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colbgcolor=#0047a0> 출생 | 1924년 10월 2일[2] |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가암리[3] | |
사망 | 1968년 1월 22일[4] (향년 43세) |
경상북도 대구시 (현 대구광역시) | |
묘소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5묘역-65호 |
본관 | 순흥 안씨[5] |
자 | 효직(孝直) |
호 | 벽파(碧坡) |
상훈 |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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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2. 생애
1924년 10월 2일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가암리에서 아버지 안지용(安止容, 1908.7.10. ~ 1958.12.13.)[6]과 어머니 벽진 이씨(1906.12.21. ~ ?)[7] 사이에서 3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1944년 8월 학도 특별지원병 제도에 의해 일본 제국 육군에 강제 징집되어 중화민국 전선으로 차출되었으며, 최전선인 후난성·장시성 방면으로 향하던 도중 1945년 1월 탈영하였다. 얼마 뒤 국민혁명군 유격대에 투항하여 억류되어 있다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중국국민당의 합의 결과에 따라 국민혁명군 내 조선인 군인과 일본 제국 육군 포로에 속한 조선인 징집병이 함께 한국광복군 측에 인도될 때 함께 인도되었다. 이어 1945년 1월 15일 한국광복군 제1지대에 정식으로 입대하여 본부대 대원으로서 제1지대 대원의 보급품 확보 및 교육훈련 보조, 전선의 공작활동에 대한 감독 및 지원을 맡아 보았다.
8.15 광복 후 국민혁명군을 도와 중화민국 관내 일본군의 무장해제 작업, 관할 내 치안 유지, 조선인들의 신변 보호, 귀국 절차 지원·보호를 담당하였고, 1946년 들어 제2차 국공내전이 발발하자 귀국하였다. 귀국 후에는 교육계에 투신하여 고향 인근의 벽진국민학교(현 벽진초등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였다.[8]
1968년 1월 22일 경상북도 대구시[9]에서 사망했다.
1982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받아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유해는 당초 성주군 벽진면 가암리 관동마을에 안장되었으나 2015년 1월 26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5묘역에 이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