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21 20:30:09

이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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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883년 12월 1일
경기도 장단 강남 독정
사망 미상
사망지 미상
서훈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2. 생애

1. 개요

조선의 의병,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2. 생애

1907년 대한제국 군대가 강제해산된 이래 전국의 의병은 더욱 확대되었다. 이내원은 이 시기 의병장으로 활약했는데 1908년 11월 연기우 의진에 참여해 본격적인 항일투쟁에 나섰다.

1908년 7월 15일 연기우 의진의 의병 20여 명과 함께 무기를 휴대하고 장단군 소남면 면장 김재혁에게서 군자금을 30원을 모집했다. 같은 달 28일에는 대남면 김한원에게서 40원의 군자금을 모금 받았다.

1909년 음력 8월 2일 10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장단군 고남면의 김의경의 차남에게서 200원의 군자금을 모집했다. 같은 달 10일에는 장단군 장현내면 홍형규에게 20원의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같은 해 12월까지 연천군 계명리 마을에서 군수품으로 사용할 벼 122석을 모금했다.

이처럼 강원도 장단군과 연천군 일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약을 보이는 한편, 일본헌병대의 감시망도 점점 좁혀졌다. 그리하여 1910년 1월 29일에는 은닉하고 있던 화승총 1개와 칼 1개를 일본 헌병에게 압수당했다.

1910년 5월 6일 경성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강도’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12년 12월 7일 징역 3년으로 감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