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18 15:05:58

양 타이롱

양 타이롱
Yang Tai-long[1]· ヤン・タイロン · 楊泰隆
{{{#!wiki style="margin:-16px -11px;"
파일:294px-Yang_Tai-long.jpg
파일:후지사키 류.양 타이롱.jpg
파일:은하영웅전설 DNT.양 타이롱.jpg
OVA 후지사키 류 코믹스 DNT}}}
인물 정보
<colbgcolor=#eee,#222> 신체 정보 남성, ???cm(DNT 기준 178cm), B형
생몰년 SE 731. 9. 28. ~ SE 783. 3. 27. (51세)
가족 관계 ???(첫 번째 배우자), 카트린느 르클레르 양(두 번째 배우자)
양 웬리(아들)
국적 및 소속 자유행성동맹
최종 직책 교역회사 사장
미디어 믹스 정보
성우 파일:일본 국기.svg OVA 소야 시게노리
파일:일본 국기.svg DNT 타나카 히데유키[2]
파일:미국 국기.svg DNT 앤드루 챈들러
1. 소개2. 생애
2.1. 뛰어난 사업가2.2. 두 차례의 결혼, 그리고 아들2.3. 사망
3. 기타

1. 소개

"민중들은 고생하길 싫어했거든."
"고생하길 싫어해?"
"그렇고 말고. 스스로 노력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어디서 뚝 떨어진 초인이나 성자가 자기들 고생을 전부 혼자 짊어져 주기를 기다렸던 거지. 루돌프는 그걸 이용한 거야. 너도 잘 들어둬. 독재자는 독재자를 만들어낸 쪽에 더 많은 책임이 있다는 걸. 적극적으로 지지하지 않았더라도, 잠자코 지켜봤다면 공범이야.(후략)"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1권 <여명편>, 김완, 이타카(2011), p.54~55
은하영웅전설의 등장인물. 자유행성동맹의 상인이자, 양 웬리의 아버지이다. 을지서적 해적판에서 번역은 양 타일론.

페잔인이 아닌데도 상업 분야에서 뛰어난 사업수완을 발휘한 상인으로, 작은 상선으로 사업을 시작하여 부를 쌓아올려 자기 회사까지 설립했을 정도로 자수성가한 인물이다. 또한 고미술품을 수집하는 취향이 있었는데, 벌어들인 돈의 상당수를 미술품 구입에 소모하여 항해를 나가지 않을 때는 오직 자신의 집에서 수집품을 정돈하고 감상하는데 골몰했다. 뛰어난 사업가로써의 면모와는 반대로 자신의 가족보다 사업과 미술품을 더 중요시하는 속물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3]

상인으로써의 능력 이외에도 정치에 대해서도 나름 비범한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어린 시절의 양 웬리에게 은하연방을 무너뜨린 루돌프 폰 골덴바움에 대해서 루돌프는 분명 악당이지만, 이런 악당을 지지하여 독재권력을 가지게 한 절대다수의 민중 또한 잘못을 피할 수 없다는 자신의 견해를 말해준 적이 있었다. 이는 먼 훗날 양 웬리가 민주정치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정립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2. 생애

2.1. 뛰어난 사업가

양 타이롱은 자유행성동맹에서 흔하지 않은, 능력 있는 교역 사업가였다. 원래는 어느 회사의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었으나 무능했던 사장이 자신의 충고를 세 번이나 듣지 않자 독립, 자신의 회사를 차리게 된다. 타이롱이 떠난 뒤 사장은 파산했고 나중에는 어떻게 되었는지 소식이 끊겨버렸다.

시작은 소형 상선이었으나 뛰어난 사업 수완을 가지고 있던 타이롱은 점차 재산을 불려나갔다. 어느 친구가 성공의 비결을 묻자 나는 돈을 사랑하니 은혜를 입은 돈이 출세하며 돌아오는 거라고 대답했는데, 이 말을 센스 있는 농담으로 생각했는지 여기저기 말하고 다녀 '돈 키우기의 달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리고 타이롱은 이 별명을 마음에 들어했다.

