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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리그 및 대표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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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이페슈트 FC | |
Újpest FC | |
<colbgcolor=#fff><colcolor=#6d4099> 정식 명칭 | Újpest Football Club |
별칭 | Lilák(보라) |
창단 | 1885년 6월 16일 ([age(1885-06-16)]주년)[1] |
소속 리그 | 넴제티 버이녹샤그 I (Nemzeti Bajnokság I) |
연고지 | 부다페스트 우이페슈티 구 (Újpest) |
홈구장 | 수서 페렌츠 슈터디온(Szusza Ferenc Stadion) (14,817명 수용) |
라이벌 | 페렌츠바로시 TC - 부다페스트 더비 |
구단주 |
로데릭 두셔텔레 (Roderick Duchâtelet) |
감독 |
네보이샤 비그녜비치 (Nebojša Vignjević) |
공식 웹사이트 | |
우승 기록 | |
★★ 넴제티 버이녹샤그 I (20회) | 1929–30, 1930–31, 1932–33, 1934–35, 1938–39, 1945, 1945–46, 1946–47, 1959–60, 1969, 1970, 1970–71, 1971–72, 1972–73, 1973–74, 1974–75, 1977–78, 1978–79, 1989–90, 1997–98 |
넴제티 바이녹사그 II (2부) (2회) | 1904, 1911–12 |
머저르 쿠퍼[2] (11회) | 1969, 1970, 1974–75, 1981–82, 1982–83, 1986–87, 1991–92, 2001–02, 2013–14, 2017–18, 2020-21 |
리가 쿠파 (3회) | 2008, 2009, 2012 |
머저르 수페르쿠퍼 (3회) | 1992, 2002, 2014 |
미트로파컵 (2회) | 1929, 1939 |
1. 개요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 우이페슈트 구의 축구 클럽이다. 우이페슈티 도저(Újpesti Dózsa)라고 부르기도 한다. 1885년에 창단된 이 구단은 체조와 육상 스포츠단으로 창설하다가 축구부가 1899년에 창단되었고, 1905년에 헝가리 1부 리그에 처음 참가했으며, 이후 단 한 번만 강등을 경험했을 정도로 명문 구단으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108년 동안 1부 리그에 연속으로 머물러 있었다는 기록은 헝가리 축구 역사에서 도드라지는 부분이다. 1922년부터 우이페슈트 소재의 수서 페렌츠 슈터디온(Szusza Ferenc Stadion)을 홈구장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페렌츠바로시 TC와 부다페스트 더비를 펼치는 가장 큰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우이페슈티 TE 종합 스포츠 클럽의 일부로, 축구 외에도 아이스하키와 수구 등의 스포츠 부문에서도 활동하고 있다.1926년 헝가리에 프로 축구가 도입된 이래 헝가리 리그 20회 우승, 헝가리컵 11회 우승, 헝가리 슈퍼컵 3회 우승의 기록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미트로파컵 2회 우승과 1930년 쿠프 데 나시옹(Coupe des Nations) 우승, 1961-62 시즌 UEFA 컵위너스컵 4강 진출, 1968-69시즌 인터-시티 페어스컵[3] 준우승, 1973-74 유러피언컵 4강 진출의 위업을 달성했을 정도로 헝가리에서 큰 성공을 거둔 축구 클럽 가운데 하나로 여겨진다. 대외적으로 저명도가 높은 헝가리의 축구 선수를 배출한 팀이기도 하다.
2. 역사
우이페슈트는 1885년 6월 16일 야노시 골(János Goll)이라는 학교 교사에 의해 '우이페슈티 토르너 에쥘렛(Újpesti Torna Egylet)'이라는 이름으로 창설되었다. 초창기에는 체조와 육상 스포츠단으로 창설되었으며, 1899년에 축구부가 창단되었다. 구단의 모토는 "건강, 힘, 조화(Épség, Erő, Egyetértés)"였다. 첫 공식 경기는 1900년 4월 29일 III. 케룰레티 TVE와의 1-1 무승부였다. 1901년 우이페슈트 체육부와 축구부가 합병하여 우이페슈티 TE의 축구부를 형성했고, 새로 형성된 헝가리 리그 2부에 합류했다. 우이페슈트는 1904년 1부 리그로 승격했으며, 1911-12 시즌 한 시즌을 제외하고는 계속해서 헝가리 최상위 리그에서 활동했다.1922년 새로운 경기장인 메제리 우티 슈터디온(Megyeri úti stadion)이 완공되면서 메달 수집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카로이 포글(Károly Fogl II)과 요제프 포글(József Fogl III) 형제의 강력한 수비 체계인 "포글-게이트(Fogl-gát)"는 국가대표팀과 우이페슈트 모두에서 성공의 핵심이었다. 1926년 헝가리에 프로 축구가 도입된 후, 축구팀은 우이페슈트 FC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1920년대 후반과 30년대는 구단의 첫 번째 황금기였다. 헝가리 1부 리그에서 5회 우승하고 국제대회에서도 성공을 거두었다. 특히 1929년과 미트로파컵 우승, 1930년 쿠프 데 나시옹(Coupe des Nations) 우승이 눈에 띈다. 1938-39 시즌에는 벨라 구트만 감독 하에 헝가리 리그와 미트로파컵에서 우승했다.
