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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bgcolor=#000000,#000000><colcolor=#ffffff,#e0e0e0> 에드나 신트론 Edna Cintrón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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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명 | 에드나 트로체 신트론 Edna Troche Cintrón |
| 출생 | 1954년 10월 14일 |
| 푸에르토리코 | |
| 사망 | 2001년 9월 11일 (향년 46세) |
| 미국 뉴욕주 뉴욕시 제1세계무역센터 | |
| 국적 | () |
| 가족 | 배우자 윌리엄 S. 신트론 (1957~2021) |
| 언니 미르나 신트론 오빠 | |
| 학력 | 고등학교 (중퇴) |
| 직업 | 기업인, 비서 |
| 소속 | 마쉬 앤 맥레넌(Marsh & McLennan) |
1. 개요
푸에르토리코 출신 미국의 기업인. 9.11 테러 당시 이른바 손을 흔들고 있는 여인(waving woman)으로 유명한 인물이다.2. 생애
에드나의 일생을 다룬 기사1954년 미국령 푸에르토리코의 가난한 집안에서 1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5살 때 온 가족이 뉴욕의 맨하탄으로 이주했으며, 어머니가 뉴욕시 교육위원회에서 근무했지만 집안 사정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1] 당장 어머니 본인부터가 점심을 사 먹을 형편도 안 되서, 매일매일 집에서 삶은 계란 2개로 버텼을 정도. 그런 어머니도 에드나에게 매주 용돈은 꼬박꼬박 줬지만, 그게 겨우 몇백 원에 불과했다. 에드나와 가족들이 살던 델란시 거리 자체가 당시 물결처럼 몰려오던 이민자들이 밀집한 곳이었는데, 저 때 주로 가난하거나 열악한 환경 속에서 더 나은 삶을 살고자 하는 이민자들이 대부분 정착했으니, 저 지역 자체가 얼마나 열악했을 지는 뻔하다. 에드나는 이런 환경 속에서도 어떻게든 노력해서 고등학교에 진학까지 했지만, 나아질 줄 모르는 형편 속에 결국 고2를 끝으로 자퇴해야만 했다.
32세였던 1987년 3살 연하의 윌리엄 신트론이라는 남성을 만났다. 윌리엄은 이전에 다른 여성과의 사이에서 2명의 자녀를 두었으나, 모종의 사유로 금방 이혼했고 자녀들과도 헤어졌다. 서로 만난 지 2개월 후, 에드나는 윌리엄이 살던 브루클린의 아파트로 이주하여 동거하다가 2년 후인 1989년에 결혼했다. 비록 에드나의 불임 때문에 부부는 아이를 갖지 못 했지만, 그럼에도 버뮤다, 멕시코, 자메이카 등 근교 국가에 여행도 다니는 등 행복하게 지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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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었을 적 사진(날짜 불명) |
처음에는 세계금융센터[2]에서 근무하다가, 1999년 즈음 바로 옆의 제1세계무역센터에 입주한 마쉬 앤 맥레넌에서 근무하기 시작했다. 마쉬는 130여개 국가에 진출한 대형 보험중계 회사로, 한국에도 마쉬 코리아라는 이름으로 1979년에 진출했다. 에드나는 이 회사에서 금융 문제를 담당했다.
여기까지만 놓고 봐도 에드나는 명백한 인간 승리자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외모부터 누가 봐도 뻔한 백인이지만, 에드나는 엄연히 라틴아메리카에 속한 푸에르토리코 출신이라서, 법적으로는 백인이 아닌 히스패닉으로 분류되었다.[3] 거기다가 푸에르토리코는 말만 미국령이지 대부분이 영어가 아닌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빼박 스페인어권이고, 여느 푸에르토리코인들처럼 에드나도 가난한 집안 출신이었다. 그래서 더 나은 삶을 찾고자 온 가족이 미국에서, 그것도 제일 잘 산다는 뉴욕으로 이주했지만, 당시 미국은 비백인에 대한 사회적 차별이 매우 심각했고, 에드나의 가족이라고 해도 예외는 아니었을 것이다. 물론 1960년대를 거치면서 비백인에 대한 법적 차별이 금지되고, 이들에 대한 역차별 등 이들의 사회적 지위를 향상시키려는 노력이 없었던 것도 아니며, 에드나 또한 이러한 혜택을 어느 정도 받았겠지만, 사회적으로 이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은 현재까지도 아주 안 없어진 상태. 거기다 집안 형편 때문에 고2 때 자퇴하는 바람에 최종 학력은 중졸이었고, 이런 상황에서 제대로 된 취업과 출세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런 환경에서도 세계적인 도시 뉴욕에서, 그것도 미국인의 자존심이나 마찬가지였던 세계무역센터에 입주한 국제적인 대기업에 취업했다는 것은 아무리 노력해도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 점을 고려할 때, 인간 승리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을 지경.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 인생에 심한 컴플렉스가 있던 모양인지, 윌리엄을 포함한 주변에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해 말하는 것을 매우 꺼렸을 정도였으며,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한에 한창 40대 후반의 나이에 근무 중이던 2001년 당시 고등학교 졸업장에 준하는 GED를 따려는 준비를 했을 정도였다. 애석하게도 에드나의 꿈은 이루어지지 못 했다.
