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7:34:09

아토스(삼총사)



1. 개요2. 작중 행적3. 여담

1. 개요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삼총사의 리더인 인물로 통솔력이 뛰어나고 언변이 좋으며, 전략적, 전술적 안목까지 갖췄다. 칼솜씨와 총솜씨는 기본 옵션. 트레이드마크는 귀족 풍이 물씬나는 콧수염. 달타냥과 마찬가지로 실존인물인 아르망 다토스를 모티브로 했는데, 다토스의 철자를 살펴보면 "d'Athos"로 여기에서 이름의 출처를 확인할 수 있다.[1]

2. 작중 행적

이 사람도 다른 삼총사들처럼 달타냥과의 첫 인상은 가히 좋지 못했는데, 달타냥의 면접 전날, 총사대와 시비가 붙어서 칼부림을 한 끝에 심한 부상을 입었던 그 어깨에 달타냥이 부딪쳤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때 달타냥은 로슈포르를 보고 눈이 뒤집혀서 트레빌의 말도 듣지 않고 뛰쳐나가던 중이라서 사과도 대충대충... 그렇지만 그가 트레빌을 만난 것을 알고 있던 아토스는 "당신이 트레빌 대장하고 무슨 인연이 있는지는 몰라도 그딴 식으로 사람을 대충 대하면 안되지. 예의라는 걸 모르는 친구로군?"라며 시비를 걸었고, 결국 결투 약속을 잡게 된다. 그래도 아픔과 화가 가라앉은 뒤에는 결투 하기 전에는 나름대로 달타냥을 배려했으며, 이후엔 달타냥에게는 아버지 같은 존재가 되어 조언도 해주고,[2] 하인도 딸려주는 등 그에게 여러모로 도움을 주기도 한다.

그의 지략이 빛을 발했을 때가 안느 왕비의 목걸이를 둘러싼 활극인데, 추기경의 음모를 거꾸로 이용해서 추기경을 골탕먹이기도 하고,[3] 함정에 걸리자 애꿎은 여관 한 곳을 완전히 파산시켜버리고선 뻔뻔하게 갈 길을 나서기도 한다.[4]

하지만 귀족 특유의 품행에 때때로 음침한 분위기를 흘리면서도 과거에 대해서는 거의 입을 열지 않아서 아라미스, 포르토스를 비롯한 총사대 대원들 사이에서는 '뭔가 있다'는 소문만 무성할 뿐. 그러다가 달타냥이 밀라디와 얽히면서 그가 끼고 있는 반지를 알아보고, 비로소 달타냥에게만 자신의 과거를 말해주게 된다. 원래 그는 대단한 명망가 출신의 지방 영주 "라 페르 백작"이었으며, 품행이 단정한 여인과 결혼했으나 어느날 벌어진 사고로 자신의 부인이 흉악범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분노에 차서 그녀를 처형하고 실의와 절망에 빠져 영지를 버리고 파리로 흘러들어오게 된 것이다.[5] 즉 밀라디의 옛 남편이며, 그녀는 당시 운 좋게도 죽지 않고 살아났던 것이다. 따라서 그녀의 본성을 아주 잘 알고 있었기에 달타냥에게 밀라디를 조심하라고 거듭거듭 경고해준다.

3. 여담

그의 지위인 "라 페르 백작"에 관하여 크게 2가지 오해가 존재하는데, 하나는 그가 중소영주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역으로 아주 대단한 권세가라는 것이다.

작중에서 이 부분에 대해서 따로 설명해 주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그냥 그럭저럭 명망과 재산이 있는 지방 영주 출신이었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으나, 실상 이놈은 무지막지한 명문가의 당주다. 작중에서 아토스는 자신이 '사법권을 가진 라 페르 백작'(Comte de la Fère)이라고 말한다든가 자신의 부인에게 배신당했을 때 자신이 영주이므로 자신의 영지에서는 재판권을 가지기에 부인을 목 매달았다고 이야기하는 등 거듭해서 자기 영지 내에서 사법권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려준다. 그런데 프랑스 왕실은 제후들을 제압하고 왕국을 통합하는 과정에서 여러 권한을 회수하였는데, 특히 고등법원을 설치하여 사법권을 중앙으로 집중시켰다. 따라서 이는 곧 아토스의 가문이 중세 초기 카페 왕조 시기부터 수백년에 걸쳐 페르라는 지방의 영주 자리를 지켜왔고, 발루아~부르봉 왕조 시기까지도 중세적 귀족의 특권을 유지한 초 명문이라는 의미다. 아토스는 왕국법원의 재판관으로서 국왕의 권위에 기대어 관할구역의 사법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봉건적 백작이라서 자기 영지의 사법권이 있는 것이다. 즉, '불수불입권'을 지녔다는 뜻이다. 봉건제가 이미 다 해체되어가던 그 시절에 여전히 봉건적 특권을 누린다는 것이니, 농담이 아니라 가문의 격과 역사로만 따지면 어지간한 후대의 왕조들 못지 않은 명문가라고 봐야 한다.

