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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위만조선의 제2대 국왕.2. 생애
傳子至孫右渠, 所誘漢亡人滋多, 又未嘗入見;真番旁衆國[2]欲上書見天子, 又擁閼不通.
아들을 거쳐 손자 우거(右渠)에 이르러, 꼬임에 넘어간 한(漢)나라의 망명자이 점점 더 많아졌고, (우거는) 아직 들어가 천자를 뵙지도 않았다. 진번(真番) 옆의 여러 나라들이 글을 올려 천자를 뵙고자 하였으나, 또한, (우거가) 가로막아 통하지 못하였다.
-사기 조선열전-
아들을 거쳐 손자 우거(右渠)에 이르러, 꼬임에 넘어간 한(漢)나라의 망명자이 점점 더 많아졌고, (우거는) 아직 들어가 천자를 뵙지도 않았다. 진번(真番) 옆의 여러 나라들이 글을 올려 천자를 뵙고자 하였으나, 또한, (우거가) 가로막아 통하지 못하였다.
-사기 조선열전-
위만의 아들이자 우거왕의 아버지다. 본인의 왕위가 우거왕에게 계승되어 3대 부자세습을 이루었다는 점 외에 행적과 휘도 전해지지 않는다. 본 위키 문서의 표제 역시 임시 호칭이다.
다만, 전대인 위만이나 후대인 우거와는 다르게 중국에서 그와 관련된 기록이 세습사실 말고는 아예 존재하는 않는다는 점을 미루어보아 중국과의 관계에서 크게 눈밖에 날만한 짓은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반대로 그의 재위기간 동안은 크게 의미있는 대중국 교류가 없었다고 볼 수도 있다.
전대인 위만이 일구어낸 고조선의 국력이 후대인 우거왕까지 큰 문제없이 전해져 한나라에게 위협이 될 정도로 성장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주로 내치에 힘쓴 것으로 추정되나 확실한 부분은 아니다.
물론 무엇인가 기록될만한 업적을 남기는게 힘들었을 정도로 재위기간이 짧았을 수도 있지만, 3대 86년 동안이나 이어진 위만조선의 존속기간과 재위를 제대로 끝마치지 못하고 피살당한 우거왕, 장성하고 자기 세력을 규합해 망명왔다가 찬탈을 통해 왕위에 오른 창업군주 위만왕 등을 고려했을 때 상고 시대의 군주인 그의 재위가 그렇게까지 짧았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3]
아들은 우거왕이지만 그를 낳은 왕후의 이름은 알 수 없다.
3. 가족
4. 여담
- 위만조선의 군주 중 유일하게 문헌을 통한 존재만 확인되었지, 실질적으로는 휘부터 시호, 행적까지 그에 대한 모든것이 불명이다. 따라서 그를 지칭할 표현이나 호칭이 아예 없기 때문에 본 문서의 표제도 임의로 붙여진 것이며,[4]한국어 위키백과에는 그냥 불명이라고 적혀있다. 그의 존재가 확인된것도 위만과 우거왕 사이에 재위한 군주가 있었다는 식으로 알려진게 전부다.
- 중국 바이두백과를 비롯해 몇몇 중국 사이트에서는 위만조선왕 2세의 이름이 위몽(衛蒙)으로 되어있고, 기원전 161년 즉위해 기원전 129년에 죽었다고 나와있으니 역시 출처나 근거는 불분명하다. 바이두소후바이커[7]
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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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위'가 정말로 성씨인지는 논란이 있다[2] 진번방진국(辰番旁辰國)이라고 기록한 판본도 존재한다.[3] 단 우거왕은 적어도 20년은 즉위했다. 남려라는 자가 우거왕 대인 기원전 128년 배반했단 기록이 있기 때문.[4] 다른 고조선의 군주들인 조선후(기원전 7세기), 조선왕 1세도 비슷한 맥락으로 지어진 임시 호칭이다.[5] 참고 @[6] 참고 @[7] 중국어 위키백과의 위만, 우거왕 문서에선 단지 '위만조선제2대왕(衛氏朝鮮第二代王/卫氏朝鲜第二代王)'로만 적혀있는 점으로 보아 현대에 누군가 꾸민 내용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