3. 운명의 그 날
2001년 9월 11일 오전, 에드나는 여느 때와 다름 없이 제1세계무역센터에 출근했다. 근무 시작 시간인 오전 9시를 앞두고 이런저런 준비를 하면서 잠깐 쉬던 중, 어떤 여객기가 제1세계무역센터 건물과 충돌하는 사건이 발생했다.[4] 어느 쪽이든 간에 충돌과 함께 대폭발이 일어나면서 여객기 탑승객은 물론이고, 충돌 지점에 있던 사람들도 영문도 모른 채 즉사했다. 에드나가 근무하고 있던 마쉬 앤 맥레넌은 93층부터 100층까지 입주해 있었는데 하필이면 입주한 층들 모두 충돌 지점이라, 상주 직원들 대부분이 현장에서 즉사했다. 아직은 단순 사고인지 아니면 고의적인 테러인지 확실하지 않던 상황이었지만, 어느 쪽이든 간에 안타까운 죽음이고, 지나가던 사람들도 대부분 "사고"가 벌어진 층에 있던 사람들은 다들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
몇분 후, 사건이 벌어진 시점에서 몇몇 사람들이 어찌어찌 버티는 장면이 포착된 것이다. 그 중에는 에드나도 있었는데, 밖을 향해 손을 흔드는 장면이 많은 이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겨주었으며, 이 덕분에 "손을 흔드는 여인(waving woman)"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전원이 충돌과 함께 즉사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에서도, 몇몇이 기적적으로 생존했다는 점에 많은 사람들이 깜짝 놀랐으며, 지켜보던 사람들도, 당사자들도,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구조될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구조되지 못 했다. 당연히 911에 신고도 들어갔지만, 저렇게 높은 층까지 헬기를 올리는 건 심각한 무리였다. 거기다가 비행기 충돌과 함께 쏟아져 나온 엄청난 양의 항공유는 초대형 화재를 일으켰고, 그 온도가 무려 섭씨 1천도를 넘긴 상황에서 소방관들도 도무지 접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면 본인들이 현장에서 탈출할 수밖에 없었는데, 문제는 비행기 충돌과 함께 밑으로 내려가는 통로 자체가 아예 파괴되는 바람에 탈출도 불가능했다.
결국 오전 10시 28분, 제1세계무역센터가 붕괴되면서 당사자들 모두 사망했다. 후술할 연유로 에드나가 정확히 어떻게 죽었는 지는 알 수 없어서 이에 대한 수 많은 추측들이 나돌고 있지만, 어느 쪽이건 매우 안타까운 죽음이었다.
4. 죽음에 대한 의혹
4.1. 손을 흔드는 여인이 사실은 에드나가 아니었다?
사망 당시 에드나의 꼬불꼬불한 금발 머리와 출근할 때 입던 복장을 근거로 윌리엄은 손을 흔드는 여인이 에드나임을 단박에 알아봤다고 주장했으나, 얼마 후 리치 페코렐라(Richie Pecorella)라는 남성이 해당 여인이 에드나가 아닌 자신의 약혼녀인 캐런 수 주데이(Karen Sue Juday)라고 주장하면서 논란이 되었다. 실제로 캐런 또한 에드나처럼 당시 금발에 꼬불꼬불한 머리였으며, 페코렐라에 따르면 복장 또한 캐런이 출근할 때 입던 복장과 동일했다고 한다.하지만 이 주장에는 몇 가지 의문점이 있는데...