다만, 이에 대해 "보통 이 정도로 힘을 가진 가문이면 진작에 공작이나 후작을 칭하고 왕가로부터 완전히 독립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는데 이 가문은 그런 거 없이 백작가로 남아서 프랑스 왕가에 충성심을 보인 것이다. 이 정도 내력이면 사실 왕가에서도 함부로 하기 어렵다."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완전히 중세 프랑스사에 대한 무지와 잘못된 이해로, 판타지 소설 등에서 흔히 사용되는 설정과 현실의 역사를 구별하지 못하는 것이다. 초기 프랑스 왕국은 미약한 왕권과 각 제후의 독립성 탓에 늘상 유력 영역제후들의 위협에 시달려야 했다. 카페 왕조의 초대 국왕인 위그 카페부터가 대주교와 대제후들이 선출한 존재라서 교묘하게 공동왕을 빙자한 세습제를 도입하지 못했다면 신성 로마 제국처럼 계속 선거군주제가 되었을 뻔했으며, 이후로도 오랜 기간 왕국 대부분을 유력 제후들과 기타 군소 영주들이 점유하고 있었다.[6] 그래서 중세 프랑스 정치사는 카페 왕조 이래 꾸준히 왕권과 중앙집권을 강화시켜온 과정이었다. 그 과정에서 마침 수입이 좋은 왕령지를 잘 경영하여 조금씩 주변 영지를 사들이고, 틈을 보아 적절한 명분과 정치상황을 노려 전쟁이나 사법행위로 박탈하고, 때로는 음모를 꾸며서까지 봉신들을 제압해나갔다.[7] 요컨대 오히려 그런 짓을 안 했으니 중세를 지나 근세가 밝아오는 루이 13세 시대까지도 가문의 권리와 위세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독립을 시도한다거나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왕권에 저항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작게는 사법권과 같은 영주의 권리를 빼앗기는 일에서 크게는 영지를 몰수당하고 멸문까지 당하는 일을 겪었을 것이 불보듯 뻔했다.

