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ACB8C4><colcolor=#000000> 제3대 슈루즈버리 백작 존 탈보트 John Talbot, 3rd Earl of Shrewsbury | |
성명 | 존 탈보트 John Talbot |
출생 | 1447년 12월 12일 |
아일랜드 영지 워터포드 시 | |
사망 | 1473년 6월 28일 |
잉글랜드 왕국 코번트리 | |
아버지 | 제2대 슈루즈버리 백작 존 탈보트 |
어머니 | 엘리자베스 버틀러 |
형제 | 앤, 제임스, 길버트, 크리스토퍼, 조지, 마거릿 |
배우자 | 캐서린 스태퍼드 |
자녀 | 조지, 토머스, 앤 |
직위 | 제3대 슈루즈버리 백작 |
1. 개요
잉글랜드 왕국의 귀족, 군인. 장미 전쟁 시기 랭커스터 왕조의 편에 서서 싸웠지만 토우턴 전투 이후 요크 왕조에 귀순했다.2. 생애
1447년 12월 12일 아일랜드 영지 워터포드 시에서 제7대 퍼니벌 남작 존 탈보트와 제4대 오몽드 백작 제임스 버틀러의 딸인 엘리자베스 버틀러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그가 태어났을 당시 아버지는 백년전쟁에서 프랑스에서 수많은 전투를 치르던 초대 슈루즈버리 백작 존 탈보트를 대신해 아일랜드 대법관을 맡았다. 1453년 7월 17일 카스티용 전투에서 초대 슈루즈버리 백작 존 탈보트가 전사한 뒤, 아버지 존 탈보트는 제2대 슈루즈버리 백작이 되었다.1460년 7월 10일 노샘프턴 전투에서 아버지가 전사한 뒤, 그는 12세의 나이에 제3대 슈루즈버리 백작이 되었다. 이후 어린 나이에도 랭커스터파에 가담한 그는 1461년 2월 17일 제2차 세인트 올번스 전투에 참전한 뒤 기사 작위를 받았고, 3월 29일 토우턴 전투에 참전했다. 하지만 토우턴 전투에서 랭커스터파가 완패한 뒤, 그 해 12월 에드워드 4세에게 귀순한 뒤 사면받았다. 1469년 에드워드 4세는 그를 요크셔, 컴벌랜드 및 웨스트모어랜드 오에르(oyer)와 피니르(finir) 위원회 수장으로 임명했다.
1470년 가을 랭커스터파가 제16대 워릭 백작 리처드 네빌과 몬터규 후작 존 네빌 형제의 지원에 힘입어 에드워드 4세를 축출하고 런던 탑에 갇혀 있던 헨리 6세를 복위했다. 존 탈보트는 헨리 6세의 복위식에 참석했으며, 슈롭셔의 오에르와 피니르 위원회 수장으로 선임되었다. 하지만 이듬해에 벌어진 바넷 전투와 튜크스베리 전투에는 참전하지 않았다. 이후 복위한 에드워드 4세는 1471년 9월 11일에 존 탈보트를 노스 웨일스 대법원장으로 선임해 그곳의 평화 유지를 맡겼다. 1472년 2월 6일과 1473년 5월 16일에는 스코틀랜드 왕국의 국왕 제임스 3세와 평화 협상했다. 1473년 6월 28일 코번트리에서 사망했고, 노팅엄셔 워크숍 수도원에 안장되었다. 사후 장남 조지 탈보트가 작위와 영지를 계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