- 1. 세계무역센터는 최대 5만 명까지 수용이 가능했으며, 9.11 테러 당시 세계무역센터에서 희생된 사람의 수만 무려 2,753명이나 된다. 물론 이 수치에는 붕괴 당시 근처에서 지나가던 사람들과[5] 어떻게든 세계무역센터 안으로 진입해서 구조를 시도하다가 붕괴와 함께 희생된 소방관 등 비(非) 상주인원도 포함되어 있지만, 그런 이들을 어찌어찌 빼서 상주인원만 잡아도 2천 명은 훌쩍 넘어간다. 저 정도면 어지간한 초등학교 전교생 수(보통 1천 명 전후)를 훌쩍 넘는 수치인데, 이 정도면 똑같거나 비슷한 옷을 입거나 헤어스타일을 한 사람들이 여럿 있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즉 헤어스타일이나 복장이 겹치는 일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법.
- 2. 에드나는 전술했듯이 마쉬 앤 맥레넌에서 근무했고, 마쉬 앤 맥레넌은 피격당한 층인 93층 ~ 100층에 입주했다. 에드나는 그 중에서 97층에 근무했다. 반면 캐런은 캔터 피츠제럴드에서 근무했고, 이 기업은 101층 ~ 105층에 입주했다. 이 층은 피격당하지는 않았으나, 대신에 피격과 함께 통로가 모두 파괴되어 아무도 탈출할 수 없었고, 결국 붕괴와 함께 모두 운명을 달리했다. 당연히 통로 파괴로 내려올 수 없었는데 캐런이라고 예외는 아니었으며, 피격과 함께 크게 뚫린 구멍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도 당연히 불가능했다.
물론 손을 흔드는 여인이 에드나라는 100% 확실한 보장이 없는 것은 사실이다. 얼굴만 볼 수 있다면 단박에 해결된 문제이지만, 문제는 저 멀리서 카메라로 줌을 당겨서 해당 여인의 얼굴을 확인하는 일은 불가능했다. 줌을 너무 당기면 화질이 크게 떨어지는데, 얼굴이 어느 정도라도 보일 수준으로 당기려면 너무 저화질이라 파악할 수 없을 지경. 이건 2020년대 현대 기술로도 불가능한데, 지금보다 기술이 덜 발달하고 화질이 훨씬 더 떨어졌던 2001년 당시로서는 아예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러니 여인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고, 결국 저 여인이 에드나인지 캐런인지, 아니면 둘과 전혀 무관한 다른 사람인지 진실은 저 너머에라고 볼 수밖에 없다.
다만 전술했듯이 에드나의 헤어스타일과, 근무했던 층과 피격당한 층이 맞아 떨어진다는 점에서 해당 여인이 에드나임이 유력할 뿐이다.
4.2. 투신했다?
흔히 에드나가 건물 붕괴와 함께 희생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실제로는 붕괴와 함께 희생된 것이 아닌 투신자살을 했다는 주장도 있다. 이는 "투신하는 여인(falling woman)"으로 알려진 사진의 복장과 헤어스타일이 에드나와 비슷해서 나온 주장인데, 피격당한 층에서 발생한 초대형 화재로 인해 도저히 버틸 수 없을 정도로 실내온도가 급상승했고, 화재로 인한 연기가 너무 심해서 에드나가 이러한 최악의 환경을 도저히 못 버티고 무의식적으로 투신했다는 것이다.실제로 초대형 화재로 인해 투신한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투신하는 여인 외에도 이른바 "투신하는 남자(falling man)"도 유명한데, 이 또한 정확한 신원은 아직까지도 파악되지 않고 있다. 투신한 층과 복장 등을 미루어 볼 때 윈도우즈 온 더 월드에서 음향기술자로 근무하던 조너선 브라일리(Jonathan Briley)라고 추정되지만, 이 또한 확실하지 않다. 결정적으로, 투신한 사람들 모두 시신이 수습되기도 전에 건물이 붕괴되는 바람에 시신이 대부분 유실되었으며, 위에서도 언급한 당시 카메라의 기술상 한계까지 겹쳐서, 구체적인 신원 파악은 불가능한 상황. 에드나가 아니라 복장과 헤어스타일이 비슷한 캐런이라는 주장도 있다.