게다가 "공작이나 후작을 칭한다."라고 하는 것은 유럽의 작위 개념을 무조건 '공작이 뭐든 가장 높고, 그 아래가 차례로 후백자남'이라고 등수매기는 방식인데, 이러한 이해 역시 부정확한 것이다. 관련 문서들에서 설명하듯, 유럽의 "Title"(작위)과 "Feudalism"을 주나라의 "오등작"과 "봉건제"로 번역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기존 어휘 중 그나마 비슷한 것을 찾아서 옮기는 것으로, 두 개념은 서로 정확히 대응하는 개념이 아니다. 권위와 권력은 별개의 것이었고, 백작 이상부터는 작위의 격 자체보다는 실제 영지의 힘이 더 중요했다. 도리어 영지의 힘이 강하고 적절한 명분만 있다면 자연스럽게 더 격이 높은 칭호를 주장하고 받아들이게 할 수 있었다.[8] 따라서 그보다는, '①아토스의 라 페르 영주가문이 아마도 중세 초기에 백작(comte)의 작위를 인정받은 후 부르봉 왕조 시대까지 그 작위를 유지하면서도 다른 작위나 칭호를 더 받지 못하고 라 페르의 백작(영주)에 머물러있었고, ②이는 왕가에 반항하는 모습은 보여주지 않았지만, 특별히 비위를 맞추는 모습도 보여주지 않으면서 가만히 지방의 영지만 다스리고 있던 덕에 별 부침 없이 작위와 권리를 유지하고 있었던 고풍스럽고 유복한 귀족가문이기 때문이다.'라고 추정하는 쪽이 더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1] 여기서의 "d'"는 "de"의 단축형으로 '~~의 (출신)'이라는 이름의 전치사이며, 연음으로 읽는다. 같은 작품에 등장하는 달타냥 역시 이름을 살펴보면 "d'Artagnan"으로 "아르타냥의 샤를"이 되며, 잔 다르크 역시 "아르크의 잔"이라는 뜻이다.[2] 그중 하나는 "여자와 충성 둘 중에 택일하라면 여자를 택하게나"였다.[3] 추기경의 부하들이 "너 달타냥이지?"라고 하자 가타부타 말도 안하고 순순히 바스티유로 끌려갔다. 그리고 이 사실을 알게 된 트레빌은 추기경을 신나게 까는 데 매우 유용하게 써먹었다. 제대로 망신당한 추기경의 책략에 제동이 걸린 건 덤이다.[4] 추기경의 함정에 걸려서 여긴 내게 맡기고 앞으로를 시전한 뒤, 추기경의 부하들을 개발살낸 다음 냅다 창고에 짱박혀서 술이고 햄이고 몽땅 거덜내면서 먹고마시고 자는 깽판을 부리고 있었다. 판본에 따라서는 손해를 배상해주기도 하지만, 원본에서는 그딴 거 없이 "우리 볼 일은 끝났으니 알아서 해라"면서 떠나버렸다. 다만 다른 동료들이 발목 잡힌 여관과 달리 여긴 처음부터 삼총사 일행을 속여먹으려 들던 놈들이었다.[5] 이 장면에서 아토스의 가문이 몰락했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있으나, 그건 아니다. 작품 후반 겨우 정신을 차린 아토스가 자신의 영지로 돌아가는 장면이 나온다. 애초에 아무리 요녀라도 딱히 대귀족도 아닌 밀라디 따위에게 몰락할 정도면 이 가문이 어떻게 중세 프랑스의 역사적 풍파를 버텨냈겠는가? 그냥 빡쳐서 가출한 거라고 보면 된다. 영지는 대리인, 혹은 모친이나 형제가 있다면 그들이 대신 관리하면서 백작이 돌아올 날만 기다리고 있었을 듯. 작중에서 아토스가 돈이 없어 고생한 걸 보면, 집에서는 백작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있을 공산이 100%다.[6] 특히 강력한 12인의 제후를 가리켜 "샤를마뉴의 12동료"(Charlemagne's twelve peers)나 "열두 동료"(The Twelve Peers)라는 문학적 표현이 널리 쓰였다. 이들 중 잘 알려진 곳들은 노르망디 공국이나 부르고뉴 공국, 아키텐 공국, 랭스 대주교령, 플란데런 백국, 툴루즈 백국, 상파뉴 백국 등이 있다.[7] 가령 프랑스 왕실의 최대 경쟁자였던 플랜태저넷 왕조에 대한 필리프 2세의 권모술수가 유명하다. 그 외에도 필리프 2세 때 시작되어 그의 손자 루이 9세 때 결실은 맺은 알비 십자군툴루즈 백국의 몰락도 잘 알려져있다.[8] 일례로 노르망디 공국은 원래 루앙 백작에서 출발한 지위였으나, 국왕이 회유해야 할만큼 강력한 노르드 바이킹집단을 모태로 삼았던 까닭에 순식간에 영역을 확장하여 공작으로 승격하였다. 그런가 하면 남프랑스 일대에서는 수많은 실력자들이 불법적으로 성을 쌓거나 점거하고는 은근슬쩍 백작이나 남작, 성주 등을 '자칭'하며 툴루즈 백국을 비롯한 현지 유력제후들로부터 독립을 시도하기도 했고, 몇몇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앙주 백작처럼 일부 백작령에서는 백작의 가신인 자작이 그 자리를 찬탈하고 자신이 백작이 되기도 하였다. 프랑스 바깥 사례를 살피면, 밀라노 공국을 개국한 비스콘티 가문은 본디 이름 그대로 자작이었고, 근대에 신성로마제국 해체되었을 때 여러 영방들은 자기 국력에 따라 왕국부터 후국까지 그에 걸맞은 칭호를 국제적으로 승인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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