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25 11:36:05

얀오베 발드네르

올림픽 탁구 남자 단식 우승자
파일:오륜기(여백X).svg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유남규
(1988)
파일:스웨덴 국기.svg 얀오베 발드네르
(1992)
파일:중국 국기.svg 류궈량
(1996)
파일:Jan-Ove_Waldner-709x483.jpg
<colbgcolor=#131230> 이름 <colbgcolor=#ffffff,#191919> 얀오베 발드네르(Jan-Ove Waldner)[1]
국적 스웨덴파일:스웨덴 국기.svg
출생 1965년 10월 3일([age(1965-10-03)]세)
스웨덴 스톡홀름
종목 탁구
신체 179cm, 82kg
전형 오른손 / 쉐이크핸드 올라운드
특기 드라이브
별명 테이블 위의 녹색 여우[2]
스웨덴의 탁구 영웅
현대 탁구계의 거인
1. 개요2. 평가3. 선수 경력4. 플레이 스타일5. 수상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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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웨덴의 전 남자 탁구 선수. 탁구에서 처음으로 그랜드슬램[3]을 달성한 선수이다. 현재까지 유일한 넌차이니즈 그랜드슬래머로 남아있다.

2. 평가

스웨덴의 전설적인 탁구로 선수 국내의 탁구 팬 뿐만 아닌 전세계의 탁구 팬들이 알고 있는 세계적인 선수이다. 2004 아테네 올림픽에도 출전하여 국내에도 그의 경기가 중계된 적 있다. 전성기에서 내려와 노장의 길을 걷던 그를 아테네 올림픽 탁구 4강전[4] 당시 해설자가 소개하기를 "중국 탁구가 지배하기 전까지 왕좌를 지키던 선수이다. 또한 현재의 중국 탁구에 도전 가능한 유일한 서양인 선수"로 소개될 정도로 실력이 출중한 선수였다.

탁구선수로서 매우 꾸준히 활동한 선수 중 한 명이다.[5] 단순히 눈에 보이는 년도로만 계산해 봐도 엄청난데, 1989년에 세계선수권 단식 우승을 한 양반이 11년 이후인 2000년 세계선수권 단체전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그것도 결승전은 류궈량과 쿵링후이가 있던 중국을 상대로. 2002년에까지 세계랭킹 TOP 10안, 최고 7위까지 올라갔고 2004년에는 올림픽 4강에 진출했다. 이 올림픽에서 발트너가 꺾은 선수들인 마린과 티모볼은 발트너의 전성기 시절 자주 맞붙었던 류궈량과 외르크 로스코프의 제자들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고 발드네르는 프로 데뷔 후 29년이 지난 2010년에 1982년생 선수인 파 게렐을 상대로 커리어 통산 9번째 스웨덴선수권 우승을 차지했다.

3. 선수 경력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얀오베 발드네르/선수 경력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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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플레이 스타일

<colbgcolor=#ffffff,#191919>
발트너 하이라이트 영상

쉐이크핸드 플레이어로서 훌륭한 방어와 동시에 매우 영리하면서도 강력한 공격으로 상대를 공략하는 스타일이다. 탁월한 볼 감각, 빠른 동체 시력과 민첩함이 합쳐져서 아주 쉽고 간단하게 상대의 공격을 막아내어 "진짜 고수" 느낌이 나는 스타일을 가졌다. 아주 쉽게 간단하게 득점하고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다시 경기에 임해서 더욱 멋이 나는 선수이다. 하이라이트 영상을 보면 발드네르는 가만히 있는데 상대방은 좌로 우로 열심히 뛰어다니다가 결국 실점하는 걸 볼 수 있다. 득점을 한 뒤에 기합소리 한 번 내지 않는 것도 볼 수 있다. 상대에게 특정 기술을 강요한 후 특유의 블로킹과 푸쉬로 적을 농락하는 플레이는 보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발드네르 하이라이트에서 빠지지 않는 명장면. 이런 류의 플레이를 가장 자주 성공시킨 게 발드네르이기도 하다.