타이롱은 고미술품을 수집하는 걸 좋아했는데, 서기 연호가 쓰이던 시대의 조각, 도자기 등 미술품들을 모아 저택에 쌓아두었다. 항성간 상선대를 지휘하지 않을 때 타이롱은 저택에 있든 골동품을 닦거나 감상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이 취미 탓에 타이롱은 배우자까지 골동품으로 골랐다고 손가락질을 당했다.

2.2. 두 차례의 결혼, 그리고 아들

양 타이롱은 어느 날 한 여자와 결혼했지만, 그 여자는 낭비벽이 심했기에 이혼했다. 이후 어떤 군인의 미망인으로 평판이 좋은 미녀 카트린느 르클레르 양과 결혼했다.

카트린느와 결혼한 뒤 그녀와의 사이에서 아들 양 웬리를 낳았다. 양 타이롱은 저택에서 아들의 탄생을 듣고는 꽃병을 닦는 것을 잠시 멈추며, "내가 죽으면 이 미술품은 전부 그놈 것이 되고 말겠구먼."이라고 중얼거리더니 다시 꽃병을 닦았다.

하지만 양 웬리가 태어난지 5년 뒤인 우주력 772년 6월 30일에 카트린느가 급성 심장질환으로 사망했다. 이때 타이롱은 아내의 죽음에 대한 충격으로 청동 사자 조각품을 떨어뜨리더니, 다시 줍고는 "깨질 만한 물건을 닦고 있었더라면 큰일 날 뻔했군..."라고 중얼거렸다. 이렇게 타이롱은 두 아내와 모두 이별하면서 더이상 결혼할 마음을 접었다. 이후 타이롱은 양 웬리를 키우기 위해 가정부를 고용하며 나름대로 아들의 양육을 신경쓰긴 했으나, 그 가정부가 이런저런 사정으로 집을 비울 때는 웬리를 자신의 곁에 앉혀두고 같이 도자기를 닦았다. 죽은 카트린느의 친척들은 이 기묘한 광경을 보고 분노하여, 무책임한 아버지로부터 아들을 떼어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타이롱은 아들과 골동품 중 어느 게 중요하냐는 말에, 골동품을 수집하는 데는 자금이 많이 들었다고 대답해서 친척들을 더더욱 분노케 했다.

마침내 폭발한 양 타이롱의 처가 친척들은 양 웬리의 양육 문제를 법정으로 끌고가려 했지만, 타이롱은 이미 낌새를 눈치채고 아들과 함께 우주선을 타 우주 어딘가로 도망치고 말았다. 처가 사람들도 "아버지가 아들을 유괴했어요"라고 신고하기도 그렇고, 그래도 타이롱이 아들을 아껴서 저런 것이라고 믿고 포기했다.

이후 타이롱은 아들인 양 웬리와 함께 우주를 누볐다. 양 웬리는 점점 성장하면서 역사를 좋아하게 되었고, 그 중에서도 은하연방을 찬탈한 루돌프 폰 골덴바움에 대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에 타이롱은 민중들은 초인이 나타나 자신들의 고생을 해결해주길 원했고, 루돌프는 이걸 이용했다는 색다른 견해를 가르쳐주었다. 또한 타이롱은 양 웬리에게 돈과 미술품의 중요성을 설파하며, 이 두 분야에 관심을 가지기를 바랐지만 강요하지는 않았다[4].

2.3. 사망

양 웬리가 16살이 되었던 해, 우주력 783년 3월 27일 양 웬리는 타이롱에게 하이네센 기념대학 역사학과에 진학하고 싶다고 말했다. 타이롱은 역사로 돈을 번놈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라고 중얼거리면서 아들에게 돈의 중요성을 설파한 뒤 진학을 허락했다. 그런데 바로 당일에 우주선 핵융합로에서 사고가 발생, 타이롱은 손수 이를 해결하기 위해 뛰어든 끝에 후유증으로 사망하고 만다. 향년 51세로, 아들 양 웬리가 16살 생일을 맞기 불과 8일 전이었다.

