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 |
Auto Union 1000
1. 개요
독일의 자동차 브랜드였던 아우토 우니온에서 생산했던 준중형차.2. 상세
1950년대 아우토 우니온의 주력 승용차였던 데카베 3=6 라인업의 발전형으로서 이를 고급화한 차종이다. 3=6 라인업의 유선형 패스트백 바디와 서스펜션, 칼럼식 4단 수동변속기,[1] 세로배치 전륜구동 구동계를 물려받되 기존의 2행정 3기통 엔진이 896cc에서 981cc로 확장되었고, 최고출력도 사양에 따라 34~40마력(hp)에서 43마력(hp)으로 소폭 증가했다. 모델명의 1000은 엔진의 배기량에서 따 왔다.외형상으로는 후미부를 매끄럽게 다듬어 트렁크의 은색 트림 네 줄을 제거하고 후미등도 은색 트림으로 감싼 작은 후미등으로 변경, 여기에 기존의 데카베 엠블럼을 아우토 우니온의 4개 고리형 로고로 변경하는 변화가 있었다. 나아가 기존의 2도어 및 4도어 세단, 3도어 스테이션 왜건인 1000 유니버설(Universal)으로 구성된 바디 라인업에 B필러를 제거한 2도어 하드탑이 합류했다.
생산은 서독 뒤셀도르프에 위치한 라인메탈 계열 공장에서 이루어졌으며, 메르세데스-벤츠가 아우토 우니온을 인수한 후에는 이를 벤츠 상용차 공장으로 개편하면서 1000의 생산라인도 잉골슈타트의 신축공장으로 이관했다.
- 1957년 말에 1958년형(AU1000/58)으로 처음 발매되었을 당시에는 43마력 엔진을 얹은 쿠페 딜럭스(Coupe De Luxe) 사양만 판매되었으며, 나머지는 데카베 3=6 라인업으로 계속 판매되었다. 1958년에는 이에 기반하는 현대적인 2도어 스포츠카인 아우토 우니온 1000 Sp가 출시되었다.
- 1959년 7월 27일부터 뒤셀도르프 공장에서 생산되어 동년 8월부터 1960년형으로 판매된 2기형(AU1000/60)은 2도어 쿠페에 한해 미국차의 디자인을 따라 랩어라운드식 앞유리와 일자형 속도계를 적용했다. 이때부터 스테이션 왜건이 1000 유니버설이라는 이름으로 라인업에 합류했으며, 세단과 쿠페는 1000S라는 이름이 붙었다. 파워트레인도 업데이트가 이루어져 49마력(hp)의 최고출력을 기록했다. 1960년부터는 아르헨티나 산타페의 IASF(Industrias Automotriz de Santa Fe)가 현지생산을 시작, 1970년까지 지속했다.
- 3기형(AU1000/62)은 1961년 9월 29일부터 생산되어 1962년형으로 판매되었으며 전륜 디스크브레이크, 두 바퀴 간의 폭을 넓힌 후륜 차축, 트렁크 용량 확장과 자동식 윤활 시스템 "Lubrimat"[2]의 적용같은 다양한 개선작업을 거쳤다.
유럽에서는 1962년 말부터 단종수순을 밟음에 따라 마지막 스테이션 왜건이 10월 31일, 마지막 4도어 세단이 11월 13일에 잉골슈타트 공장에서 만들어졌다. 생산기간 동안 아우토 우니온 1000은 3=6에서 물려받은 탁월한 핸들링과 코너링 성능, 내구성과 신뢰성으로 호평받았다.
후속차종은 데카베 F102로, 총 171,008대의 유럽형 아우토 우니온 1000이 만들어졌다.
3.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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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동식 클러치 "Saxomat"가 들어가는 반자동변속기 사양이 옵션으로 제공되었다.[2] 1961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공개한 데카베 2행정 엔진의 윤활유 공급장치. 기존의 2행정 엔진 차량은 주유를 할 때 휘발유에 윤활유를 직접 섞어서 넣어야 했으나, 엔진룸의 별도 탱크에 저장된 윤활유를 보쉬가 개발한 벨트식 펌프로 공급해 이런 노고를 줄이면서 휘발유를 연소시키기에 앞서 윤활유를 정확한 비율로 주입시켜 2행정 엔진 특유의 유독한 푸른빛 배기가스를 줄이고자 했다. 하지만 1962~1963년 사이의 혹한기 속에 윤활유가 제대로 주입되지 않는 문제가 발생, 마찰력이 높아지며 엔진의 크랭크축에 손상을 입는 결함으로 이어져 데카베와 2행정 엔진 자체에 악영향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