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05 03:09:41

오카자키 신지/클럽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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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카자키 신지의 클럽 경력을 서술한 문서.

2. 시미즈 S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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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고등학교 졸업 후 시미즈 S펄스에 입단하여 프로생활을 시작하여 2006시즌 덴노배 결승전에서 첫 데뷔. 2007시즌에는 주로 미드필더로 기용되어 5골을 기록했고, 2008년에는 공격수로 뛰면서 처음으로 한 시즌 10골을 기록했다. 이후에도 2009~2010 2시즌동안 14골, 13골을 기록하면서 공격수로서 자신의 가치를 드러냈다. 시미즈 S펄스와의 계약기간이 종료됨에 따라 이적료 없이 2011년 1월 31일 VfB 슈투트가르트에 자유계약으로 입단하게 된다.

2.1. 이적 분쟁

시미즈 S펄스에서 VfB 슈투트가르트로 이적하는 과정에서 이적료 문제로 분쟁이 발생했는데, 2011년 1월 31일 슈투트가르트로의 이적이 발표되었지만 시미즈 측에서는 오카자키와의 계약이 2011년 2월 1일까지임을 지적하며 슈투트가르트에 이적료 지급을 요청하면서 FIFA에 제소. 분데스리가 선수등록이 1월 31일까지여서 자칫 국제미아가 될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하였으나 2월 16일 시미즈 측에서 제소를 철회하며 이적이 일단락되었다#. 시미즈 측의 주장은 소속팀과 계약 만료를 6개월 앞둔 시점부터 다른 구단과 자유롭게 협상할 수 있다는 보스만 룰에 따라 FIFA에서도 받아들이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오카자키측에서 시미즈와 상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이적을 발표한 점과, 일본축구협회가 추진하는 축구선수들의 해외리그 진출 정책에 의해 J리그 구단들이 이적료도 못받고 핵심 전력들을 외국에 유출시키는 와중에 발생한 일이라 시미즈 측에서 억울해할만 하다.

3. VfB 슈투트가르트

2011년 2월 20일 바이어 레버쿠젠을 상대로 분데스리가 데뷔전을 치루었으며 2011년 5월 6일 하노버 96와의 경기에서 데뷔골을 기록했다. 슈투트가르트 시절에는 주로 왼쪽 미드필더로 출전했는데, 2011-2012시즌에는 7골, 2012-13 시즌에는 2골밖에(리그 1골) 기록하지 못했다. 슈투트가르트에서 3시즌동안 통산 85경기 13골을 기록했다.

4. 1. FSV 마인츠 05

2013-14 시즌부터 마인츠로 이적. 처음에는 슈투트가르트 시절처럼 미드필더로 출전했지만 리그 10라운드 때부터 스트라이커로 출전하면서 2득점을 획득, 처음으로 멀티골을 성공시키며 골을 폭발시키기 시작했다. 최종적으로 슈테판 키슬링, 라파엘과 함께 리그 공동 7위에 해당하는 15골로 커리어 하이를 기록, 분데스리가 일본인 선수 단일시즌 최다골 기록 보유자가 되었다.[1]

2014-15 시즌에는 총 32라운드에서 12골 4도움을 기록하며 라파엘과 함께 리그 공동 득점 8위에 올랐고, 2년 연속으로 팀 내 득점 1위를 기록했다. 일본인 사상 처음으로 유럽리그 2시즌 연속 10골 이상을 기록한 선수가 되었다. 2시즌 동안 리그 27골을 넣으며 팀 에이스로 맹활약한 그는 1년 전부터 계속 본인을 원했던 프리미어 리그레스터 시티 FC로 이적하게 된다.

그리고 이 이적은 신의 한 수가 된다.

5. 레스터 시티 FC

2015년 6월 26일, 레스터 시티 FC로 이적하였다. 이적료는 £7m이며 계약기간은 4년간으로 알려졌다.

5.1. 2015-16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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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6시즌에는 제이미 바디와 함께 투톱을 이루고 있으며, 프리미어리그 2라운드인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FC전에서 프리미어리그 데뷔골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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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어 리그 22라운드 아스톤 빌라 전에서 득점한 이후 한동안 골 맛을 보지 못하다가 프리미어리그 30라운드 뉴캐슬 유나이티드 FC전에서 멋진 바이시클킥으로 결승골을 넣었다.