강하고 변칙적인 포핸드로도 유명하다. 상황에 따라 구질과 코스를 적절히 선택해서 조절하는데 능했다. 발드네르가 세계대회를 제패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서브와 포핸드 드라이브가 너무 뛰어나서가 컸다. 높은 타점에서 나오고 체중이 실려 막기가 쉽지 않은 발드네르의 포핸드 공격은 그의 세계 최고 수준의 서브[6]와 최고의 탁구 지능과 결합되어 수많은 상대 선수들을 난감하게 만들었다. 멘탈과 순간판단능력 면에서도 매우 뛰어난 모습을 보였다. 기본적으로 경기 중에 정신적으로 잘 흔들리는 편이 아니였다. 또한 자신의 판단과 플레이에 망설임이 없고 확신에 차있었으며, 빠르게 판단을 내리고 그것을 정확히 시행해내는 선수였다. 또한 상대방에 대해 미리 연구를 많이 하고 질 수 있는 경우의 수를 따지고 나서 게임에 들어간다고 한다. 본인이 스스로 평가하기를 발트너는 자신의 최대 강점을 "게임을 읽는 능력" 이라고 밝혔고, 전술(Tactics) 면에선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반면 자신의 최대 약점은 백핸드 플릭 능력과 백핸드 공격력이라고 한다.

요약하자면 공격과 수비와 탁구지능이 고루 뛰어난데 서브도 답이 없고, 교묘히 상대의 심리와 약점을 이용하는 플레이를 하면서 본인은 경기 내내 침착함을 유지해 얄밉기까지 한, 그야말로 상대하기 상당히 골치아픈 선수였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발트너하면 창의적이고 재치있는 플레이들이 가장 먼저 떠오르지만 그의 탁구는 정석적으로도 매우 훌륭했다. 시간이 많이 흘러 발트너의 전성기 시절인 80~90년대의 탁구와는 거의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백핸드 기술의 발전이 많이 이루어진 지금이지만, 이전의 서브&포핸드 중심의 밸런스형 쉐이크핸드의 대표주자는 발트너였다.[7] 좋은 경기력 뿐만이 아니라 그에 더해진 기발한 플레이와 특유의 단정한 몸가짐과 쇼맨십으로 시청자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탁구를 세계에 더 알린 선수가 발트너였다.

5. 수상 기록

탁구의 그랜드슬램(올림픽, 세계선수권, 월드컵)을 세운 5명의 남자 선수[8] 중 유일한 비중국인 선수다. 여담으로 발드네르는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다른 2명의 중국인 류궈량쿵링후이를 상대로 전적이 더 우월하다.
올림픽
<colcolor#222> 금메달 <colbgcolor=#ffffff,#191919> 1992 바르셀로나 <colbgcolor=#ffffff,#191919> 단식
은메달 2000 시드니 단식
세계선수권
금메달 1989 도르트문트 단체전[9]
금메달 1989 도르트문트 단식
금메달 1991 지바 단체전
금메달 1993 예테보리 단체전
금메달 1997 맨체스터 단식[10]
금메달 2000 쿠알라룸푸르 단체전
은메달 1983 도쿄 단체전
은메달 1985 예테보리 단체전
은메달 1987 뉴델리 단체전
은메달 1987 뉴델리 단식
은메달 1991 지바 단식
은메달 1995 톈진 단체전
은메달 1997 맨체스터 남자 복식
동메달 1993 예테보리 단식
동메달 1999 에인트호번 단식
동메달 2001 오사카 단체전
유럽선수권
금메달 1982 부다페스트 단식
금메달 1986 프라하 단체전
금메달 1986 프라하 단식
금메달 1988 파리 단체전
금메달 1988 파리 남자 복식
금메달 1990 예테보리 단체전
금메달 1992 슈투트가르트 단체전
금메달 1996 브라티슬라바 단체전
금메달 1996 브라티슬라바 혼합 복식
금메달 1996 브라티슬라바 남자 복식
금메달 2002 자그레브 단체전
은메달 1984 모스크바 남자 복식
은메달 1994 버밍엄 단체전
은메달 1994 버밍엄 단식
동메달 1984 모스크바 단체전
동메달 1984 모스크바 남자 복식
동메달 1998 에인트호번 단체전
동메달 2000 브레멘 단식
월드컵(단식)
금메달 1990 지바 단식
은메달 1983 바르바도스 단식
은메달 1996 님스 단식
동메달 1991 바르셀로나 단식
월드컵(단체전)
금메달 1990 치바 단체전
은메달 1991 쿠알라룸푸르 단체전
은메달 1994 님스 단체전


