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2-17 16:00:28

자야

1. 子夜2. 과자3. 김자야(金子夜, 김영한)
3.1. 출생 3.2. 기생3.3. 백석과의 만남3.4. 학력 3.5. 대원각 3.6. 사망
4. 원피스(만화)에 등장하는 지명5. 리그 오브 레전드챔피언 자야

1. 子夜

자시(子時). 오후 11시~ 새벽 1시에 해당하며, 부정시법으로는 삼경(三更)이다.

2. 과자

1970년대 농심그룹에서 발매한 과자. 흔히 말하는 라면땅 종류 과자로, 조리하지 않은 라면을 튀겨서 조미한 딱딱한 과자였다.

어째서인지 포장지에 리본의 기사가 그려져 있었다.

3. 김자야(金子夜, 김영한)

시인 백석의 연인으로 유명한 기생. 백석이 이백의 시 '자야오가(子夜吳歌)'에서 따와 지었다. 기명은 진향(眞香), 본명은 김영한, 법명은 길상화(吉祥華).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나타샤가 바로 그라는 설이 있다. 이후 평생 결혼하지 않고 대원각을 운영하면서 백석을 기리며 생활했다.

3.1. 출생

1916년 병진(丙辰)년생으로 서울 관철동에서 태어났다.
일찍 부친을 여의고 할머니와 홀어머니 슬하에서 성장했으며, 금광을 한다는 친척에게 속아 가정이 파산하자 기생이 되었다.

3.2. 기생

17세때, 여창명인(女唱名人) 김수정의 안내로 조선권번 정악전습소 학감을 지낸 금하 하규일 선생의 4째 양녀로 들어갔다. 하규일 선생[1]으로 부터 3년간 가무를 배웠다. 춤에도 소질이 두드러져 '무산향' '검무'를 잘했으며, 특히 '춘앵전'은 그녀를 능가할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삼천리』지에 수필을 발표하여 '문학 기생'으로 명성을 날렸다.

1935년 조선어학회 회원이던 해관 신윤국 선생의 후원으로 일본에 가서 주경야독으로 학업을 이어가던 중, 해관 선생이 투옥되자 서둘러 귀국하지만 면회가 안 된다는 말을 듣고 함흥 땅에 주저앉는다.

1936년 오로지 은인이던 해관 선생을 만나기 위해, 다시 기생이 되어 큰 연회 같은 곳에 나가 함흥 법조계의 유력한 인사들을 만나서 해관 선생님의 특별면회를 신청할 수 있으리라는 절박한 믿음으로 함흥권번으로 들어갔다.

3.3. 백석과의 만남

1936년 가을 함흥에서 가장 큰 요릿집인 함흥관으로 나갔던 첫 날, 시인 백석(당시 26세)과 김자야(당시 22세)는 처음 만났다. 당시 함흥 영생학교 교사였던 백석이 김자야에게 자기 옆에 와서 앉으라 했고, 자리가 파하고 헤어질 무렵 "오늘부터 당신은 이제 내 마누라요."라고 했다고 한다.

김자야가 『당시(唐詩)선집』을 사왔을 때, 백석이 그 책을 읽고 '자야(子夜)'란 호를 지어주었다고 한다. '자야'는 당나라 시인 이백의 「자야오가(子夜吳歌)」란 시 제목에서 따온 것이다.[2]

백석은 그의 시 「바다」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 「이렇게 외면하고」 「내가 생각하는 것은」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등을 통해 김자야와의 사랑을 담았다.[3]

1938년 백석이 김자야에게 "만주로 가서 자유롭게 살자"고 제안했으나, 김자야는 자신이 백석의 앞길을 막게 될 것을 염려하여 거절했고, 혼자 서울로 돌아왔다.

1938년 함흥 영생고보 교사를 그만두고 <조선일보> 기자로 다시 서울로 뒤따라온 백석과 재회하고, 청진동의 11간짜리 작은 집에서 살림을 차렸다.

백석은 1939년 1월 충북 진천에서 부잣집 딸과 혼례했으나 곧 별거 후 청진동 김자야 집으로 돌아왔다. 김자야는 공허함으로 중국의 북경, 소주, 항주, 상해 등지를 한 달 동안 여행을 했다.

1939년 백석이 홀로 만주 신경으로 떠났고, 해방 후 백석이 신의주시에 잠시 거주 후 정주로 이동한 사이 6.25 전쟁이 발발해 영영 만날 수 없게 되었다.[4]

3.4. 학력

1953년 김자야는 중앙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만학으로 졸업했다.

3.5. 대원각

서울 3대 요정 중 하나로, 1997년 당시 시가 천 억에 달했던 대원각을 10년 간 끈질기게 부탁한 끝에 법정스님에게 시주했다. 그렇게 세워진 절이 바로 길상사.

길상사 건립 당시 '천 억에 달하는 돈도 그 사람의 시 한 줄만 못하다', ('언제 백석이 가장 생각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는데 따로 때가 어디 있나.'라는 발언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3.6. 사망

1999년 사망했으며 화장을 치뤄서 길상사 경내에 산골하였다. 따로 묘지는 없으나 길상사 경내에 그녀를 기리는 공덕비가 남아 있고, 극락전에 김영한의 영정을 모시고 있다.

4. 원피스(만화)에 등장하는 지명

원피스에 등장하는 섬.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

5. 리그 오브 레전드챔피언 자야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자야(리그 오브 레전드)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 가곡의 천재 박효관에게 사사받은 구한말 남창명인이다[2] 이 시는 중국 동진(東晉)의 한 여인 '자야'라는 이가 변경으로 수자리하러 간 남편과의 생이별을 서러워하는 민요풍의 노래이다.[3] 백석은 1937년 연모하던 박경련이 친구인 신현중과 결혼하자 실연과 배신의 정념을 곱씹었다. 1937년 고향 정주에 가서 부요한 집안의 교수의 딸과 결혼했으나 파혼했고, 1938년 제자 김진석의 친누이에 청혼했으나 병약하고, 가난하고, 김자야와의 동거를 이유로 거절당했다.[4] 김자야는 백석은 '월북 시인'이 아니라 '재북 시인'으로 보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