30라운드까지 리그에서 28경기 5골, FA컵과 리그컵에서 3경기 1골로 총 31경기 6골[2]을 기록하고 있는데, 공격수로서 좋은 스탯이라고 보긴 어렵지만 본인이 직접 득점을 노리기 보다는[3] 특유의 왕성한 활동량와 적극적인 수비 가담을 바탕으로 헌신적인 플레이를 통해 전 시즌 리그 11골을 넣었던 레오나르도 우조아를 제치고 주전 자리를 굳건히 사수했다. 박지성과 같은 롤이라고 할수있다. 또한 레스터 시티 FC가 리그 우승에 가장 근접한 상태라 잘만 하면 프리미어리그 데뷔 첫 해부터 리그 우승을 경험하는 경사가 날 수도 있게 되었다.

그리고 5월 3일에 2위 토트넘이 첼시와 2-2로 무승부를 기록하면서 PL 데뷔 첫 해 리그 우승을 이루는데 성공했다! 박지성카가와 신지에 이어 세 번째로 PL에서 우승한 아시아 선수라는 영광스러운 기록도 세웠다.

여담으로 오카자키가 트로피를 들으려 할때 방송사는 바로 관중석으로 카메라를 돌려버렸고, 일본팬들은 난리가 났다. 예전에 박지성도 그랬었던 것을 기억한 한국 팬들 역시 매우 분개했다. 기성용도 12-13 시즌 리그컵 우승 당시에 카메라를 변경했다#

2015-16 시즌 39경기(선발 29경기) 6골 2도움
프리미어 리그: 36경기(28) 5골 2도움
FA컵: 2경기(-) 1골
EFL컵: 1경기 -

5.2. 2016-17 시즌

16-17 시즌 초반에는 여전히 주전으로 나오고 있지만 새로 영입된 슬리마니아메드 무사가 적응을 마친다면 힘겨운 주전 경쟁이 예상된다.

시즌 초반 리그컵 3라운드 첼시전에서 2골을 터뜨리는 맹활약을 했지만 팀은 2-4로 역전패했고, 이후 크리스탈 팰리스전에서 1골을 넣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전 시즌에 비해 레스터가 전반적으로 고전하면서 오카자키도 힘을 쓰질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나 이적해온 슬리마니와의 경쟁에서 상당히 뒤쳐진 모습이라 이전 시즌보다는 많이 전망이 어둡다. 지난시즌에 비해서 기복도 심해진 모습이다. 마치 팀이 그랬던 것처럼.

2016-17 시즌 41경기(선발 30경기) 6골 1도움
프리미어 리그: 30경기(21) 3골 1도움
UEFA 챔피언스 리그: 7경기(5) 1골
FA컵: 2경기 -
EFL컵: 1경기 2골
커뮤니티 실드: 1경기 -

5.3. 2017-18 시즌

17-18 시즌 초반에는 2라운드 연속골을 터트리며 기세를 올리고 있다. 두 번째 브라이튼과의 경기에서는 경기 시작 52초만에 득점을 올리기도 했다. 라인브레이킹에 이은 득점으로 감각이 되살아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6라운드 리버풀 전에서는 리버풀 골키퍼 미뇰레가 펀칭 실수한 틈을 타 또 한 골을 만들어냈다. 9라운드 스완지시티 전에선 결승골을 넣어 벌써 시즌 4골을 달성했다.

한동안 골소식이 없다가 17라운드 사우스햄튼 경기에서 멀티골을 폭발시켰다!!! 리그 반이 지나기도 전에 데뷔해에 기록한 본인 최다골인 5골을 넘어선 6골째 득점.

하지만 이후 좀처럼 득점을 기록하지 못하면서 부진에 빠졌다.

최종 기록은 리그 27경기 출장, 6골 3어시.

2017-18 시즌 32경기(선발 18경기) 7골 3도움
프리미어 리그: 27경기(17) 6골 2도움
FA컵: 3경기(-) -
EFL컵: 2경기(1) 1골 1도움

5.4. 2018-19 시즌

주전경쟁에서는 완전히 밀렸고, 교체로 간간이 나오고 있다.이러다보니 오카자키도 레스터와 이야기를 갖고, 출전 기회가 보장되지 않을 경우 떠날 것이라 말했다. 현재 허더즈필드 등 EPL 여러 구단이 오카자키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고.

26라운드 토트넘 핫스퍼 경기에 88분 교체로 나왔으나 별 활약을 하지 못하고 팀은 1-3으로 패했다. 일본 축구 전문지 '게키사카'는 “토트넘은 바디에 실점하며 흔들렸다. 그러나 손흥민의 독주로 승리를 쟁취했다. 손흥민은 침착했고, 프리미어리그 3경기 연속골을 넣었다. 반대로 오카자키는 88분에 교체로 출전했다. 오카자키가 그라운드를 밟았지만 레스터 패배를 막을 수 없었다”라고 보도했다. 오카자키는 올 시즌 주전 경쟁 실패로 리그 1도움에 그치고 있다. 사커킹 지도 "오카자키와 손흥민의 두 팀 활약도와 입지는 차이가 많았다." 라고 은근히 손흥민에 견줘 오카자키의 입지 축소를 보도했다.

