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0-25 18:15:37

이파트 술탄국

소말리아와 지부티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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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3. 에티오피아와의 전쟁4. 중흥기와 멸망

1. 개요

13-14세기 현재의 소말릴란드, 지부티에티오피아 동부에 있었던 이슬람 술탄국. (1185 ~ 1403년) 에티오피아 제국에 맞서 동아프리카의 십자군 전쟁을 치른 것으로 유명하나, 10여년 간의 전쟁 끝에 완패하고 그 속국이 되었다. 이후 몇차례 반란을 기도하였으나 마지막 술탄 사아닷딘 2세가 제일라에서 살해되며 멸망하였다. 그의 열 아들은 예멘에 망명하였고 그들 중 사비랏딘 2세가 돌아와 아달 술탄국을 세우며 왕가는 이어진다.

2. 역사

아프리카의 뿔 (에리트레아, 지부티, 소말리아) 해안은 아랍어로 발 알 아잠으로 불렸다. 아라비아 반도와 지척이었던 그곳에 쿠라이쉬 연맹에 속한 아랍 무슬림들이 정착하여[1] 이슬람 공동체를 형성하였다. 그중에 두드러지는 이들은 10세기에 건너온 샤이프 더로드와 1216년 하라르에 정착한 피키 오마르가 있었다. 전자는 소말리아 최대의 씨족인 샤이프 더로드의 시조가 되었고 후자는 하라르의 수호 성인이자 시크하르 씨족의 시조가 되었다. 그 사이인 1185년, 쿠라이쉬 출신의 우마르 와라시미가 일족과 홍해를 건나 소말리아 해안에 수도 제일라를 세우곤 에티오피아 동부 이파트까지를 영토로 술탄을 칭하였다. 우마르는 긴 통치 후 13세기 중반 사망하였고 그의 네 아들들이 차례대로 계승하였다.

이후 장남 알리 바지위의 두 아들인 나흐위 만수르와 자말랏딘이 연이어 재위하였다. 자말 앗 딘 사후엔 그의 아들인 주베르와 딸 라일라가 차례로 통치하였는데, 이 시기인 1285년 경 이파트 술탄국은 에티오피아 제국 (솔로몬 왕조)의 동맹인 쇼아 술탄국을 격파하고 아비시니아 고원에 진입하였다. 완충 역할을 했던 쇼아 술탄국이 사라지자 고지대의 기독교도들과 대립이 시작되었다. 1288년 에티오피아의 2대 황제 솔로몬 1세는 한 사제를 파견해 자신을 대신하여 예루살렘에 대한 순례를 행하게 하였다. 그 사제는 경건함으로 현지인들을 감탄시키고 돌아왔는데, 이파트 술탄령인 아달에서 무슬림들에게 붙잡혀버렸다. 그는 개종 요구를 거부하였고 이에 무슬림들은 그를 이교도들에게 할례를 당하는 모욕을 주곤 풀어주었다. 격노한 솔로몬 1세는 아달을 공격해 설욕하였다. 이후 14세기 초엽, 라일라가 사망한 후 술탄 위는 만수르의 아들들에게 돌아갔다.

3. 에티오피아와의 전쟁

1290년경 시작된 이파트 왕국과 에티오피아의 전쟁은 1314년 후자에 야심찬 9대 황제 암다 시욘 1세가 즉위하며 본격화 되었다. 암다 시욘은 스스로를 게브레 마스켈, 즉 십자가의 종이라 칭하며 이교도들에 대한 성전에 나섰다. 다만 처음부터 이파트 술탄국이 공격 대상인건 아니었다. 우선 1316년 그는 이교도들이 거주하는 서남쪽 다모트를 침공해 주민들을 노예화하였고 이슬람 상인들과의 노예 무역으로 부를 축적하던 하디야에 복종을 요구하였다. 하디야의 왕 아메로는 베르암이란 예언자가 싸우면 이길 것이라고 하자 요구를 거절하였는데, 결과는 대패였고 암다 시욘은 아메로 왕을 비롯한 주민 대부분을 학살해버렸다. 살아남은 이들 역시 노예가 되었고, '예언자' 베르암을 포함한 극소수만이 이파트 술탄국으로 도주하였다. 그러던 1320년, 카이로에 파견된 에티오피아 사절이 귀국 도중 이파트 술탄국에 사로잡히는 일이 벌어졌다.

