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1-30 18:14:19

전일(1896)


<colcolor=#fff><colbgcolor=#0047a0> 본명 전성인(田誠忍)
이명 전의(田義)·이철(李哲)·이군철(李君哲)
이석리(李錫利)[1]
출생 1896년
평양부 삼화군 서리면 충락리
(현 평안남도 룡강군 용흥리)
사망 1919년 9월 15일
중국 펑톈성 성징청 샤오난먼 내 톈청여포
상훈 2010년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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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독립유공자. 201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2. 생애

1896년 평양부 삼화군 서리면 충락리(현 평안남도 룡강군 용흥리)에서 태어났다. 1913년 평안남도 평양부에서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던 중 일본 제국 경찰에 발각되었으나 중화민국 펑톈성 둥볜다오(東邊道) 퉁화현(通化縣)으로 도주하였다.[2] 이후 궐석재판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1919년 9월 펑톈성 난루다오(南路道) 선양현(沈陽縣)에서 구국모험단(救國冒險團)에 입단하여 옛 성징청(盛京城) 샤오난먼 내 톈청여포(天成旅鋪) 제3호실에서 서로군정서 의용대장 이준용(李濬鏞), 신두식과 함께 일본 제국 고관 처단 및 관청 파괴에 사용할 사제 폭탄 수백 개를 제조했다. 그러나 1919년 9월 15일 오후 6시에 폭탄 한 개가 바닥에 떨어져 폭발하는 바람에 현장에서 즉사하였다. 이후 봉천군벌 관헌에 따르면 유류품으로 이미 제조한 사제 폭탄 8개, 폭탄 재료 다수와 독립운동과 관련된 문서가 발견되었고, 이로 인해 관련자인 이호연(李浩然)이 체포되었다.

2010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받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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