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평수 (全平水)
1. 개요
대한민국 및 북한의 물리학자.2. 생애
1916년 경상북도 달성군에서 출생. 대구공립농림학교(大邱公立農林學校; 현, 대구농업마이스터고등학교) 졸업 후 일본 본토로 넘어오게 된다.1939년 3월에 도쿄물리학교(현, 도쿄이과대학[1]) 이화학과류(理科学科類) 고등사범과 1부(高等師範科一部)를 졸업한 뒤 1939년 4월에 홋카이도제국대학(현, 홋카이도대학) 이학부 물리학과에 입학하게 된다.
1942년 12월 홋카이도제국대학을 졸업 후 일본 이화학연구소에서 조수로 임명된다. 이화학연구소에서는 니시나 연구실(Yoshio Nishina, 仁科芳雄研究室)에서 근무했으며 일본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인 유카와 히데키도 동시대에 이 연구실에 있었다.
그 후, 조선으로 돌아와 1943년에는 경성제국대학 이공학부 조수로 임명되어 야지마 연구실에서 일했고, 해방이 되자 1946년에 경성대학 이공학부 조교수로 승진하였다.
그러나 미군정의 국대안 파동과 북한의 인텔리 모시기 정책에 회유되어 6.25 전쟁 이전에 월북한 물리학자로는 그를 포함해 도상록, 정근[2], 이용태, 손원록[3], 이흥국 등이다.[4]
소련, 중공과의 정치적 분쟁으로 북한은 핵무기 기술 이전이 요원해지자 자체적인 기술개발에 나섰는데 그를 포함해 도상록 등 1세대 북한과학자들의 역할이 지대했다고 볼 수 있다. 참고 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