 1943년 9월 초순 그로부터 일본-대만 간 연락선 야마토(大和) 호의 해난 침몰 사건 등을 전하여 들었다. 이때부터 주재년은 고향 등지에서 전황이 일본에게 불리하며, 조국독립의 실현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말을 유포하였다.

그리고 그해 9월 23, 24일경, 나무하러 가던 도중 돌산면 율림리 방면 도로변의 민가 목화밭 담장[8]에 '朝鮮日本別國(조선일본별국, 조선과 일본은 다른 나라다.)', '日本島鹿敗亡(일본도록패망, 일본 섬놈들은 패망한다.)[9]', '朝鮮萬歲(조선만세)', '朝鮮之光(조선지광, 조선의 광복)'이라는 글자를 새겼다가 3일 후에 여수경찰서에 체포되었다.

당시 일제는 경비정 7~8척과 경찰 100여 명을 동원해 경적을 울리며 온 마을을 수색했으나 범인을 잡지 못하였다. 이에 주민들을 모아놓고 마을에 불을 지르겠다고 협박하자 주재연이 이를 듣고 자수했다고 한다.

이후 체포되어 4개월간 구금되었고, 구금 간에 '어린 나이에 단독으로 범행을 했을 리가 없다'며 '배후세력'을 대라는 강요와 함께 온갖 고문을 당했다. 그 뒤 1944년 1월 21일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청에서 이른바 조선임시보안령 위반 혐의로 징역 8개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아 다음날 풀려났으나, 고문의 후유증으로 인해 석방된 지 한 달여만인 1944년 3월 초에 사망하였다. 향년 15세.
"옷을 반듯이 입혀주고, 나 죽은 뒤에 좋은 세상이 온다."
- 주재년이 남겼다고 전해지는 유언.[10]

2006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받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3. 여담

  • 공식적으로 서훈된 남성 독립유공자 중 2019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은 백운호 지사(1931년생)에 이어 두 번째로 나이가 적은 인물이다. 또한 독립운동 참여 당시 나이도 백운호 지사에 이어 두 번째로 어리다. 링크된 기사에는 여성 최연소가 강화선 지사로 나와 있으나 소은명 지사가 맞다.[11] #


[1] 신안 주씨 집성촌이다.[2] 이 지번에 현재 주재년열사기념관이 건립돼 있다.[3] 독립유공자 공적조서와 족보상으로는 1945년 11월 14일로 기재되어 있으나, 오마이뉴스 기사에는 1944년 3월에 사망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 기사 외의 다수의 기사에서 그를 1944년 사망한 것으로 기재하고 있기에, 다수의 설을 따른다.[4] 신안 주씨 26세손 재○(在○) 항렬.(족보)[5] 족보상 1881년생. 족보명 주봉식(朱鳳植).[6] 김해 김씨 김내삼(金乃三)의 딸이다.[7] 일본식 성명 : 야마모토 라쿠쇼우(山元洛燮). 당시 38살. 주재년 검거 후 피신하다가 결국 이른 바 조선임시보안령 위반 혐의로 체포되었으나, 1943년 12월 31일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청에서 기소중지, 불기소처분을 받고 풀려났다.#[8] 지금의 금성리 315-1번지라고 한다.[9] 日本馬麂マケ라고 썼다고도 한다.[10] 주재년의 장조카 주충배(朱充培, 1939. 8. 30 ~ )가 정재협(丁在俠)의 딸인 자신의 어머니 영광 정씨(靈光 丁氏, 1911. 1. 6 ~ )로부터 들은 내용이다.[11] 참고로 가장 나이가 적은 여성 독립유공자는 오희옥 지사(1926년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