사실 에드나로 추정되는 여인이 손을 흔드는 장면을 녹화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서, 영상에서 해당 여인이 도저히 못 버티고 투신하는 장면까지 녹화되었다면, 에드나의 죽음을 "투신자살"이라고 결론을 내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해당 여인을 촬영한 사람들 모두 영상을 찍다 말았으며, 문제의 투신하는 여인이 담긴 녹화물은 하나도 없다. 결국 손을 흔드는 여인과 투신하는 여인이 동일 인물인지 알 방법은 없어져서, 에드나가 보다 못해 투신했는지, 아니면 붕괴와 함께 희생되었는지는 미궁 속으로 빠졌다. 일단 최근 네티즌들의 여러 영상 분석은 충돌 당시 북쪽 구멍에 그녀 외에도 남자 셋이 더 있었고, 그 중 가장 가까운 한 명[6]과 커뮤니케이션을 했다는 사실, 그리고 붕괴 직전까지 같은 곳에 서 있었던 같은 정황이 암시되고 있어서 사진의 투신자는 캐런 쪽에 가깝다는 결론으로 모아지고 있다.
5. 여담
- 어느 쪽이든 사망한 것은 맞지만, 법적으로는 사망이 아닌 실종 상태이다. 이유는 에드나의 시신이 현재까지도 수습되지 못 했기 때문.[7]
- 남편 윌리엄은 2021년 9월 24일에 사망했다. 향년 64세. 아내를 잃은 지 20년 13일 만이었다.[8]
- 위로는 언니 미르나(Myrna)와 오빠가 있었다. 언니 미르나는 9.11 테러 당시 뉴저지에 거주하고 있었으며, 오빠랑은 당시 사이가 틀어진 지 오래라고 하는데, 이름이 공개되지 않은 것으로 봐서 가족과 아예 절연했을 가능성도 있다. 둘 다 근황 및 생사 여부는 불명.
[1] 참고로 당시 뉴욕은 최저임금제가 없었다. 1960년 10월 1일에 처음 도입되었지만, 당시 최저시급은 시간당 겨우 1달러, 즉 1시간 일해서 겨우 천원 버는 꼴이었다. 물론 당시 미국가 오늘날의 한국의 근로기준법이 많이 다르기 때문에 1:1로 대응시키기는 어렵지만, 가령 주 5일 오전 9시부터 5시까지 근무(1일 8시간 근무)한다고 치면 1주일에 겨우 4만원, 월급은 한 달을 30일, 주말을 빼서 24일로 잡는다는 전제 하에서 192,000원 밖에 안 되는 셈이다. 거기다 당시에는 이런저런 추가수당이 있었는지도, 설령 있었다고 쳐도 제대로 지켜질 수 있었을지도 의문. 그리고 미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선진국답지 않게 복지가 매우 열악해서, 저소득층에 대한 제대로 된 처우 개선이 오늘날에도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판에 지금보다 더 가난하던 당시에는 안 봐도 비디오다.[2] 現 브룩필드 플레이스. 세계무역센터 부지 바로 옆에 있는데, 이 때문에 9.11 테러 당시 건물이 크게 손상되었다. 현재는 복구되었다.[3] 영어 위키백과에 히스패닉 백인에 대해 다룬 문서가 있으므로 참조해볼 것. 문서에도 나와 있듯이 아무리 스스로 백인이라고 자처해도 그냥 자칭(self-identify)에 불과해서, 법적으로는 인정받지 못 한다.[4] 아무리 악질 테러리스트라고 해도 비행기를 몰고 건물에 들이받는 순간 폭발하면서 자신들도 죽을 것이기 때문에, 자신들이 죽을 걸 뻔히 알면서 저런 테러를 감행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물론 첫판부터 의도적인 테러임을 직감했던 사람들도 적지 않았지만, 전술한 이유로 대부분은 그냥 "설마" 하며 넘겼는데 문제는 그 "설마"가 사실이었다.[5] 당시 세계무역센터의 상황을 근처에서 촬영하던 사진가 빌 비가트(Bill Biggart)도 그 중 하나였다.[6] 이 남성의 정체도 원래 100층에 근무했다 이 날 더 아랫층에서 봉변을 당한 칸터 피츠제럴드 직원 Luis Eduardo로 예상되며, 95층 기둥 부근까지 스스로 내려왔지만 부상에 시달리다 많은 연기에 질식 후, 그 자리에서 최소 붕괴 20분 이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투신 장면이 없고 화면에 팔만 나와 있기 때문.[7] 에드나 뿐만 아니라 아직도 시신이 수습되지 못한 희생자 수만 해도 엄청나다.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잔해속에서 DNA를 분석하여 유해를 수습하고 있는중이다.[8] 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