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60c1c3><colcolor=#fff> 숭실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 안병욱 安秉煜 | Ahn Byung-wook | |
출생 | 1920년 6월 26일 |
평안남도 용강군 | |
사망 | 2013년 10월 7일 (향년 93세) |
서울특별시 용산구 청파동 | |
묘소 | 강원특별자치도 양구군 양구읍 동수리 시와 철학의집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본관 | 순흥 안씨 (順興 安氏) |
호 | 이당(怡堂) |
부모 | 아버지 안건익, 어머니 해주 김씨 |
형제자매 | 누나 안규영 |
배우자 | 김광심 |
자녀 | 장녀 안정남 장남 안동명[1] 차남 안동일[2] 삼남 안동규[3] |
종교 | 개신교 (장로회) |
학력 | 용강보통학교 (졸업) 평양고등보통학교 (졸업) 와세다대학 (철학 / 학사) 인하대학교 대학원 (문학 / 명예박사) |
경력 | 한국NGO지도자총연합 고문 도산아카데미연구원 대표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이사 도산아카데미 고문 흥사단 이사장 숭실대학교 명예교수 경기대학교 대학원 초빙교수 흥사단 공의회 회장 숭실대학교 철학과 교수 사상계 편집위원, 주간 |
상훈 | 국민훈장 모란장 (1985년 수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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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서양 철학자이자 대학 교수 출신의 수필 작가 겸 동양 한문학자이다.2. 생애
1920년 평안남도 용강의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일본 와세다대 문학부 철학과를 졸업하고 1985년 인하대에서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59년부터 1985년까지 숭실대학교 철학과 교수를 지냈으며 흥사단 이사장, 도산아카데미 고문,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이사 등을 두루 역임했다.이당은 일제강점기 시대와 한국전쟁, 4·19 혁명, 5·16 쿠데타 등 암울한 냉전 시대 속에서 수많은 저술과 강연을 통해 우리 사회의 인간성 상실과 가치관 혼란 등 위기를 극복하는 데 이바지했다. 특히 심오하고 어려운 이론철학, 개념철학을 사랑철학, 생활철학, 행동철학으로 철학을 대중화하는 사회 계몽운동에 커다란 업적을 남겼다.
중학시절인 16세 때 춘원 이광수의 '무정'과 '흙'을 읽고 감명을 받은 이당은 춘원 이광수에게 편지를 보낸 것이 계기가 돼 춘원과 인연을 맺었다. 춘원의 권유에 따라 도산 안창호가 창립한 민족운동단체 '흥사단'에 가입한 이당은 흥사단 '청년 아카데미' 활동을 하면서 젊은이들에게 도산 안창호의 사상을 전파하는데 진력해 왔다. 전국의 대학생들을 상대로 한 순회 강연장에는 수많은 학생으로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저서마다 도산의 '무실역행(務實力行)', '경천애인(敬天愛人)', '부국강민(富國强民)' 등의 얘기가 수없이 발견된다.
도산 사상을 전국에 널리 알리 이당은 한편으로는 1958-1964년 월간 '사상계' 주간을 맡아 자유 언론 투쟁에도 앞장섰다. 이당은 자신의 인생에 대해 얘기할 때마다 일생 한 가지 일을 해왔다는 '일생일업(一生一業)', 하나의 길만을 걸어왔다는 '일생일로(一生一路)'를 내세웠다. 평생 교육자로서 후학을 양성하고 동시에 도산의 말씀과 사상을 전파하는데 힘써온 이당의 인생을 함축한 말이다.
이와같은 공로를 통해 이당은 국민훈장 모란장(1985)과 인제인성대상(2007), 유일한상(2009) 등을 받았다. 또한 '현대사상', '철학노트', '사색인의 향연', '행복의 미학', '도산사상',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 '인생론', '사람답게 사는 길' 등 50여 권에 달하는 저서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