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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탈보트(제2대 슈루즈버리 백작)

<colbgcolor=#ACB8C4><colcolor=#000000> 제2대 슈루즈버리 백작
존 탈보트
John Talbot, 2nd Earl of Shrewsbury
성명 존 탈보트
John Talbot
출생 1413년 12월 12일
잉글랜드 왕국 사우스요크셔 셰필드
사망 1460년 7월 10일
잉글랜드 왕국 노샘프턴
아버지 초대 슈루즈버리 백작 존 탈보트
어머니 모드 네빌
형제 토머스, 캐서린, 크리스토퍼, 조앤, 앤
배우자 엘리자베스 버틀러
자녀 앤, , 제임스, 길버트, 크리스토퍼, 조지, 마거릿
직위 제2대 슈루즈버리 백작

1. 개요2. 생애3. 가족

1. 개요

잉글랜드 왕국의 귀족, 군인. 장미 전쟁 초기 제3대 요크 공작 리처드 편에 섰다가 앙주의 마르그리트 왕비의 회유에 따라 랭커스터 왕조 편으로 돌아섰고, 1460년 노샘프턴 전투에서 전사했다.

2. 생애

1413년 12월 12일 잉글랜드 왕국 사유스요크셔 셰필드 성에서 초대 슈루즈버리 백작 존 탈보트와 퍼니발 남작 토머스 네빌의 딸 모드 네빌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1426년 헨리 6세에 의해 기사 작위를 받았고, 1435년 또는 1436년에 워크숍 영지를 받았다. 아버지 존 탈보트가 거의 항상 아일랜드프랑스 등지에서 종횡무진하는 동안, 그는 웨스트 라이딩과 셔우드 숲 주변 영지에서 어머니의 손에 자랐다. 1445년 3월 아버지의 추천으로 아일랜드 대법관으로 부임해 그곳을 통치하다가 1447년 제3대 요크 공작 리처드가 더블린에 도착한 뒤 그에게 직위를 넘기고 물러났다.

1453년 아버지 존 탈보트가 카스티용 전투에서 전사한 뒤 아버지의 영지와 슈루즈버리 백작위를 물려받았다. 1455년 장미 전쟁의 첫 번째 전투인 제1차 세인트 올번스 전투에서 요크 공작의 편에 섰지만, 나중엔 앙주의 마르그리트 왕비의 회유에 따라 랭커스터 추종자들을 이끌었고, 왕비의 지원에 힘입어 재무장관과 체셔의 대법원장을 역임했다. 그러나 1458년 10월 요크파가 그의 무능함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면서 사임해야 했다. 1459년 10월 13일 러드퍼드 다리 전투에서 요크군이 와해된 뒤, 그는 코번트리에서 열린 의회에 참석해 요크 공작과 그의 추종자들을 반역자로 규정하고 재산을 몰수하는 안건에 적극적으로 찬성해 통과되도록 했다.

1460년 7월 10일 노샘프턴 전투에서 랭커스터군이 와해된 뒤, 헨리 6세의 천막 근처에 숨었다가 요크파 군인들에게 발각된 뒤 참살되었다. 사후 장남 존 탈보트가 영지와 작위를 계승했다.

3. 가족

  • 엘리자베스 버틀러(1420 ~ 1473): 제4대 오몽드 백작 제임스 버틀러의 딸.
    • 앤 탈보트(1445 ~ 1494); 헨리 버넌 경과 초혼, 랄프 셜리 경과 재혼.
    • 존 탈보트(1448 ~ 1473): 제3대 슈루즈버리 백작.
    • 제임스 탈보트(1450 ~ 1471)
    • 길버트 탈보트(1452 ~ 1517): 보스워스 전투에서 헨리 7세의 편에 서서 리처드 3세를 물리쳤다.
    • 크리스토퍼 탈보트(1454 ~ 1474년 이후): 슈롭셔주 크라이스터처치의 주임 목사.
    • 조지 탈보트(1456 ~ ?)
    • 마거릿 탈보트: 윌리엄 첼린저 경의 아들인 토머스 첼린저의 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