양 타이롱이 죽고 난 후, 양 웬리는 상속과 그에 따른 세금 문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양 타이롱이 고액을 지불하고 수집한 고미술품들은 죄다 1디나르의 가치도 없는 모조품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고미술품을 사랑하고 수집한 양 타이롱답지 않은 엄청난 실책이었다.[5] 게다가 양 타이롱이 권리를 가지고 있던 회사도 양 타이롱이 자금을 얻기 위해 각종 담보로 잡아놓은 까닭에 사실상 빈 껍데기뿐이었다. 결국 빈털터리가 된 양 웬리는 하이네센 기념대학 역사학과 진학을 포기하고, 울며 겨자먹기로 공짜로 역사를 배울 수 있는 사관학교 전쟁사연구과에 입학하게 되었다.

그나마 타이롱의 그 많은 수집품 중에 만력적회[6] 하나는 진품이었다. 이 도자기는 이후 양이 간직하고 있었지만 아스타테 회전 직후 우국기사단이 발사한 가옥파괴탄에 맞아 깨져벼렸다. 아버지가 남겨준 몇 안 되는 진짜 골동품이었기에 이게 깨지자 나름대로 아쉬워하기도 했다.

양 타이롱은 아내인 카트린느와 함께 하이네센 중심가에서 150km 떨어진 상테레제 공동묘지에 묻혔고, 양은 자식의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적어도 반년에 한 번은 성묘하러 이곳을 찾았다. 양 타이롱과 카트린느의 묘비명은 "누구나 알다시피 선량하고 금슬 좋은 부부였다."였다. 양 타이롱은 생전에 "묘에는 너 죽은 다음에나 오면 돼. 기껏 편히 잠든 사람 방해하지 말고."라고 말했는데, 양 웬리가 자주 성묘하러 오지 않는 것에는 이런 이유도 있었다.

