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opad> | |
| 본명 | 오균익 |
| 링네임 | 오대균(呉大均) 오균익 |
| 출생일 | 1940년 |
| 출생지 | 전라북도 |
| 신장 | 183cm |
| 체중 | 105kg |
| 시그니쳐 무브 | 드롭킥 |
| 유형 | 테크니션 |
| 주요 커리어 | NWA 오리엔탈 태그팀 챔피언 1회 |
1. 개요
한국의 프로레슬러. 김일 도장의 에이스로 활약했다.2. 경력
씨름에서 활약하던 중 김일에게 발탁되어 1967년 프로레슬링에 데뷔했고, 이후 김일 도장의 에이스로 성장했다.1972년 5월 26일, 강성영(남해산), 양진오와 함께 국제 프로레슬링 ‘빅 섬머 시리즈’에 유학생 신분으로 참가해 일본 프로레슬링에 처음 출전했다.
1975년 9월부터 10월까지 강성영과 함께 신일본 프로레슬링에 출전했다. 1976년, 김일이 일본 제휴처를 신일본에서 전일본으로 바꾸면서 그는 강성영, 양진오와 함께 전일본 프로레슬링에 출전했다. 같은 해 3월 26일, 전일본 프로레슬링에서 부활한 아시아 태그팀 타이틀 챔피언 결정전이 서울에서 열렸는데, 홍무웅과 팀을 이뤄 도전했지만, 그레이트 코지카와 오쿠마 모토시에게 패해 챔피언 등극에 실패했다.
1978년 2월, 전일본 프로레슬링, 국제 프로레슬링, 한국(김일 도장) 3군 대항전 ‘전군 격돌전’에서 김일, 김덕, 김광식, 양승휘 등과 함께 한국군 대표로 출전했다. 이 무렵 남해산, 양진오, 김유식과 함께 김일 도장의 코치를 맡았다.
1982년 5월 2일,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한일 친선 국제 프로레슬링 대회'에서 남해산과 함께 프린스 통가, 스가와라 노부요시를 꺾고 초대 NWA 오리엔탈 태그팀 챔피언에 올랐다.
1983년 9월 23일 은퇴했다. 이후 잠실 장미상가에서 '오대균 제과점'을 운영했다.
그의 정확한 사망 시기는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이왕표는 일본 프로레슬링 잡지와 인터뷰에서 그가 일찍 세상을 떠났다고 전했다.
3. 참고자료
- G-SPIRITS 44호
- 믹박사의 쇼와 프로레슬링 연구소
- CAGEMA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