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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작전 방패(영어: Campagin shield/Campagin arm shield, 독일어:Ärmelschild)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국방군, 친위대 등이 수여한 훈장이다.2. 상세
철십자 훈장 등 전쟁기간 내내 수여된 다른 훈장들과는 다르게, 특정 작전이나 전역에 참전한 인물들에 한정하여 수여하였다는 특징이 있다.또한 공식적로 제작된 작전 방패들은[2] 모두 독일군이 승리한 전투에 한해서만 제작되었다.[3] 작전 방패라는 이름답게 모든 훈장은 방패모양으로 제작되었지만, 세부적인 디자인에는 차이가 있었다.훈장의 패용 위치는 왼쪽 팔 위쪽이다. 참고로 작전 방패를 다수 수여받았을 경우에는 먼저 받은 방패 아래에 패용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패용례. 사진 속 육군 기갑 소위가 패용한 작전 방패는 크리미아 쉴드이다. 쉴드는 패용할 옷과 같은 재질과 색상의 원단을 테두리가 넉넉하게 잘라 밑판을 만들어 거기에 쉴드를 고정하고, 천 밑판을 박음질해 패용한다. 위 사진은 검은색 육군 전차복에 부착한 모습으로, 가슴팍에 패용한 훈장은 왼쪽부터 전상장 은/금장(빛 때문에 구분이 불가능하다.), 전차 돌격장 은장이다.
3. 목록
3.1. 공식 훈장
독일 국방군 측에서 정식으로 디자인하고 제작 및 수여한 작전 방패들이다. 참고로 디자인에는 항상 검독수리와 하켄크로이츠, 그리고 해당 전역/전투가 벌어졌던 연도가 세겨졌으며, 그 외의 세부적인 디자인은 작전 방패들마다 차이가 있다.이름 | 제작년도 | 설명 | 수훈자 수 |
나르비크 쉴드 Narvikschild | 1940년 8월 | 노르웨이 침공 당시 나르비크 전투에 동원된 군인들에게 수여된 훈장이다. 검독수리와 육군 산악병과를 상징하는 에델바이스, 해군을 상징하는 닻, 그리고 공군을 상징하는 프로펠러가 새겨져 있다. 육공군용 은색, 해군용 금색 두 종류가 있다. | 8,527명 |
콜롬 쉴드 Cholmschild | 1942년 6월 | 독소전쟁 당시 콜롬 포켓에서 전투를 치른 군인들에게 수여된 훈장이다. 철십자를 쥔 검독수리가 그리져 있다. | 약 5,550명 |
크리미아 쉴드 Krimschild | 1942년 6월 | 독소전쟁 당시 세바스토폴 공방전을 위시한 크림 반도 전역에서 전투를 치른 군인들에게 수여된 훈장이며, 수훈자가 무려 25만 명으로 제일 많다. 방패에는 크림 반도의 대략적인 전도가 그려져 있다. | 약 250,000명 |
데미얀스크 쉴드 Demyanskschild | 1943년 4월 | 독소전쟁 당시 데미얀스크 포위전에 동원된 군인들에게 수여된 훈장이다. 교차된 검과 항공기[4] 가 그려져 있다. | 약 96,000명 |
쿠반 쉴드 Kubanschild | 1943년 9월 | 독소전쟁 당시 쿠반 전역에 참전한 군인들에게 수여된 훈장이다. 쿠반 전역의 전도가 그려져 있다. | 약 145,000명 |
바르샤바 쉴드 Warschauschild | 1944년 12월 | 바르샤바 봉기 진압에 참여한 군인들에게 수여될 예정이었던 훈장이다. 실제로 군부에 의해 직접 디자인되었고 심사도 통과하였으나, 무슨 영문에서인지 종전때까지 단 한 개도 수여되지 않았다. 뱀을 깔아뭉개는 검독수리가 세겨져 있다. | 수훈자 없음 |
라플란드 쉴드 Laplandschild | 1945년 2월 | 라플란드 전쟁에 참전한 군인들에게 수여된 훈장이다. 라플란드 전투의 대략적인 전도가 그려져 있으며, 모든 작전 방패를 통틀어 유일하게 하켄크로이츠가 없다. | 불명[5] |
3.2. 비공식 훈장
독일 국방군 측에서 정식으로 디자인되지 않거나 정식 승인을 받지 않은 작전 방패들이다. 다만 정식 승인을 받지 않았을 뿐이지 덩케르크 쉴드나 로렌 쉴드처럼 해당 지역에서 사기 진작 목적으로 자체적으로 제작돼서 수여된 예도 있다.3.3. 개정판
1957년, 독일 연방군은 검독수리와 하켄크로이츠를 뺀, 한마디로 나치색을 제거한 새로운 작전 방패들을 제작했다. 이 새로운 작전 방패들의 목적은 수훈자가 나치 독일 시대의 훈장을 가지고 오면 나치 상징을 제거한 훈장으로 교환해 주는 방식으로 쓰려고 만든 것이었다.[6]비나치 버전으로 새로 제작된 작전 방패들은 나르비크 쉴드, 촘 쉴드, 크리미아 쉴드, 데미얀스크 쉴드, 쿠반 쉴드 5개 뿐이었다. 바르샤바 쉴드는 이 훈장을 교환할 수훈자가 전무했던 관계로 제작할 이유가 없었고, 라플란드 쉴드 역시 마찬가지로 수훈자가 극히 적었던 데다가 전후 핀란드와의 외교관계를 고려하여 새로운 버전을 제작하지 않았다. 비공식 작전 방패들 역시 비공식이라는 이유로 비나치 버전이 제작되지 않았다.
[1] 사진에 나온 작전 방패들은 좌측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라플란드 쉴드, 데미얀스크 쉴드, 나르비크 쉴드, 크리미아 쉴드, 콜롬 쉴드, 쿠반 쉴드이다.[2] 비공식 작전 방패들은 해당사항이 없다.[3] 그런데 엄밀히 말하자면 쿠반 쉴드는 쿠반 전역이 결국 독일군의 전면 후퇴로 종료되었기 때문에 승리라고 말하기에는 어폐가 있다. 라플란드 쉴드 같을 경우에는 라플란드 전쟁 자체는 독일군이 핀란드에서 쫓겨나면서 패배로 끝났지만, 후퇴 과정에서 병력들이 대부분 온전히 보전되었고 포위섬멸을 면한 공로로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4] 데미얀스크 포위전에서 공군의 공중 보급이 승리의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을 감안해서 그려졌을 가능성이 높다.[5] 제작시기가 매우 늦었던 관계로 수훈자가 극히 적다.[6] 그러나 정작 철십자 훈장과 마찬가지로 대다수의 수훈자들은 비나치 버전으로 교환해가지 않았다는 후일담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