18-19 시즌 25경기에 출전했지만 골 없이 어시스트만 1개 기록하였고, 결국 이번 시즌을 끝으로 팀을 떠났다. 이후 스페인 세군다 디비시온 말라가 CF로 이적했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이적시장 마지막 날 계약 해지를 하면서 무적 상태가 되었다.

2018-19 시즌 25경기(선발 4경기) 0골 1도움
프리미어 리그: 21경기(1) 1도움
FA컵: 1경기 -
EFL컵: 3경기(2) -

6. SD 우에스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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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지나지 않아 9월 4일 우에스카와 1년 계약을 맺었다. 연장 옵션도 포함되었다.

초반에는 로테이션 멤버로 기용되다가 서서히 주전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중이다.

3월 1일에는 멀티골을 넣어 경기 MOM으로 선정되었다.

31라운드 기준 리그에서만 8골을 기록하고 있으며 팀의 주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헌데 VAR로 취소된 골수가 무려 7골로 리그 최다를 기록하고 있으며 이 중 몇은 좀 억울한 것도 있었다는 점이 아쉬운 부분. 오카자키 본인도 이에대해서 인터뷰를 하였다.#

파일:606A21DA-AC01-47D0-A51F-F4237ADD9FA6.jpg
7월 3일 UD 라스팔마스와의 경기에서 그동안의 VAR로 인한 역경을 딛고 리그 10호골을 달성했다! 팀도 1대0으로 승리하면서 사실상 팀에서 가장 돋보이는 활약을 하고있다.

39라운드 AD 알코르콘전에서 결승골을 넣어 팀의 승리를 견인했고, 41라운드에서도 쐐기골을 넘어 팀의 승리에 공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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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팀내 득점 1위[4]로 우에스카의 공격을 이끄는 주축으로 활약하며 시즌을 마무리 했고, 오카자키의 활약 속에 우에스카는 리그 우승을 거두고 프리메라리가 승격까지 성공했다. 우에스카에게는 오카자키 영입이 신의 한수가 된 반면, 오카자키를 놓치고 결국 중하위권으로 떨어진 말라가팬들 입장에서는 피눈물을 흘리는 분위기이다. 여담으로 오카자키는 영입 당시 리그 10골을 넣을 것을 약속했는데 12골을 넣어 그 약속을 지켰다.VAR로 취소된것만 아니었으면 거의 20골은 넣었을 분위기

공교롭게도 레스터시티 시절부터 이적 첫시즌에 우승을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5]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연장옵션을 발동, 2021년까지 계약을 연장했다. 같이 세군다 디비시온으로 이적한 카가와 신지가 부진을 거듭하다가 방출된 것과는 여러모로 비교되는 행보.

하지만 라리가 승격 이후에는 득점 없이 부침을 겪다가 5라운드 엘체 CF 원정에서 부상을 입어 40분만에 교체되었다. 이후 한 달 넘게 회복에 전념하다가 10라운드 CA 오사수나 원정에서 후반 30분 교체투입되며 복귀전을 치렀다. 하지만 오카자키의 부상으로 급하게 영입된 산드로 라미레스가 5경기 2골로 나름 괜찮은 모습을 보이고 있어서 오카자키가 주전으로 빠르게 돌아갈 수 있을지 우려스러운 상황.

2021년 1월 주전경쟁에서 완전히 밀려 우에스카에서 방출되었다. 현재 팀이 없는 상황.

7. FC 카르타헤나

2021년 8월 31일 FA 신분으로 라리가 2의 FC 카르타헤나에 합류하였다. 17경기 1득점을 기록 중으로 우에스카 시절 기량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8. 신트트라위던 VV

2022년 8월 19일, 신트트라위던 VV로의 이적을 공식 발표했다.# 이로써 구단의 5번째 일본인 선수가 되었다.

2023년 6월 28일, 1년 재계약을 맺었다.

2024년 2월 26일,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1] 종전 기록은 2011-2012시즌 카가와 신지가 기록한 13골.[2] 어시스트는 없지만 PK 유도는 한차례 기록했다.[3] 윙어인 마크 알브라이튼이나 미드필더 대니 드링크워터와 슈팅 숫자가 엇비슷하다.[4] 2위인 라파 미르와는 3골차이다.[5] 레스터 시티 언론들도 이를 비중있게 전했다.파일:F35EE72B-FF15-4FD4-91DA-6CF10A4C9ACC.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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