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明熙
1960년 ~
1. 개요
대한민국의 역사교육학자.2. 경력 및 주요 활동
1960년 경상북도 문경시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역사교육과를 졸업하고, 일본 쓰쿠바대학 대학원에서 역사교육론을 전공하여 교육학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당시 콜링우드 역사철학에 기초한 '추체험적 역사학습' 이론의 구성(原題 : コリングウッド歷史哲學に基づく「追體驗的歷史學習」理論の構成 (1998))이라는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교수가 되기 전에는 중등학교 교사와 교육과정평가원 연구원으로 재직했다.1983년부터 1991년까지 서울 강동중학교·서운중학교·오금중학교를 거쳐 국립 국악고등학교 역사교사로 강단에 섰으며, 국립공주대학교 임용 전에는 교육과정평가원에 있었다. 2002년부터 국립공주대학교 사범대학 역사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7년부터 2012년까지 자유주의교육운동연합 상임대표로 있었으며, 2012년 1월부터 범시민사회단체연합 공동대표로 있었다. 자유주의교육운동연합 대표 시절 고교 평준화 해제와 고교등급제·본고사·기여입학제를 금지하는 '3불 정책'의 폐지 등을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한국사회과교육연구학회 충청권 운영위원이자 전임 회장으로 재직하였고, 2013년 7월부터 한국현대사학회 제2대 회장으로 잠시 재직하였다. 그 외에도 육군군사연구소 자문위원, 충남자유주의교육운동연합 자문위원 등 주로 우파적인시민 사회 활동을 이어왔다. 한국일본학회 이사와 한국일본교육학회 부회장 등 일본 관련 학회에서도 각종 자리를 맡아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교학사 한국사 교과용도서 뉴라이트 논란 당시 해당 교과용도서의 대표 저자였으며, 박근혜 정부 당시 역사 과목 국정도서화의 학계층 주도자 중 한 명이다.
공주대 사범대 역사교육과 학생들 사이에서는 '센세'로 통한다. (...)
3. 논란
3.1. 한국사 교과서 좌편향 발언
"천재교육 교과서는 ‘김일성의 보천보 전투도 건국 준비 활동으로 취급되고 있다."
천재교육과 미래엔의 한국사 교과서의 민족운동 서술을 스스로 분석하고 좌편향의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 두 교과서를 분석한 결과 "러시아 혁명 자체에 대해서는 비교적 상세하게 설명하면서 그것이 동아시아에 영향을 미쳐 전개된 민족운동에 대해서는 의도적으로 서술하지 않고 있다."며 "사회주의(공산주의) 운동의 민족운동적 성격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작용하고 있는 것 아닌가 추측된다."고 발언하였다. 또 "민족자본가 등이 전개한 민족실력양성운동은 의도적으로 폄하하고, 농민·노동자·청년 등 민중들의 운동에 대해서는 긍정적 측면을 강조해 독립운동 노선에서 공산당 노선이 더 정당하고 우월했음을 편향적으로 서술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보천보 전투 서술에 대해 위와 같이 공격하였는데, 이것은 해당 내용을 제시하니 직접 판단하자.
관련 자료 : 천재교육의 보천보 전투 서술("한국사" 교과서 p.289)
1936년 동북 항일 연군의 한국인 지휘관들이 중심이 되어 만주의 한인 사회주의자와 민족주의자를 포괄하는 통일 전선으로 조국 광복회를 결성하기 위한 활동이 시작되었다. 조국 광복회는 국내에도 조직을 확대하여 함경도 북부 일대와 평안도 북부 국경 지대에도 지부를 결성하였다. 그리고 이들의 지원을 받은 일부 유격대가 국내로 들어와 함경남도 보천보의 일본 경찰 주재소와 면사무소를 공격하는 등 일제를 놀라게 하였다. 그러나 1930년대 후반 일본군의 대공세로 동북 항일 연군의 세력이 크게 약해졌고, 이들 중 대부분이 1940년경 소련의 연해주로 이동하였다.
1936년 동북 항일 연군의 한국인 지휘관들이 중심이 되어 만주의 한인 사회주의자와 민족주의자를 포괄하는 통일 전선으로 조국 광복회를 결성하기 위한 활동이 시작되었다. 조국 광복회는 국내에도 조직을 확대하여 함경도 북부 일대와 평안도 북부 국경 지대에도 지부를 결성하였다. 그리고 이들의 지원을 받은 일부 유격대가 국내로 들어와 함경남도 보천보의 일본 경찰 주재소와 면사무소를 공격하는 등 일제를 놀라게 하였다. 그러나 1930년대 후반 일본군의 대공세로 동북 항일 연군의 세력이 크게 약해졌고, 이들 중 대부분이 1940년경 소련의 연해주로 이동하였다.
3.2. 역사 교육의 방향 관련 발언
사실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이쪽 발언이 좌편향 발언보다 더 위험하다.“1990년대 이후 ‘역사교육 쿠데타’가 일어나고 근·현대사 과목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민족적인 우월감, 민족적인 정서 이외에는 인정하지 않는 계급적인 정서, 혁명적인 정서를 의도적으로 조장하는 교육이 되어 왔다”, “대한민국을 건국한 분이 누구인가. 대한민국 역사 흐름에서 정당하다는 역사 교육을 해야 한다.”
