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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피아스 2세 Ὀλυμπιάς | |
생몰년도 | 미상 ~ 미상 |
출생지 | 그리스 에페이로스 |
사망지 | 미상 |
지위 | 에페이로스 섭정 |
국가 | 에페이로스 왕국 |
가족 | 피로스 1세(아버지) 안티고네(어머니) 알렉산드로스 2세(이복 형제이자 남편) 프톨레마이오스(이복 형제) 헬레노스(이복 형제) 피로스 2세(아들) 프톨레마이오스(아들) 프티아(딸) |
에페이로스의 섭정 | |
재위 | 기원전 242년 ~ 미상 |
전임 | 알렉산드로스 2세(국왕) |
후임 | 피로스 2세(국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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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에페이로스 왕국의 왕비이자 섭정. 전대에 필리포스 2세의 아내이자 알렉산드로스 3세의 어머니인 올림피아스가 있었기 때문에 구별을 위해 '올림피아스 2세'로 일컬어졌다.2. 생애
에페이로스 왕국 11, 13대 국왕 피로스 1세와 프톨레마이오스 1세의 딸 안티고네의 딸이다. 이복 형제로 알렉산드로스 2세, 프톨레마이오스, 헬레노스가 있었다. 나중에 알렉산드로스 2세와 결혼하여 피로스 2세, 프톨레마이오스, 프티아를 낳았다.기원전 242년경 알렉산드로스 2세가 사망했을 때, 두 아들 피로스 2세, 프톨레마이오스는 아직 어린 아이였다. 그래서 그녀가 섭정 여군(女君)으로서 국정을 맡았다. 기원전 240년, 그동안 마케도니아 왕국의 부추김으로 서로 싸우던 아이톨리아 동맹과 아카이아 동맹이 평화협약을 맺었다. 두 동맹은 곧 마케도니아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마케도니아 왕 데메트리오스 2세 아이톨리코스는 두 동맹과 전면전을 벌이기 앞서 에페이로스 왕국과 평화 협약을 맺고 싶었다. 그녀 역시 불안정한 왕권을 다지려면 평화가 필요했다.
이에 따라, 그녀는 알렉산드로스 2세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 프티아를 데메트리오스 2세에게 시집보냈다. 그런데 데메트리오스 2세는 이보다 앞서 셀레우코스 2세의 이모 스트라토니케와 결혼했다. 데메트리오스 2세는 스트라토니케와 이혼을 강행하고 프티아와 결혼했다. 스트라토니케는 이에 분노하여 조카 셀레우코스 2세에게 마케도니아 왕국과 전쟁을 벌이도록 부추겼으나 셀레우코스가 불응하면서 무위에 그쳤다. 스트라토니케는 이에 불만을 품고 셀레우코스 2세가 안티오키아를 떠나 있을 때 반란을 일으켰지만 셀레우코스가 돌아오자 도시에서 쫓겨나 셀레우키아로 피신했다가 거기서 포로로 잡힌 뒤 곧 죽었다.
유스티누스에 따르면, 마케도니아와 결혼 동맹을 맺으면서 왕권을 굳건히 한 그녀는 두 아들 피로스 2세와 프톨레마이오스가 성년이 되었을 때 통치에서 물러났다.[1] 그러나 프톨레마이오스는 기원전 234년에 사망했고, 피로스 2세 역시 기원전 234년 이전 또는 직후에 사망했다. 그녀는 두 아들의 잇따른 죽음에 슬퍼하다가 사망했고, 왕위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아들 피로스 3세에게 넘어갔다.
아테나이오스에 따르면, 그녀는 피로스 2세가 총애하던 티그리스라는 이름의 루카니아 여인을 독살했다. 이에 분노한 피로스 2세는 그녀를 독살했다고 한다. 하지만 학자들은 이 이야기의 신빙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
[1] 기록이 미비해서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