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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로스 1세 Ἀλέξανδρος Α' | |
생몰년도 | 기원전 370년 ~ 기원전 331년 |
출생지 | 그리스 에페이로스 |
사망지 | 이탈리아 루카니아 |
지위 | 에페이로스 왕 |
국가 | 에페이로스 왕국 |
가족 | 네오프톨레모스 1세(아버지) 올림피아스(누이) 트로아스(누이) 클레오파트라(아내) 네오프톨레모스 2세(아들) 카드메이아(딸) |
에페이로스의 왕 | |
재위 | 기원전 343년 ~ 기원전 331년 |
전임 | 아리바스 |
후임 | 아이아키데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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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에페이로스 왕국 6대 국왕.2. 생애
에페이로스 왕국(당시엔 몰로시아 왕국) 4대 국왕 네오프톨레모스 1세의 아들이다. 누이로 올림피아스, 트로아스가 있었다. 올림피아스가 마케도니아 왕국의 군주 필리포스 2세에게 결혼한 후, 필리포스 2세의 두터운 지원에 힘입어 기원전 350년 삼촌 아리바스와 공동 왕이 되었고, 기원전 343년 정변을 일으켜 아리바스를 폐위시키고 단독 군주가 되었다.기록이 부족해서 확실하지 않지만, 그의 시대부터 '에페이로스 왕국'이란 명칭이 쓰인 걸 볼 때 몰로시아 영내에 국한되었던 왕국을 에페이로스 전역으로 확장하고 여러 부족을 복종시킨 것으로 추정된다. 기원전 337년 올림피아스가 아들 알렉산드로스 3세와 함께 마케도니아 왕국을 탈출했을 때 궁정으로 데려왔다. 올림피아스는 그에게 필리포스 2세를 공격하라고 강력히 권했지만, 그는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았다.
기원전 336년, 올림피아스와 알렉산드로스 3세가 필리포스 2세와 화해하여 마케도니아로 귀환했다. 이때 필리포스 2세는 올림피아스의 딸인 클레오파트라와 그를 결혼시켜 에페이로스 왕국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기로 했다. 그는 이에 응하여 클레오파트라를 아내로 맞이했지만, 필리포스 2세는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경호원을 맡던 오레스테스의 파우사니아스에게 암살당했다.
기원전 334년, 삼니움의 침략에 시달리고 있던 남부 이탈리아의 그리스 도시국가들이 구원을 요청했다. 그는 이 기회에 남부 이탈리아에 영향력을 확대하기로 하고 아드리아 해를 건너 남부 이탈리아로 진군했다. 삼니움족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뒤, 그는 루키니아와 브레티아 족으로 눈길을 돌려 헤라클레아 시를 공략하고 해적들의 항구 도시 역사를 하던 시폰툼을 점령하고 뒤이어 콘센티아와 티레나를 공략했다. 이때 300가구를 에페이로스에 인질로 보냈고 무수한 적을 섬멸했다. 당시 중부 이탈리아에서 강력한 세력으로 부상하고 있던 로마 공화국은 이에 위협을 느껴 그에게 평화 협약을 제의하기도 했다.
티투스 리비우스 파타비누스에 따르면, 그는 도도나 신전에서 "판도시아 시와 아케로스 강을 조심하라"는 신탁을 받았다. 그는 이 신탁이 에페이로스에 있는 판도시아 시와 아케론 강 계곡을 가리킨다고 여기고, 그곳만 조심하면 된다고 여겼다. 그 후 남부 이탈리아에서 패권을 장악하는 듯했던 기원전 331년, 판도시아라는 마을에서 루카니아인들의 기습 공격을 받았다. 그는 용감히 싸워서 적 지휘관을 죽였지만, 수적 열세에 몰리자 강가로 후퇴했다. 부하들이 강을 건너고 있을 때, 한 사람이 이 강의 이름이 아케론이라고 언급했다. 그 순간 신탁을 떠올린 그는 강을 건너기를 망설였다. 그러다가 루카니아인들이 접근해오자, 그는 물 속으로 뛰어들었으나 뒤이은 투창 세례에 결국 목숨을 잃었다.
그의 시신은 절단되어 심하게 훼손되었다가, 에페이로스에 끌려간 친척이 있던 한 여인에 의해 수습되어 에페이로스로 돌려보냈다. 그는 클레오파트라 사이에서 아들 네오프톨레모스 2세와 딸 카드메이아를 두었는데, 두 자식 모두 어렸기에 클레오파트라가 장례식을 주관했다. 이후 클레오파트라가 잠시 국정을 맡았다가 동방 원정을 떠난 알렉산드로스 3세를 대신하여 마케도니아를 대리 통치하고 있던 안티파트로스의 궁정으로 자식들과 함께 향했고, 아리바스의 아들 아이아키데스가 새 군주로 등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