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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여자고등학교 全州女子高等學校 Jeonju Girl's High School | |
<colbgcolor=#2d5517> 개교 | 1926년 |
유형 | 자율형 공립고등학교 |
성별 | 여학교 |
운영 형태 | 공립 |
교장 | 이영숙 |
교감 | 이상규 |
교원 수 | 72명 (2023학년도 기준) |
학생 수 | 703명 (2023학년도 기준) |
주소 |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덕진구 모래내 6길 14 (인후동 2가) |
웹 사이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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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전주여자고등학교(全州女子高等學校)[1]는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덕진구 인후동에 있는 공립 일반계 고등학교.2. 학교 연혁
- 1926년 5월 25일: 전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 설립 인가
- 1951년 9월 25일: 전주여자고등학교로 개칭
- 1974년 6월 24일: 풍남동 구교사에서 인후동 현교사로 이전
- 2023년 2월 3일: 제 94회 졸업식(누적 졸업생 32,462명)
- 2023년 3월 2일: 제 97회 입학식(신입생 276명)
3. 교훈 및 상징
3.1. 교훈
맑고 곧게 부지런히 튼튼하게3.2. 교가
전여고는 찬가가 있다. 원래의 교가가 왼쪽의 것이고 현재는 찬가이다. 현재 교가는 오른쪽의 것이다.
3.3. 교목
은행나무3.4. 교화
은방울꽃[2]3.5. 교표
교표 |
- 흰빛의 은방울 꽃은 '부덕'을 상징
- 본바탕의 녹색은 '평화'를 상징
- 붉은 빛은 '정열'을 상징
- 삼각형 <윤곽>은 지덕체의 연결임
백선 |
- 중앙의 흰선은 결백, 신중, 솔직, 공평, 평화를 상징
- 상단의 검은 선은 곧음과 처음에서 끝까지 의지의 관철을 상징하는 우리의 마음자세를 상징
- 하단의 검은선은 삼라만상의 으뜸으로 영재의 긍지를 나타냄
4. 학교 특징
4.1. 복장
동복 |
간복 |
하복 |
- 6·25 전쟁 이후 한 번도 바뀌지 않은 교복이다. 신입생들은 교복 치마 길이를 보고 처음엔 멘붕이 오지만 학교를 다니다 보면 익숙해진다. 무엇보다도 움직이기에 편하다.
5. 출신 인물
- 강소연(배우)
- 김영희(외교관)
- 김정숙(36회 졸업생): 세계여성단체협의회 회장
- 김현미(51회 졸업생): 제17, 19, 20대 국회의원, 제4대 국토교통부 장관
- 박명화(양궁)
- 박보영(50회 졸업생): 법조인, 대한민국 헌정상 3번째 여성 전대법관
- 박주현: 제20대 국회의원, 법조인.
- 박청수: 원불교 교무. 사회공헌활동으로 유명하다.
- 서유미: 現 한국교육학술정보원장, 前 교육부 차관보
- 손정아: 강철의 연금술사의 '에드워드 엘릭'등을 연기한 대한민국 성우
- 양귀자(44회 졸업생): 소설가(원미동 사람들 등)
- 양혜령: 치과의사 및 제5대 광주광역시의회 의원
- 엄유신: MBC 드라마 대장금에서 정현왕후[3] 등을 연기한 대한민국 배우
- 은희경(48회 졸업생): 소설가
- 이명옥: 양궁 국가대표
- 이정옥: 제8대 여성가족부 장관
- 이지현: 1998년생 가수.
- 전정희(50회 졸업생): 제19대 국회의원
- 지차남
- 최명자: 방시혁 모친
6. 기타
6.1. 학교 설립 배경
1910년 대에는 근대 서당의 전성기로서 서당교육이 활성화 되던 때였다. 서당교육이 활성화된 이유는 일본에게 국권이 넘어가면서 자제들을 공립학교에 보내기 꺼리던 것에 기인한 것이다. 총독부는 학생들이 공립학교에 입학을 꺼리자 무료급식까지 실시하면서 학생을 모으기도 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가면서 신식교육을 받아야 사회적으로 유용하다는게 확실해 졌고, 더불어 우리나라의 높은 교육열까지 더해져 신식교육 수효가 빠르게 늘어나게 된다. 당시 전주시에는 조선 시대에 설립되어 대한제국 시대에 정식 개교한 신흥학교[4]와 기전학교[5]가 남녀 초·중등교육을 담당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학교들은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였기 때문에 전주지역 유림들이나 기독교를 꺼리는 주민들에게는 자제들을 입학시키기에 거부감이 있었다. 이에 새로운 학교 설립이 지역 유림들 사이에서는 숙원 사업이 되었고 1919년에 '관립전주고등보통학교'[6]가 세워지면서 이 문제가 해결되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여학교 설립은 과제로 남아 있었는데 이에 전주 유지였던 이강원, 윤상언, 김응두 등이 발기인회를 구성하여 적극적인 설립 운동에 들어갔고 총독부와 교섭을 벌여가며 각고의 노력 끝에 1926년 5월 25일 '전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가 설립되게 된다. 이 후 오랫동안 전주지역 여성 중등교육을 맡아 왔다. 2001년 솔내고등학교를 설립하기 전까지 전주시 일반계 여자고등학교 중 유일한 공립 학교였는데 전주시 자체가 워낙 사립 일반계 고등학교가 많아서 공립학교가 별로 세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20세기 전주시에서는 일제시대 부터 이어온 전주여고만이 여고로서[7] 는 유일한 일반계 공립학교였던 것이다.6.2. 여담
- 전주나 전라북도에 오래 산 노인들은 '전여고'라고 하면 대다수가 알아듣지만 '전주여고'라고 하면 못 알아듣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어떤 학생이 택시 기사에게 '전주여고'로 가달라고 말했는데 전주역으로 갔다는(...) 후일담이 꽤 있다.
- 체육대회 때 삼겹살 파티를 한다. 전주시 일반계 고등학교 중 유일하다. (코로나 이후로 사라졌다)
- 규정이 매우 빡세서 입학 초에 고생이 좀 심하다. 어떤 날은 정문에 선도부가 좌르르 나와서 하나하나 검사할 때도 있다. 학생들은 흡사 공항 탐지기 속의 물건이 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규정에 대한 압박감이 점점 없어지고(무뎌진다 보는게 맞다...) 3학년이 되면 활동하는 선도부가 다 후배기 때문에 규정위반으로 잡혀도 없는 학번을 알려주거나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 시험 2주 전부터는 선도부가 서지 않아 그걸 이용해 지각하거나 교복을 입지 않고 오는 아이들도 더러 있다.
- 고3들은 수능 결과가 나올 때까지 학교에 나오다가(물론 면접이다 뭐다 해서 안 나오는 사람도 있다) 수능 결과 나오기 전날에 가정학습을 명목으로 한 확인서를 셀프로 학부모 사인까지 해서 제출한 뒤 그 다음날까지 나오고 졸업식할 때까지 학교에 가지 않는다. 그 기간동안 정시 상담을 하기도 한다.
- 고교 평준화 이전에는 완주군, 진안군, 무주군, 장수군, 임실군, 남원시에서 전주여고로 오는 경우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