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1-20 23:28:39

오스왈도 산체스

멕시코의 前 축구선수
파일:O.Sanchez_Retire.jpg
<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오스왈도 산체스
Oswaldo Sánchez
본명 오스왈도 하비에르 산체스 이바라
Oswaldo Javier Sánchez Ibarra
출생 1973년 9월 21일 ([age(1973-09-21)]세) /
멕시코 과달라하라
국적
[[멕시코|]][[틀:국기|]][[틀:국기|]]
신체 185cm
직업 축구선수 (골키퍼 / 은퇴)
소속 선수 아틀라스 FC (1993~1996)
클루브 아메리카 (1996~1999)
CD 과달라하라 (1999~2007)
클루브 산토스 라구나 (2007~2014)
국가대표 파일:멕시코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2022~).svg 99경기 (멕시코 / 1996~2011)

1. 개요2. 클럽 경력3. 국가대표 경력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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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멕시코 출신의 前 축구선수.

자국 리그인 리가 MX에서 뛰어난 기량을 선보이며 오랫동안 정상급 골키퍼로 자리매김한 선수이다.

2. 클럽 경력

1993년 10월 30일, 약관의 나이였던 오스왈도 산체스는 기존의 주전 골키퍼 부상으로 인해 CD 베라크루즈와의 리그 경기에서 교체 출전으로 프로 데뷔전을 치렀고 팀은 1대1로 무승부를 거두었다.

2년 뒤 그는 베라크루즈와의 전기리그 8강전에서 처음으로 선발로 출전했지만 팀은 패하면서 준결승 진출에는 실패했다.

1996년, 산체스는 클루브 아메리카로 이적했다. 산체스는 벤치를 지켰고 주전 골키퍼로는 휴고 피네다가 낙점받았다.

그는 모나르카스 모렐리아에게 패한 8강전을 포함하여 19경기 중 3경기만을 뛰었지만 다음 시즌에 그는 다시 아메리카의 주전 수문장으로 활약했다.

1999년 여름, 그는 클루브 아메리카를 떠나 CD 과달라하라로 팀을 옮겼다.

2.1. CD 과달라하라

파일:O.Sanchez_Chivas.jpg
CD 과달라하라에서 산체스는 주장으로 선임됐고 그는 치바스[1]의 키 플레이어로 거듭났다. 이 시기는 과달라하라가 전성기를 누리던 때로 본인도 6차례 리그 최우수 골키퍼와 2차례 리그 골든볼로 선정되며 리가 MX 수위급 골키퍼로 활약하고 있었다.

그의 비범한 선방 능력과 리더십은 과달라하라가 2004 시즌 클라우수라[2] 결승전에 진출하는 데 큰 도움을 줬으나 팀은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UNAM에게 결국 패했다.

한 차례 좌절을 겪은 뒤 마침내 2006 시즌 아페르투라[3] 동안 과달라하라와 함께 오랫동안 기다려온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우승을 달성한 후 팀과의 재계약 협상에서 서로간의 이견을 좁히지 못한채 결국 팀을 떠나고 말았다.

그는 클럽 수뇌부들이 더 이상 그를 원하지 않는다고 판단했고 오퍼가 왔던 티그레스 UANL을 뿌리치고 클루브 산토스 라구나로 이적을 결정했다.

여담으로 2000년, 에콰도르의 데포르티보 엘 나시오날과의 코파 메르코노르테[4] 경기에서 득점을 성공시킨 적이 있었다.

2.2. 클루브 산토스 라구나

파일:O.Sanchez_laguna.jpg

2007년, 산토스 라구나의 유니폼을 입은 그는 전 소속팀인 과달라하라와의 경기에 출전했으나 2:3으로 패했다. 산토스에서 첫 시즌에 그는 리그 최고의 골키퍼 다운 실력을 연일 보여주며 팀을 강등 위기에서 구했다. 다음 시즌에는 2008 클라우수라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 하며 생애 2번째 리그 우승을 달성한다.

그는 부상에서 복귀 후 팀의 2007 클라우수라 토너먼트 8강을 이끌었다. 또한 2010년 적지 않은 나이에도 녹슬지 않은 기량으로 아페르투라와 클라우수라 2위를 이끌며 여전히 팀의 수호신으로 활약한다. 2012년, 클라우수라에서 다시 한번 우승을 차지하며 라구나에서 2번째 리그 우승과 함께 본인의 3번째 리그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만 41세인 산체스는 코파 MX[5] 우승을 달성한 뒤 2014 아페르투라를 마치고 21년간의 현역 프로생활을 정리했다.

3. 국가대표 경력

파일:O.Sanchez_National.jpg

1993년, 그는 FIFA 월드 유스 챔피언십에 U-20 대표팀 소속으로 참가했다. 3년 뒤 볼리비아전을 통해 성인 대표팀에 데뷔했다. 총 3 FIFA 월드컵 본선 무대에 참가했으며 1998년 대회에서는 호르헤 캄포스에게 2002년 대회에서는 오스카 페레스에게 밀려 서브 키퍼에 머물렀으나 2006년 대회에서 마침내 엘 트리콜로의 넘버원으로 참가할 수 있었다.

대회 기간동안 산체스는 그의 아버지가 56세의 나이로 별세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심리적으로 많은 타격을 입을 법도 했으나 그는 프로답게 귀국하지 않고 본선 4경기동안 흐트러짐 없는 활약을 보이며 팀을 16강 진출에 견인했다.

2007년, 당시 대표팀 감독인 우고 산체스의 부름을 받아 골드컵코파 아메리카 대회에 참가했다.

이후에는 대표팀 소집이 뜸해지면서 은퇴 수순을 밟는가 했으나 2011년 10월 11일에 브라질과의 친선전에서 선발 출전하여 후반 종료 2분전에 후배인 알프레도 탈라베라와 교체되었다. 이것이 그의 A매치 마지막 경기였으며 이 경기를 끝으로 국가대표팀 은퇴 선언을 했다.

4. 여담

  • 피파 2005의 북아메리카판 표지모델이었다.

  • 2006년 2월 15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메모리얼 콜리세움에서 열린 대한민국과 멕시코의 친선 경기에 출전하여 이동국의 행운의 골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대형 실수를 저질렀다. 산체스는 이에 항의했으나 경고를 받았고, 이 골이 결승골이 되어 멕시코는 0:1로 패했다. 이후 인터뷰에서 자신의 실수로 졌다면서, 관중석에서의 휘슬 소리를 반칙인 줄 착각했다고 밝힌 뒤 사과했다. 이걸로 인해 살해 위협을 받기도 했다.
  • 2016년, 산투스 라구나는 7시즌간 훌륭했던 활약을 기념하여 그의 동상을 세웠다.

[1] CD 과달라하라의 별칭[2] 후기리그[3] 전기리그[4] 남미 북부 클럽 컵대회, 2002년부터 코파 수다메리카나로 통합됐다.[5] 컵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