1938년 월드컵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헝가리 대표팀에 5명의 선수[4]를 배출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첫 해들은 우이페슈트의 두 번째 황금기였다. 3년 연속 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한때는 헝가리 국가대표팀에 9명의 선수를 제공하기도 했다. 수서 페렌츠, 에그레시 벨러, 벌로그 샨도르, 니에르스 이슈트반, 너지머로시 미하이와 같은 선수들이 30경기 연속 승리, 단일 시즌 187골과 같은 기록을 세웠다. 벨라 구트만은 1947년 초 당시 '우이페슈티 TE'로 알려진 우이페슈트에 복귀하여 또 다른 헝가리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1950년 공산당 정부는 우이페슈트를 경찰의 공식 클럽으로 선정하고 '부다페슈티 도저(Budapesti Dózsa)'로 이름을 변경했다. 이는 동구권 국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관행이었다. 1951년, 수비수 쥐치 샨도르는 비밀 재판에서 반역죄로 공산당 정부에 의해 처형된 후 구단의 순교자가 되었다. 성공이 덜한 시기의 결과로, 토트 미하이는 1954년 월드컵 당시 대표팀에 선발된 두 명의 우이페슈트 선수 중 한 명[5]이었으며, 결승전에 출전한 유일한 선수였다.
1956년 헝가리 혁명 중에 클럽은 다시 우이페슈티 TE로 이름을 바꿨지만, 소련에 의해 혁명이 진압된 후 헝가리 정부는 구단이 예전 이름을 사용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지역과 경찰을 모두 지칭하는 '우이페슈티 도저(Újpesti Dózsa)'라는 이름이 탄생했다.
우이페슈트는 1959-60 시즌 헝가리 리그에서 우승했다. 이에 따라 1960-61 유러피언컵에 참가할 자격을 얻었다. 1960년 9월 28일, 우이페슈트는 베오그라드에서 열린 경기에서 레드 스타 베오그라드를 2-1로 이겼다. 1960년 10월 12일에는 홈에서 츠르베나 즈베즈다를 3-0으로 이겼다. 1960년 11월 6일, 우이페슈트는 리스본의 이스타디우 다 루스에서 벤피카에게 6-2로 패했으나, 1960년 11월 30일에는 네프슈타디온에서 벤피카를 2-1로 이겼다.
1961-62 유러피언컵위너스컵에서 우이페슈트는 준결승까지 진출했다. 몰타의 플로리아나를 1차전과 2차전 각각 5-2, 10-2로 이기고, 아약스에게 원정에서 1-2 졌지만, 홈에서 3-1로 설욕했으며, 8강에서는 던펌린를 홈에서 4-3, 원정에서 1-0으로 이겼다. 4강에서는 피오렌티나에게 양 경기 모두 패배하며 탈락했다.
1967년 버로티 러요시 감독이 구단에 영입되면서 새로운 황금기가 시작되었다. 두 번의 준우승 후, 우이페슈트는 1969년 리그에서 우승했고 같은 해 인터-시티 페어스컵에서는 결승까지 진출했지만, 뉴캐슬에게 3-0, 2-3으로 패하며 준우승에 그쳤다.
그래도 팀은 1969년부터 1975년까지 모든 시즌 리그에서 우승하며 7시즌 동안 정확히 500골을 기록하고 10시즌 동안 단 4번의 홈 경기 패배만 허용하는 등 놀라운 기록을 세웠다. 구단은 1969년 처음으로 헝가리컵에서 우승했고, 1970년과 1975년에도 우승했다.
국제 무대에서는 인터-시티 페어스컵 결승 진출 외에도 1972년 이후 3년 연속 유러피언컵 8강에 진출했고, 1974년에는 준결승까지 올라갔다.[6] 이 클럽은 1969년 잉글랜드 챔피언 리즈 유나이티드, 1971년 스페인 챔피언 발렌시아, 1972년 스코틀랜드 챔피언 셀틱 글래스고, 1973년 포르투갈 강팀 벤피카 등을 이기며 유럽에서 최고의 팀 중 하나로 간주되었다.
우이페슈트 도저 시기의 특징은 항상 골 득점이었다. 버로티 러요시 감독이 고안하고 이끈 퍼제커시-괴뢰치-베네-두너이 II-잠보의 유명한 공격 포메이션은 수십 개의 골을 넣어 헝가리 내외에서 수천 명의 축구 팬들을 끌어모았다. 베네는 5번이나 헝가리 득점왕을 차지했고, 두나이 II와 퍼제커시는 유럽에서 두 번째로 많은 골을 넣어 실버 부트 상을 받았다.