[1] 한국 탁구 팬들에게는 발트너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위키를 제외하면 발드네르라는 이름보다는 발트너로 표기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2] 단순히 강력하거나 빠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매우 기발하고 영리한 플레이를 해서 붙은 별명이다.[3] 올림픽, 세계선수권, 월드컵을 모두 우승하는 것[4] 상대는 유승민 선수였다.[5] 발트너와 비슷한 정도로 롱런한 선수는 같은 스웨덴 출신 동료인 요르겐 페르손, 벨라루스의 블라디미르 삼소노프, 크로아티아의 조란 프리모락, 벨기에의 장 미셸 세이브, 독일의 티모 볼 등이 있다.[6] 많은 탁구선수들이 발드네르의 서브는 심하게 변칙적이고 박자도 부정확해서 엄청나게 까다롭고, 아예 서브가 보이지도 않고 모션이 좋아서 어떤 서브인지 구분하는 것 조차 힘들었다고 한다. 다만 발드네르의 전성기 시절은 Free Arm 으로 공을 가리는 게 허용이 되던 시절이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룰이 바뀐 이후엔 메이저대회 우승은 해내지 못했다. 그렇다고 룰이 바뀌자마자 발트너의 클라스가 떨어진 건 아니고 룰이 개정된 이후에도 그럭저럭 훌륭한 경기력을 선보였다. 룰이 개정될 당시 발트너의 나이는 이미 37세였던 것도 감안해야 한다. 애초에 룰이 개정되기 전인 옛 시절엔 모두가 다 가릴 수 있었기 때문에 치사함 같은 부분은 없고 모두가 같은 조건이었다고 볼 수 있다. 지나치게 얄미워서 문제.[7] 지금 와서 보면 발트너의 탁구도 옛날 탁구일 수 있으나 80년대 당시엔 그의 천재성과 탁구 스타일은 분명 시대를 앞서갔던 게 사실이다. 특히 서브를 넣을 때의 그립, 서브를 넣는 방법과 훼이크를 주는 방식, 포핸드 서브 이후의 시스템, 서브 리시브 등, 현대 탁구에서 굉장히 비중이 큰 중요한 부분들의 개념 등을 더욱 발전시킨 선수가 발트너였다. (정작 발트너 본인은 서브와 리시브 심화 개념을 중국 유학 시절 때 배워왔다고 한다.) 물론 발트너만 서브 훼이크 같은 기술들을 사용한 건 아니지만, 이러한 부분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받은 게 발트너였고, 많은 탁구인들이 그를 따라하기 시작했다. 정점을 찍은 선수는 세계적으로 모두의 타겟이 되는 건 기본이고, 그 선수에 대한 대처법 연구와 특징 분석, 모방이 수도 없이 많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온갖 기록을 갈아치우면서 이제는 현 시대 최강을 넘어 역대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는 마룽도 본인 입으로 자국 코치들과 선수들을 제외하면 자신이 가장 배움을 많이 얻었던 선수가 발트너였다고 밝혔다. 실제로 이 둘은 서브와 포핸드 공격 스타일, 백핸드 드라이브 모션 등 전체적인 플레이스타일 상 비슷한 점이 꽤 많다. 마룽의 플레이는 발드네르의 장점을 흡수하고 운동능력까지 극도로 끌어올린 탁구 기계쪽에 더 가깝다.[8] 다른 선수는 중국의 류궈량, 쿵링후이, 장지커, 마룽이다.[9] 당시 최강국 중국을 상대로 5:0으로 이겼다.[10] 한 세트도 내주지 않고 우승했다고 한다. 당시 상대인 조란 프리모라츠, 장-필리프 가티앙, 블라디미르 삼소노프 등이 10위권 내 선수들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한 세트도 내주지 않았다는 것은 대단한 기록이다. 또한 전설의 21:0 경기도 이 대회에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