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6-04-28 02:14:45

연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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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자연유산
<colbgcolor=#004097><colcolor=#fff> 연주대
戀主臺
소재지 경기 과천시 중앙동 산12-4번지
소유자 연주암
관리자 연주암
분류 자연유산 / 명승 / 문화경관 / 건물지
수량/면적 1기
지정연도 2024-07-04
파일:연주대.jpg

1. 개요2. 경기도 자연유산3. 상세

1. 개요

연주대(戀主臺)는 대한민국 관악산 정상 북쪽 꼭대기 절벽에 위치한 연주암 소속의 사찰 전각이다. 경기도 기념물 제 20호로 지정되어있다. 신라 문무왕 17년(667년)에 승려 의상대사가 좌선공부를 위해 세운 암자라고 알려져 있으며, 조선 태조 원년(1392년)에 중건하였다.

2. 경기도 자연유산

||<tablewidth=100%><tablebordercolor=transparent><tablebgcolor=transparent>‘연주대’는 관악산 정상에서 남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크고 작은 바위가 우뚝 솟아 절벽을 이룬 봉우리에 축대를 쌓아 평평한 집터를 만든 곳이다. 이름의 한자를 보면 ‘연(戀)’은 그리워 한다는 뜻이고 ‘주(主)’는 주군(主君) 즉 임금을 뜻하여, ‘임금을 그리워하는 곳’으로 풀이된다.

연주대는 신라의 의상대사가 677년에 지은 작은 암자로 원래 ‘의상대’라 불렀다고 전한다. 지금의 연주대라는 이름은 조선 시대에 붙인 것이다. 이름과 관련된 전설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조선이 세워지고 수도가 개성에서 한양(지금의 서울)로 옮겨지면서 고려를 그리워한 사람들이 여기에 올라 옛 왕조와 충신들을 그리워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또 다른 전설로는 조선이 세워지고 한양이 수도로 정해질 때, 무학 대사(無學大師)의 권유로 태조 이성계가 직접 관악산 연주대에 올라 경치를 둘러보고 조선과 한양의 복을 빌기 위해 원각(圓覺) · 연주(戀主) 두 절을 지었고 이때부터 ‘연주대’라 불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연주대와 관련된 설화 중에는 세종의 형인 양녕 대군과 효령 대군의 이야기도 있다. 태종이 셋째 왕자 충녕 대군(훗날 세종)을 세자로 정하려 하자 두 형은 궁을 나와 여러 곳을 유람하였는데, 양녕 대군이 이곳에 올라 경치를 바라보며 시를 지었고, 효령 대군은 스님이 되어 이곳에서 오랫동안 머물렀다는 이야기다.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연주대 (戀主臺) ||

3. 상세

그 뒤에는 우뚝 솟은 말바위[馬巖]가 있어서 이 바위에 올라타면 득남할 수 있다는 전설을 지니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조선왕조 개국 초에 무학대사(無學大師)의 권유를 듣고 태조는 도읍을 한양에 정함에 즈음해서 이 연주대에 친히 올라 국운장구를 빌며 원각(圓覺)·연주(戀主) 두 절을 짓고 서울을 비치는 화산(火山) 불길을 진정시키고자 꾀하였다고 한다.

그 뒤 임금 자리를 아우인 세종에게 양보한 양녕대군(讓寧大君)과 효령대군(孝寧大君)이 이곳에서 놀았다 한다. 이때 양녕대군이 중에게 준 오언절구 “山霞朝作飯 蘿月夜舂燈 獨宿孤巖下 惟存塔一層(산노을로 아침밥을 짓고, 女蘿의 덩굴에 걸린 달이 불을 밝히네. 홀로 외로이 바위 아래 오로지 탑 한층만이 남아있네)”이라는 한시가 명시로 전하며 효령대군은 여기에서 오랫동안 수도하였기에 그의 초상화가 보존되어 내려온다. 세조 때에도 태조 때의 예에 따라 여기에서 백일기도를 올렸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