괴뢰치, 베네, 두나이가 팀을 떠난 후, 퇴뢰치크 언드라시와 페케테 라슬로가 우이페슈트에 합류하였고, 전 선수였던 바르히디 팔이 감독을 맡아 1978년과 1979년에 두 번의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헝가리 축구의 전반적인 쇠퇴가 1980년대 초반에 클럽에 영향을 미쳐 리그 성적이 악화되어 10년 동안 준우승과 3위라는 성적을 각각 한 번씩만 획득했다. 그러나 팀은 컵 대회에서 더 성공적이어서 1982년, 1983년, 1987년에 헝가리컵을 우승했다. 국제 무대에서도 당시 UEFA컵 우승자 예테보리, 독일 강팀 쾰른, 컵위너스컵 우승자 애버딘을 이기는 등 좋은 성적을 거두어 1984년 컵위너스컵 8강에 진출했다.
1990년대에 들어서 공산주의가 몰락 후, 클럽은 다시 '우이페슈티 TE'로 이름을 변경했다. 구단은 1989-90 시즌에 챔피언십 타이틀과 1992년 컵 우승으로 새로운 10년을 시작했다. 또한 1992년 최초의 헝가리 슈퍼컵에서 우승했다. 그러나 리그 성적은 다시 부진해 1993년에는 14위로 강등 플레이오프에 처했다. 다행히 1부 리그 잔류를 확보한 후 더 나은 결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베버 죄르지와 슬레작 졸탄을 포함한 팀은 10년 중반에 2위와 3위를 차지했고, 코바치 졸탄와 헤르체그 미클로시가 합류한 후 마침내 1997-98 시즌에 헝가리 리그에서 우승했다.
다만 공산당 정부의 몰락과 국가 후원의 종료로 다른 모든 헝가리 축구팀처럼 재정적 문제가 발생했다. 1998년 헝가리 축구에 전문화 구단이 다시 도입되면서 클럽은 다시 이름을 변경했지만, 이번에는 잘 알려진 우이페슈트 FC로 변경했다. 그러나 곧 어려운 시기가 클럽에 닥쳤고, 자금 부족으로 인해 주요 선수들이 우이페슈트를 떠났다. 2001년 수서 페렌츠 슈터디온이 완전히 개조되고 클럽의 새 소유자들이 축구에 더 많은 돈을 투자하면서 상황이 나아졌다.
노력의 결과로 2002년 새로운 헝가리 컵 우승[7]과 슈퍼컵 타이틀을 차지했지만, 팀은 몇 년 동안 리그 테이블 중간에 머물렀다. 2004년, 2006년, 2009년에 3번의 은메달을 획득하며 우이페슈트는 다시 한번 헝가리의 강팀으로 복귀했다. 현재 구단의 재정 상황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며, 국내에서 가장 큰 예산을 보유하고 있다. 현재 국내 리그에서는 강력한 경쟁자이지만, 국제 무대 출전은 여전히 드물다.
2006년 8월, 우이페슈트의 전설 수서 페렌츠가 8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는 여전히 구단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여겨진다. 수사는 463경기에서 393골을 기록했다. 구단은 전 선수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경기장을 수서 페렌츠 슈타디온(Szusza Ferenc Stadion)으로 명명했다.
12년 간의 트로피 없는 기간 후 2014년 5월 25일 부다페스트에서 디오슈죄르 VTK를 상대로 1-1 무승부 후 팽팽한 승부차기 끝에 9번째 헝가리 컵을 우승했다. 2017-18 시즌에는 헝가리컵에서 또다시 우승했다. 2018년 헝가리컵 결승에서 푸슈카시 아카데미아 FC와 2-2 무승부를 기록한 후 승부차기에서 5-4로 이겼다.
2024년 3월 21일, 헝가리 석유 회사 MOL이 전 소유주 로데릭 뒤삿렐레(Roderick Duchâtelet)로부터 지분 100%를 인수하여 구단의 소유주가 되었다. 벤체디 발러시(Balázs Benczédi)가 구단의 새 전무이사로 선출되었다.
[1] #[2] 헝가리 축구 연맹 컵[3] UEFA 유로파리그의 전신[4] 쉬츠 죄르지, 설러이 언털, 벌로그 이슈트반, 빈체 예뇌, 그리고 헝가리 축구의 떠오르는 스타 젠겔레르 줄러[5] 다른 한 명은 바르다이 팔[6] 이후 우승팀 바이에른 뮌헨에게 패배[7] 결승전에서 솜버트헤이 헐러다시를 마지막 순간 골로 이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