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경제·언어학자 저우유광 [ruby(周, ruby=Zhōu)][ruby(有, ruby=Yǒu)][ruby(光, ruby=guāng)] | |
<colbgcolor=#000><colcolor=#fff> 본명 | 저우야오핑 周耀平 |
출생 | 1906년 1월 13일 |
청나라 장쑤성 창저우시 | |
사망 | 2017년 1월 14일 (향년 111세) |
중국 베이징 | |
학력 | 창저우 고등학교 (졸업) 상하이 세인트 존스 대학교 (경제학 / 학사) 화둥사범대학 (언어학 / 학사)[1] 도쿄제국대학 (경제학 / 중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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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의 언어학자이자 경제학자. 한어병음을 고안하여 '한어병음의 아버지'라고 불린다.2. 생애
1906년 1월 13일 장쑤성 창저우시에서 청나라 관리의 아들로 태어났다. 10살이 되던 1916년 쑤저우시로 이사했고, 1918년 창저우 고등학교에 입학해 1923년 졸업, 상하이 세인트 존스 대학교에 입학했다. 1925년 5·30 사건이 일어나자 화둥사범대학로 편입해 1927년 언어학을 전공했다.1933년 4월 30일 장윈허와 결혼했다. 이후 일본으로 이주하여 도쿄제국대학에 입학했으나 일본 내에 복잡한 정세로 1935년 일본 유학 생활을 중단하고 중국으로 돌아간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충칭으로 피신하여 신화 은행에서 근무했다.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에는 푸단 대학, 상하이 재경 학원에서 경제학을 가르쳤다.
1955년 당시 총리였던 저우언라이의 요청으로 한어병음을 개발하던 문자 개혁 위원회를 총괄하게 되었다. 그렇게 저우유광의 노력으로 1958년 한어병음이 발표되었다.
하지만 1960년대 문화대혁명이 일어나고, 홍위병들에 의해 반동분자로 낙인 찍혀 노동 수용소에 수감되었다. 이후 각종 해외 책들을 중국어로 번역했고, 저작 활동을 했지만 대부분 검열되었다. 또한 죽을때까지 중국 공산당에 대해 비판적으로 평가했다.
3. 여담
- 아내인 장윈허(張允和)는 문학자이자 작가이며, 장가사저매(张家四姐妹)로 유명하다.
[1] 상하이 세인트 존스 대학에서 편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