분노한 암다 시욘은 이파트 술탄국을 공격해 1328년 술탄 학쿳딘 나흐위를 전사시켰고 이에 동생 사비랏딘 무하메드가 계승하였다. 그는 1332년 초엽 인근 다와로 술탄국의 하이다르 등 무슬림 연합군을 편성해 에티오피아에 반격을 시도했으나 대패하고 포로가 되었다. 이후 암다 시욘은 사비랏딘의 동생 자말랏딘을 꼭두각시 술탄 (사실상 총독)으로 옹립하곤 아달 케이라 등지를 병합하였다. 이파트 술탄국은 에티오피아의 속국이 되었다. 1344년 암다 시욘이 사망하자 사비랏딘의 아들 알리가 반란을 일으켰으나 암다 시욘의 후계자 네와야 크레토스에게 패하고 포로가 되었다. 네와야 크레토스는 알리의 순종적인 아들 아흐마드를 옹립하곤 알리 일가를 감금하였다. 8년 후 석방된 알리는 아들 아흐마드를 반역자라며 축출한다.[2]

4. 중흥기와 멸망

재차 즉위한 알리는 차남 몰라 아스파를 후계자로 삼았고 손자들 중 아흐마드의 아들들을 정치에서 배재하였다. 하지만 그들 중 학쿳딘 2세가 반란을 일으켜 에티오피아 군의 지원을 받은 몰라 아스파를 전사시켰다. 학쿳딘 2세는 조부 알리를 명목상의 이파트 총독으로 봉하며 축출하곤 정권을 장악하였다. 하쿳딘 2세는 기존 제일라나 이파트 대신 험지에 위치한 도시 와할을 와파트로 개칭하곤 새 수도로 삼았다. 비록 독립을 회복했지만 이파트 술탄국은 현재 에티오피아의 영토를 전부 상실하고 에레트리아와 소말리아 북부에 국한되었다. 10년간 재위하던 학쿳딘 2세는 1380년경 에티오피아 군에 맞서다 전사하며 생을 마감하였다. 이후 에티오피아 궁정에서 태어난 동생 사아닷딘 2세가 계승하였다.

그는 에티오피아에 대한 침공을 지속하여 황제 다위트 1세가 국경 성채를 강화하게 만들었다. 1400년경 아달 깊숙히 진군했던 사아닷딘 2세는 에티오피아의 대장군 바르와의 함정에 걸려 대패하였다. 이 전투에서 고관의 상징으로 철패를 지닌 원로 4백여명이 전사하는 등 핵심 병력을 상실한 사아닷딘 2세는 해안의 제일라로 철수하였다. 이에 다위트 1세가 대군을 이끌고 제일라를 포위, 장기간의 처절한 공성전 끝에 도시는 함락되었고 사아닷딘 2세는 혼란 중에 전사하였다. (1402년 혹은 1410년) 이후 그의 열 아들들은 홍해 건너 조상들의 땅인 예멘에 망명하였고, 그들 중 사비랏딘 2세가 돌아와 아달 술탄국을 세워 에티오피아와의 항전을 이어간다.


[1] 애초에 이슬람 이전에도 에티오피아 인들이 예멘을 정복, 메카를 침공하기도 하였고 히즈라 이전에 무슬림들이 박해를 피해 악숨 왕국으로 망명하기도 하였다.[2] 이에 아흐마드는 에티오피아의 군대 지원을 받아 술탄국 일부를 장악하고 총독으로 살다 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