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03 23:57:57

요제프 바르티크

<colbgcolor=#11457e><colcolor=#fff> 요제프 바르티크
Josef Bartík
파일:Josef_Bartik.jpg
출생 1897년 6월 30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보헤미아 왕국 스타히
사망 1968년 5월 18일 (향년 70세)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 프라하
국적 [[체코슬로바키아|
파일:체코 국기.svg
]] 체코슬로바키아
학력
직업 군인
최종 계급 준장
참전 제1차 세계 대전
러시아 내전
제2차 세계 대전

1. 개요2. 생애
2.1. 제2차 세계 대전2.2. 사망
3. 참고 문헌

[clearfix]

1. 개요

체코슬로바키아의 군인이다.

2. 생애

1897년 스타히에서 태어났다. 제빵사였던 아버지 요제프 바르티크는 1907년경 사망했고 신부였던 어머니 마리에는 1910년 일을 하기 위해 미국으로 이주해 삼촌 밑에서 자랐다.

김나지움을 졸업한 이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에 징집되어 제11연대 예비장교학교를 다닌뒤 1915년 8월 이탈리아 전선에 배치되었다. 약 1년뒤 1916년 11월 이탈리아 왕국군에 생포되었고 1918년 체코슬로바키아 군단에 입대했다.

2.1. 제2차 세계 대전

1919년 고국에 귀국한 바르티크는 정보장교로 활동했으며 1935년 체코슬로바키아군 총참모부 제2부서 방첩과장으로 임명되어 독일과 헝가리 스파이를 색출했다. 나치 독일체코슬로바키아의 체코 지역에 진주하기 전날 프란티셰크 모라베츠 대령을 따라 영국으로 탈출했다. 탈출 직후 1939년 4월부터 약 4개월 동안 폴란드에서 근무했으나 폴란드가 나치 독일에 침공을 당하자 프랑스로 탈출했고, 프랑스가 프랑스 침공으로 붕괴하자 다시 영국으로 탈출했다.

영국에서 바르티크는 1942년 제4부서장[1]이 되어 준장으로 진급했다. 전쟁 종전 직전 1945년 3월 코시체로 귀국해 내무부 정치정보국장을 맡았다. 그러나 공산주의자들의 요구로 1946년 해임되었으며 1948년 3월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에 접수된 체코슬로바키아군 총참모부 제5부서에 의해 가택연금되었다. 이후 9월 프라하 고등군사법원에서 5년형을 선고받아 1953년까지 수감되었다.

2.2. 사망

출소 이후 프라하 포돌리에 위치한 어머니 및 육아연구소에서 일했으나 1958년 숙청에 연루되어 연구소에서 해임되었고, 프라하 수도공사로 쫓겨났다.

1960년대에는 복권되어 프리드람 고등군사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1995년 사망한뒤 스타히 명예시민과 백사자 훈장 3등급을 추서받았다.

3. 참고 문헌



[1] 망명정치정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