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축구감독 | ||
이름 | 정종덕 鄭鍾德 | Jung Jong-Duk | |
출생 | 1943년 경기도 가평군 청평면 | |
사망 | 2016년 2월 16일 (향년 73세)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
학력 | 경신고등학교 (졸업) 경희대학교 (졸업) | |
신체 | 165cm | |
직업 | 축구 감독 | |
지도자 | 경신중학교 (1968 / 코치) 경성고등학교 (1969~1970) 한국중고교축구연맹 (1970 / 총무) 안양공업고등학교 (1971~1975 / 코치) 대한축구협회 (1973 / 기술위원)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1975~1976 / 코치) 계성고등학교(대구) (1976~1980 / 코치) 건국대학교 (1980~2000) 한국대학축구연맹 (1991 / 기술이사) 한국대학축구연맹 (1993 / 전무) 대한민국 유니버시아드 (1993) 포항 스틸러스 (2005~2006 / 기술고문) 충주 험멜 (2007~2011 / 기술고문) 춘천기계공업고등학교 (20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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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축구감독. 축구감독으로 하계유니버시아드에서 준우승을 하였다.1980년 부터 2000년까지 건국대학교 축구부 감독을 역임했으며, 후에 건국대학교 축구부 명예감독이 되었다.
2016년 2월 16일 지병인 당뇨로 인해 심근경색으로 자택에서 별세하였다. 향년 73세.
2. 여담
정종덕감독은 안양공고에서는 1974년 6관왕을 포함 5년간 11회 우승을 이끌었고, 계성고에서는 1975년 3관왕을 하였다.건국대는 부임 후 다음해인 1981년 종합선수권 부터 1998년 춘계연맹전 까지 9회 우승을 이끌었다.
1981년, 종합선수권 경기에서 국민대, 대우, 포철, 고려대를 내리 꺾고 우승을 한 81종합선수권 4경기는 평생 잊지 못했다.
기적같은 승리의 연속이었죠. 당시 결승은 1-1 무승부로 끝나 재경기까지 해 2-1로 가까스로 이겼는데 고려대는 국가대표가 9명이었어요. 모두 고려대 벤치에 앉은 선수가 건국대 주전들보다 낫다고 할 때이니 난리가 났지요~
다른 것 없었습니다. 선수들에게 정신 똑바로 차리고 집중력을 갖고 경기하라고 했죠~
다른 것 없었습니다. 선수들에게 정신 똑바로 차리고 집중력을 갖고 경기하라고 했죠~
고교때 공격수를 뽑아 수비로 쓰면 공격전환 능력이 좋아 효과를 많이 본다는게 그의 지론이다.
그는 공격수 랭킹 1위를 못 뽑는 대신 그의 천적을 선발해 수비를 맡기곤 한다. 수비는 체격과 힘이 좋은 선수를 뽑아 가르치면 된다.
유상철은 힘과 헤딩력이 좋으나 발이 안 빠른 선수. 고교때 센터포드였던 것을 대학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전환해 1순위 선수로 키웠다.
유상철은 힘과 헤딩력이 좋으나 발이 안 빠른 선수. 고교때 센터포드였던 것을 대학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전환해 1순위 선수로 키웠다.
2002년 월드컵대 폴란드와의 예선전 첫경기 1,2호골은 황선홍과 유상철이었다. 이들은 건국대 선후배로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는데 그들의 뒤에는 정종덕 감독이 있었다. 이때 대표팀에는 건국대 소속의 이영표, 현영민까지 있었다.
또한 황선홍, 유상철, 이영표, 현영민외에 고정운, 유승관, 이상윤, 공문배, 유영록, 권우진, 신병호, 노규영등이 국가대표에 이름을 올렸다.
그의 업적이 더욱 의미있는 것은 스카우트 싸움에서 당할 수 없는 연세 고려 한양대가 고교 최고스타를 싹쓸이한 후 남은 선수들을 모아 이루어 낸 것이기 때문이다.
정감독은 선수들 관리방식을 밝혔다.
입학후 2년내내 △400m를 52∼56초에 뛸 것 △입학후 2년내에 12분동안 400m 트랙을 8바퀴 이상 돌 수 있는 스피드를 갖출 것 △3단 줄넘기를 100회 이상 계속해 고무공과 같은 탄력을 만들 것을 과제로 내주고 있다. 주말 외출도 포기하고 노력해 달성한 선수가 고정운 이상윤 이영표 현영민 등이다. 윤상철 고정운 황선홍 이상윤 유상철등 건국대 출신중에 30세가 훨씬 넘어서도 뛴 선수가 많은 것은 이렇듯 대학시절부터 근성과 자기관리가 철저했기 때문이다..
신문선은 정종덕 감독을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관련기사
좀처럼 속을 드러내지 않아 축구계 동료들에게 '마오쩌둥', 선수들에게는 '칼날'로 불리는 정종덕 감독은 자신의 독특한 색깔을 갖고 거기에 맞는 선수를 골라 스타로 키우는 뛰어난 자질을 지녔다. 2류선수 밖에 데려올 수 없는 악조건이지만 가능성 있는 선수를 찾아서 정신력을 바탕으로 한 강한 훈련을 통해 1류선수와 1류팀을 만든 그의 능력은 감탄할 만 하다.
국내 축구계에 그와 같은 지도력과 열성이 높이 평가받는 문화가 조성되지 못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런 면에서 한국 축구를 위해 더 큰 일을 할 기회를 얻지 못한 정감독은 피해자이다. 히딩크 감독이나 이탈리아의 사치, 일본의 트루시에 감독 모두가 선수시절에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으나 세계적 명장이 되지 않았는가. 우리나라 축구도 이름으로 감독하는 구태를 벗어나 성적으로 지도자를 평가해야 발전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