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1-21 18:30:02

안중달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안중달
安重達[1]이라고 표기한 기록도 있다.]
파일:안중달.jpg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출생 1924년 10월 2일[2]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가암리[3]
사망 1968년 1월 22일[4] (향년 43세)
경상북도 대구시 (현 대구광역시)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5묘역-65호
본관 순흥 안씨[5]
효직(孝直)
벽파(碧坡)
상훈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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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독립유공자.

2. 생애

1924년 10월 2일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가암리에서 아버지 안지용(安止容, 1908.7.10. ~ 1958.12.13.)[6]과 어머니 벽진 이씨(1906.12.21. ~ ?)[7] 사이에서 3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44년 8월 학도 특별지원병 제도에 의해 일본 제국 육군에 강제 징집되어 중화민국 전선으로 차출되었으며, 최전선인 후난성·장시성 방면으로 향하던 도중 1945년 1월 탈영하였다. 얼마 뒤 국민혁명군 유격대에 투항하여 억류되어 있다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중국국민당의 합의 결과에 따라 국민혁명군 내 조선인 군인과 일본 제국 육군 포로에 속한 조선인 징집병이 함께 한국광복군 측에 인도될 때 함께 인도되었다. 이어 1945년 1월 15일 한국광복군 제1지대에 정식으로 입대하여 본부대 대원으로서 제1지대 대원의 보급품 확보 및 교육훈련 보조, 전선의 공작활동에 대한 감독 및 지원을 맡아 보았다.

8.15 광복 후 국민혁명군을 도와 중화민국 관내 일본군무장해제 작업, 관할 내 치안 유지, 조선인들의 신변 보호, 귀국 절차 지원·보호를 담당하였고, 1946년 들어 제2차 국공내전이 발발하자 귀국하였다. 귀국 후에는 교육계에 투신하여 고향 인근의 벽진국민학교(현 벽진초등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였다.[8]

1968년 1월 22일 경상북도 대구시[9]에서 사망했다.

1982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받아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유해는 당초 성주군 벽진면 가암리 관동마을에 안장되었으나 2015년 1월 26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5묘역에 이장되었다.

[1] [2] 음력 9월 4일.[3] 순흥 안씨 집성촌이다. 독립유공자 안해용도 이 마을 출신이다.[4] 음력 1967년 12월 23일.[5] 양공공파(良恭公派)-사직공파(司直公派) 26세 중(重) 항렬.[6] 자는 정약(定若).[7] 이승오(李承五)의 딸이다.[8] 교사 재직 시절인 1950년 5월 31일 광복 후 5회 졸업생들과 함께 교내에 '대한독립기념비(大韓獨立記念碑)'를 세웠다. 이 비석은 얼마 후에 발발한 6.25 전쟁 중에 파괴되었다가 뒤에 다시 세워졌다.[9] 대구광역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