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07 22:57:34

얼리터우



1. 개요2. 유적

1. 개요

二里頭/Èrlǐtóu

중국 황하 중류부터 하류를 중심으로 발달했었던, 신석기시대부터 청동기 시대에 걸친 문화이며, 도시와 궁전을 건축했었다. 한국 한자음대로 이리두 문화라고도 한다.

2. 유적

이러한 二里頭유적의 특징을 종합해 보면, 약 기원전 18세기에서 16세기까지, 연속된 하나의 공동체가 자리 잡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계획적으로 도시를 개발하였고, 이륜 수레를 사용하였으며, 청동기와 綠松石을 제작하는 공방까지 갖추고 있었다. 이를 통해, 당시 二里頭에 농업 생산에 종사하지 않는 전문적인 직업군이 있었고, 상업도 어느 정도 발전해 있었음을 추측해 볼 수 있다. 또 광범위하게 발견되는 제사유적은 이들에게 공통된 어떤 종교 신앙이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계획 된 도시와 전문적인 직업군, 상업과 종교 활동을 통해, 이를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공공 권력의 존재도 유추해 볼 수 있다. 특히 綠松石 공방과 청동 공방, 그리고 골기 공방과 토기 공방 또한 ‘宮城’ 내, 혹은 그 주변에 분포하고 있는데, 특히 지배층의 ‘威勢品’이라 할 수 있는 청동기, 綠松石器, 골기 등의 공방이 ‘宮城’ 주변에 위치하기 때문에, 당시 전문 수공업 생산을 지배계층이 직접 통제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87) 따라서, 당시 二里頭에는 이 지역을 아우르는 공공 권력을 지닌 지배계층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유표. 「‘夏文化’의 함정 ― ‘禹’, ‘夏’, ‘二里頭’의 관계 ―」 중국고중세사연구 no.58(2020) : 28-29
얼리터우(二里頭, 이리두)란 이름은 유적지의 이름에서 유래됐으며 유적지는 중국 허난성 뤄양 동쪽에 위치해 있다. 1959년 발견된 이후, 발굴 및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1960년에는 대규모의 궁전터가 발견되었으며 중국 초기 왕조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가장 오래된 궁전건축이라고 한다. 기원전 1800년부터 1500년경의 유적으로 추정되며, 과거에는 상나라로 보기도 했지만 오늘날엔 상나라와 구분되는 별개의 집단으로 본다.

문헌의 하나라와 시기가 결부되기에 특히 중국 학계에선 하나라로 보기도 하지만 입증된 것은 아니다. 중국 학계에서도 완전한 동일시가 입증되었다고 보는 것 까지는 아니고, 단지 개연적인 추정을 (해외보다 강조점을 더 찍어서) 내놓는 정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