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2-06 18:15:59

정대필

성명 정대필(鄭大弼)
초명 정봉필(鄭鳳弼)
사언(士彦)
이우당(二友堂)
생몰 1880년 5월 10일 ~ 1938년 2월 5일
출생지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사망지 경상남도 거창군
본관 초계 정씨[1]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정대필은 1880년 5월 10일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22일 거창읍 장날을 이용해 독립운동을 벌이려 했던 오문현(吳文鉉)[2]·신병희(愼炳禧)·어명우(魚命佑)·어명철(魚命喆)·이병홍(李秉洪)·김호 등 6명이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가조면과 가북면민 3천여명과 함께 이날 오후 2시 30분경, 몽둥이를 가지고 장기리 만도정 앞에 대형 독립기를 세운 후, 주동인물의 석방을 요구하며 독립만세를 외치고 거창읍으로 시위행진하였다.

시위대열이 사포현(沙浦峴)에 이르렀을 때, 거창 일본군 헌병대와 용산 일본군 헌병분견대가 합세하여 진로를 차단하고 공포를 발사하며 해산을 명령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에 굴하지 않고 시위군중과 함께 함성을 지르며 헌병들을 향하여 돌진하였다. 이때 사태의 급박함을 느낀 일본 헌병대의 발포로 4명이 현장에서 순국하였으며, 많은 부상자가 발생하여 시위대열은 일단 해산하였다. 그는 그후 일제의 검속으로 체포되었으며, 징역 3년형을 받고 진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거창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38년 2월 5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정대필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1] 박사공파(博士公派)-상시공파(常侍公派)-교위공파(校尉公派) 26세 필(弼) 항렬.[2] 독립유공자로 지정된 오문현과 동명이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