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08 03:06:22

에드거 윌리엄 브란트

<colbgcolor=#000><colcolor=#fff> 에드거 윌리엄 브란트
Edgar William Brant
파일:.jpg
출생 1880년 12월 24일
프랑스 파리
사망 1960년 5월 8일 (향년 80세)
프랑스 Collonge-Bellerive
가족 Marie-Hélène Brandt (손녀)
Romain Grosjean (증손자)
학력 앙리 브리송 고등학교

1. 개요2. 생애3.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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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스 파리 출신의 철공이자 군인, 무기 개발자, 건축가.

2. 생애

파리 16구의 Michel-Ange 76번가에 작은 작업장을 차렸고, 그곳에서 보석, 십자가, 브로치와 같은 작은 품목을 디자인하고, 은세공하고, 단조하기 시작했다. 그의 사업은 브뤼셀 주재 프랑스 대사관의 문, 루브르 박물관의 에스칼리에 몰리앙 계단, 낭시 시립 대극장의 계단과 발코니 난간 등의 특별 의뢰로 시작되었다.

1914년에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자 프랑스군에 징집되었고, 참호전에서 박격포의 필요성을 관찰한 그는 밀폐 홈이 있는 공기 역학적 박격포탄을 설계했고 81mm 박격포인 브란트 Mle 27/31를 개발했다.

전쟁 후 그는 무기 발명으로 군수 사업에서 성공했다. 그가 개발한 60mm, 81mm 및 120mm 박격포는 제2차 세계 대전부터 전세계적으로 매우 광범위하게 복제되며 전파되었다.

박격포 이외에도 새보를 사용하는 원시적인 분리철갑탄을 발명했으며, 대전차고폭탄의 연구에도 관여했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Brandt는 건축 디자이너로서 가장 생산적인 시절을 보냈으며 매년 Salon d'Automne에서 자신의 작품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1919년에 그는 사업을 확장하기로 결정하고 건축가 Favier를 고용하고 Boulevard Murat와 rue Erlanger 모퉁이에 새 건물을 건설했다. 그 안에 그는 자신의 철제품에 대한 물리적 카탈로그를 보관했다. 그는 또한 개념부터 생산까지 전문적인 업무를 담당하는 약 150명의 직원을 추가했다.

Brandt의 경력은 1920년대에 정점에 도달하기 시작했다. 파리의 세련된 매장 입구와 조명은 그의 작품에서 중요한 부분이었다. 또한, 집에 라디에이터가 늘어나면서 이를 숨기기보다는 우아한 디자인의 커버로 시선을 끌었다. 그의 남은 경력 동안 그의 작업은 철문과 벽난로 그릴부터 콘솔 테이블까지 다양했다.

브란트의 작품은 미국 건축가 협회의 인정을 받아 1929년에 그를 명예 회원으로 만들었다.

Brandt는 이제 국제적으로 더 많이 알려지면서 사업을 다시 확장하고 파리 교외 Chatillon-sous-Bagneux에 최첨단 공장을 열었다. 그곳에서 3,000명 이상의 노동자가 그의 이름으로 장식용 금속 세공품과 무기를 제작했다. 그의 회사는 1936년에 국유화되었다.

몇 년 후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면서 가족과 함께 스위스로 도피했다. 1945년 전쟁이 끝나자 브란트는 프랑스로 돌아왔지만 스튜디오를 다시 열지 않기로 결정했다. 대신 1960년에 사망할 때까지 소규모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오늘날 Brandt 회사는 여러 번의 합병을 통해 가전제품 제조업체인 FagorBrandt로 존속하고 있다.

3.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