3. 기타

  • 양 타이롱은 코믹스, OVA, DNT의 디자인이 꽤 다른 인물이다. 미치하라 카츠미 코믹스에서는 수염이 멋진 미중년으로 등장하는 반면, OVA에서는 통통한 화교 상인 아저씨 같은 이미지로 등장한다.[7] DNT에서는 전체적인 디자인이 미치하라 코믹스와 OVA 디자인의 중간 정도이며, 아들처럼 바보털이 정수리에 한 가닥 튀어나온 모습으로 나왔다.[8]
  • 생몰년도에 관해 설정오류가 있는데, 본편 1권에서 양 타이롱은 48세에 죽었다고 하지만 외전 5권 <나선미궁>에서 밝혀진 양 타이롱의 생몰년도를 근거로 계산해보면 양 타이롱은 51세에 죽었다.
  • 양 타이롱의 첫 번째 부인은 이혼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 언급되지 않는다. 엘 파실 전투 이후 어느 방송국에서 양 웬리와 양 타이롱의 첫 번째 부인과의 인터뷰를 주선했고, 양도 아버지의 전처가 자신에 대해 무슨 반응을 할지 궁금해 하면서도 민폐가 될 것 같아서 거절했다.
  • 양 타이롱을 고소하려 했던 처가 친척들은 이후 엘 파실 전투에서 다시 언급되는데, 엘 파실의 영웅이 된 양이 화려하게 귀환하자 친척을 자칭하는 사람들이 몰려왔다. 이들 중 어느 신사는[9] 자신이 10년 전부터 양의 장래를 예측했다는 둥의 이야기를 늘어놓기도 했다. 물론 이에 대해 양 웬리는 "그렇게 장래를 촉망했으면 5년 전 학비나 지원해주면 좋았을 것을."라고 반응했다. 그래도 나중에는 만일 사학자가 되었다면 오히려 일반 병사로 징집되어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긴 했다. 실제로도 양은 역사를 좋아하지만 정작 역사학 실력은 그저 그랬다.
  • 양에게 생전에 상관들에게 충언도 3번 정도만 하라고 가르쳤다. 4번까지 충언을 계속 해야할 상관이라면 포기하라고. 그러면서, 자신도 3번까지 충언하던 직장 상관을 포기했더니만 나중에 망했다라고 이야기하며 이몸은 그리 되지 않았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나중에 양은 이를 써먹은데 레그니처 상공 조우전 당시 상관인 파에타에게 세차례나 의견을 제시했으에도 받아들여지지 않자 전투 끝날 때까지 더는 의견을 내지 않았다.
  • 마찬가지로 아내를 먼저 잃는 상처를 겪었으나 이후의 행적이 은하제국쪽의 주인공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의 아버지 세바스티안 폰 뮈젤과 대조적이다. 세바스티안은 아내 클라리벨 폰 뮈젤이 문벌귀족의 자제가 일으킨 음주운전으로 사망한 뒤, 술독에 빠져 폐인이 되고 자식들도 제대로 돌보지 않는 막장 부모로 변모했다. 이로 인해 맏이이자 장녀인 안네로제가 동생 라인하르트를 양육하며, 집안의 살림살이를 책임지는 사실상의 소녀가장이 되었다. 반면 양 타이롱은 아내의 사망에 대한 충격으로 재혼할 마음을 접어버렸지만, 다시금 정신을 다잡고 아들 양 웬리를 각별히 사랑하며 자기 딴에는 성심성의껏 키웠다.[10][11] 물론 세바스티안도 양 타이롱과는 달리 제국의 불합리한 체제 등이 얽혀있고 심지어 하던 사업마저 망해버렸다는 점 등으로 인해 나름대로 동정거리가 있다. 오죽하면 당사자인 안네로제는 물론이요 그 안네로제를 짝사랑하던 키르히아이스조차도 세바스티안의 처지를 이해하고는 동정했다.
  • 일찍 죽었던 관계로 어려운 삶을 살아야 했던 아들은 이 때문에 아버지가 살아있지만 사이가 좀 나빴던 아텐보로에게 살아계실 때 잘 모시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1] 후지사키 류 코믹스에서는 Yang Tyrong.[2] OVA에서는 아들의 친구를 담당했다.[3] 가족을 천시한 건 아니다. 가족들의 생활도 부족함 없이 지원해주며 잘 챙기긴 했지만, 그보다 자신의 사업과 미술품을 더 중요시했던 것.[4] 허나 아이러니하게 이 두 분야는 양 웬리 전술의 핵심이 되었다. 돈은 보급, 미술품은 용병술로 바뀌어 그대로 적용했고 아버지의 격언 또한 그의 작전 수립에 중요한 조언으로 작용했다.[5]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양 웬리는 뛰어난 수완가였던 아버지가 고미술품에 대한 안목은 없다는 것에 헛웃음이 나왔고, 만약 위작인 걸 알고서도 미술품들을 모은 거라면 그것도 아버지답다고 생각했다.[6] 萬歷赤繪. 명나라 만력제 시기에 만들어진 도자기 양식. 오채(五彩)라고도 한다.[7] 양 웬리가 동양계였으므로 중국인 같은 모습이라 해도 이상하진 않다.[8] 정황상 양 웬리의 바보털은 양 타이롱의 유전인 모양이다.[9] OVA에서는 엔디 듀크레이라는 이름을 얻었다.[10] 앞서 서술된 것처럼 처가 식구들이 양 웬리의 양육권 문제를 법정에까지 끌고 가려고 하자, 즉시 우주선에 태워 함께 도망간 것도 아들을 빼앗기지 않고 반드시 자신이 키우겠다는 부성애의 발로였다. 처가 식구들도 양 타이룽의 이런 행동에 아버지가 아들을 유괴했다고 신고하기에는 좀 그렇기도 해서 포기했다.[11] 사실 도자기 닦기도 타이롱 입장에서는 자식교육 차원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양 웬리에게 강압적으로 명령하여 시킨 것도 아니고 함께 보내는 취미이자 일과에 가까웠으며, 양이 고미술품의 가치를 알게 되는 게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으니 고미술품 조기교육이었다고 생각해도 무리가 없다. 물론 대중적인 상식과는 거리가 멀다 보니 아동 학대로 보일만은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