"올바른 역사 교과서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각하고 그것을 배울 수 있도록 서술해야 한다. 또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통성이 뚜렷히 서술되고 배울 수 있어야 한다"
말만 보면 그럴싸 한데? 느낌이 들지만, 자세히 보면 오묘한 부분이 있다. 단적으로 드러나는 발언이 "일제 강점기 사회주의 운동을 평가할 수 있고 해방 이후 좌우 합작도 연구할 수 있다"면서도 "교육할 때는 그런 입장에서 하면 안 된다"는 발언이다. #
그말은 즉슨 대한민국의 역사 흐름으로 오는 과정에 맞는 것은 교육하고, 그 외의 것은 교육하지 않아야 한다는 입장. 즉 사회주의 쪽에서의 독립운동이나 좌우 합작 운동 등은 모두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며, 따라서 교육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이와 같은 논리라면 김구, 김규식 등이 주도한 남북 협상 또한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는 일종의 반기 세력이었던 만큼 교육해서는 안 된다는 소리다.
극단적으로 보면 좌우 할 것 없이 이승만-박정희-전두환까지 이어지는 정부의 정당성에 초점을 두고 그에 반기를 들었던 행위인 조봉암의 활동, 부마 항쟁, 5·18 민주화 운동 등도 축소, 은폐되어야 한다는 주장으로까지 받아들여질 수 있다.
3.3. 좌파 진영 사회 전복론
2013년 9월 11일 '새누리당 근현대 역사 교실' 초청 강연 발언 #
“현재 좌파 진영이 교육계와 언론계의 70%, 예술계의 80%, 출판계의 90%, 학계의 60%, 연예계의 70%를 각각 장악하고 있다”, “의식적으로 대처하지 않으면 어느 순간에 저쪽(좌파)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 “현 국면 유지 시 10년 내에 (좌파에 의한) 한국사회의 구조적 전복이 가능하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한민국은 태어나지 말아야 할 나라"라고 말했다."
부연 설명을 하자면 해당 발언에 대해서 노무현재단에서 노 전 대통령이 언제 어디서 그런 발언을 했는지 밝힐 것을 촉구하였으나, 아무런 답변도 하지 않았다.#
3.4. 근현대사 주요 사건에 대한 발언
- 강화도 조약 관련 발언 : 개혁파의 주장과 고종의 긍정적인 인식으로 맺어진 조약'이라고 기술된 부분에 대해 "그 때 조약 맺는 것 자체는 자주적인 판단에 의해서 맺은 것"이라며 "다만 당시 근대적인 국제법규라든가 이런 것에 대해 우리가 밝지 못했기 때문에 내용에 (불평등 조약이라는 기술이)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라고 발언
- 일제의 철도 사업 : "철도 부설 목적에 일본의 침략 의도가 상당히 많았다고 생각을 한다"면서도 "일제의 압제 속에 있긴 하지만 우리의 삶을 어떻게 향상시켜왔는가를 배우는 것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 제주 4.3 사건 : "4.3 폭동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무고한 양민들이 좀 학살을 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해당 항목은 다음 기사 참조 #
4. 관련 문서
5. 기타
- 본인의 이미지가 이완용과 비슷하다고 스스로 인지하고 있는 듯 하다. 2013년 2학기 역사교육과 학부 강의에서 사람들이 본인에 대해 비난일색임을 토로하며 그 사유로 이 내용을 언급하며 경북 문경 출신[1]에 외모가 비슷하여 그 후손이 아니냐는 오해를 자주 받는다고 발언했다.
-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를 강의 맥락과 관계 없이 자주 꺼내는 것으로 유명했다. 주로 프린스턴 대학교와 하버드 대학교에서 석사, 박사학위를 받은 덕에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이나 아이젠하워 대통령과의 대면이 있을 때 국격 면에서 꿇리지 않았으며 4.19 혁명 당시 교수들의 시국선언을 읽고 카다피마냥 유혈사태를 확장시키지 않고 신사적으로 하야 했다는 등의 내용이다.
- 다만 본인의 역사관을 주입하거나 강요하려 하지는 않으며 대외적인 이미지와는 다르게 의외로 학부생들의 역사관이나 정치 성향을 존중하는 편이다. 스스로 자유주의를 굉장히 강조하기 때문에, 언행 그대로 타인의 사상이나 관점을 존중하려고는 하는 편이다. 일례로 세월호 참사 당시 충격을 먹고 강의까지 빠져가며 안산의 장례식장 자원봉사활동을 나갔던 학부생의 출석을 인정해줬다. 다만 수업 때 대놓고 교수님 의견과 다른 주장을 내세우면 면박을 받을 수는 있고, 학생과 수업 내내 일방적인 질문과 토론이 벌어지기도 한다.
- 된장에 관심이 많다. 된장을 가미하여 라면을 끓이거나 다른 음식을 만드는 이야기를 해줄 때가 있는데, 맛과 요리법의 묘사가 아주 훌륭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