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dddddd,#000000><colcolor=#000000,#e0e0e0> 울리히 합스부르크로트링겐 Ulrich Habsburg-Lothringen | |
출생 | 1941년 10월 3일 ([age(1941-10-03)]세) |
독일국 케른텐주 볼프스베르크 | |
국적 |
|
종교 | 가톨릭 |
소속 정당 | 무소속 |
1. 개요
오스트리아의 정치인.2. 생애
울리히는 1941년 나치 독일 케른텐주 볼프스베르크에서 태어났다. 그는 제1차 세계 대전까지 오스트리아에 군림했던 합스부르크 가문의 일원으로 그의 조부는 토스카나 대공 페르디난도 4세의 4남 하인리히다.[1] 오스트리아 제국의 마지막 황태자 오토 폰 합스부르크의 7촌 조카였다.[2]울리히는 어린 시절부터 볼프스베르크와 상트안드레를 오가며 임업을 경영하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다. 가업의 영향으로 대학에서는 임학(林學, Forstwirtschaft)을 공부했고, 구황실 출신이라는 배경과는 딴판으로 좌파 정당인 녹색당의 당원이 돼 정치활동을 했다. 케른텐 내 슬로베니아인 소수민족 문제 등 지역 현안에 관심을 가졌으며 볼프스베르크에서 시의회 의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울리히는 2010년 오스트리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고자 했으나 당시 오스트리아 헌법은 합스부르크 법(Habsburgergesetz)으로 합스부르크 가문의 대통령 선거 출마를 제한하고 있어 뜻을 이루지 못했다. 울리히는 오스트리아 국민은 나치보다 합스부르크를 두려워하느냐는 등 도발적 발언으로 관심을 모았고 일부 군주제 옹호론자들의 지지를 받기도 했다. 국민 서명을 통해 헌법 개정에 성공했으나, 울리히는 당해 대선에는 출마할 수 없었다. 2011년 데어 슈탄다르트와의 인터뷰[3]에서 2016년 대선 출마를 시사했으나 결국 출마하지 않았다.
합스부르크법 폐지에 성공한 뒤 2012년에는 오스트리아의 옛 귀족 작위를 범죄화하는 헌법 조문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국제적으로 분파된 귀족 가문이 어떤 국가에서는 귀족 작위를 사용할 수 있고, 어떤 국가에서는 그렇지 못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지 않는다. 따라서 EU 국가들 간에 귀족 작위에 대한 동등한 대우가 실현돼야 한다는 주장이다.[4] 울리히는 오스트리아 공화국 수립 100주년을 맞는 2018년에 헌법 개정을 목표했으나 실제로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2017년 난민 문제에 대한 의견 차이로 당내 내홍이 있을 때 울리히는 녹색당에서 탈당했다. 탈당의 배경에는 시그리드 마우러 당시 녹색당 국민의회(하원)의원과의 갈등이 있었다. 마우러 의원은 불법적 귀족 작위 사용에 대한 강도 높은 처벌을 주장한 의원이었다. 울리히는 마우러 의원이 자신에게 보낸 편지에 합스부르크 가문에 대한 모욕적인 언사가 담겨있었다고 주장했다. 이 편지는 실제로는 마우러 의원이 보낸 것이 아니라 위조된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울리히는 녹색당 의원단과 가까운 인물이 그 편지를 보냈을 것이라며 의심을 거두지 않았고, 결국 탈당하기에 이른 것이다.[5] 탈당 이후에도 계속해서 합스부르크 가문 및 그 수장에 대한 이권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으나 당연하게도 그 의견은 주류 정계에서는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3. 여담
[1] 다만 하인리히가 귀천상혼을 해서 황가의 성씨와 합스부르크 백작 칭호만 사용할 수 있고, 오스트리아 대공 칭호는 쓰지 못한다. 토스카나 대공가의 수장(토스카나 대공국 대공위 요구자)인 지기스문트와는 7촌 사이다.[2] 오토의 외조부 파르마 공작 로베르토 1세와 울리히의 증조모 알리시아가 남매지간이었다. 두 사람의 부계 공동 조상은 18세기 후반의 레오폴트 2세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오토는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 1세의 후손이고, 울리히는 토스카나 대공 페르디난도 3세의 후손이다.[3] 울리히 합스부르크로트링겐이 호프부르크 입후보에 관심을 보이다(독일어)[4] 합스부르크로트링겐, 귀족 작위 재도입 추진(독일어)[5] 울리히 합스부르크가 녹색당을 탈당하다(독일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