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10-01 22:45:24

아랍 공화국 연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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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인물 샤리프 후세인 · 파이살 1세 · 가말 압델 나세르 · 무아마르 카다피 · 미셸 아플라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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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 공화국 연방의 국장 아랍 공화국 연방의 구성국 (이집트, 시리아, 리비아)

아랍어: اتحاد الجمهوريات العربية
영어: Federation of Arab Republics

1. 개요2. 역사3. 관련 문서

1. 개요

리비아, 이집트, 시리아가 제안했던 근동 아랍국가연합.

1958-61년간 실현되었던 아랍 연합 공화국과 같은 아랍 공화국들의 연합 국가를 세우려던 시도였다. 다만 3국 모두 1972년 ~ 1977년에 걸쳐 국기를 연방기로 바꾸는 등 일정 수준의 표면적 노력은 보여주었다.

2. 역사

가말 압델 나세르범아랍주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무아마르 카다피가 1969년 리비아의 정권을 잡은 후, 같은해 12월 아랍 혁명 전선을 설립하자 이집트와 수단도 가입했다. 1970년에는 시리아 역시 가입 의사를 밝혔다. 그해 9월, 나세르의 사후 이집트에서 집권한 안와르 사다트아랍 연합 공화국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완전히 통합된 국가보다는 우선 연방을 구성해 보기를 제안했다. 이에 따라 1971년 4월에 리비아, 이집트, 시리아, 수단이 연방 결성을 결의하고 후자의 3국은 리비아의 석유 수익을 분배받았다.

1971년 9월에는 리비아, 이집트, 시리아에서 동시에 열린 '아랍 공화국 연방' (FAR) 결성 국민투표가 각각 98.6%, 99.96%, 96.4%의 찬성률로 통과되었다. 1972년 들어 리비아, 이집트, 시리아 3국은 문서 상단의 아랍 공화국 연방 깃발을 국기로 체택했다. 그해 9월에 카다피와 사다트는 비공식적으로 합병에 서명했다. 하지만 곧 둘 사이의 관계가 악화되며 합의는 유명무실해졌다. 특히 1973년 제4차 중동전쟁 후 사다트가 이스라엘과 협상에 나서자 카다피는 그를 겁쟁이 및 배신자라 비판했다.

결국 1977년 리비아가 자마히리야 체제로 전환, 국기를 녹색 깃발로 바꾸며 연방을 탈퇴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78년에는 시리아의 대통령 하페즈 알아사드가 사다트의 이스라엘 수교 계획에 반발하며 연방을 탈퇴하고 2년뒤인 1980년에 아랍 연합 공화국 시기의 별 2개의 삼색기를 다시 국기로 체택했다. 이집트는 1984년에야 연방 탈퇴 및 해체를 선포, 현행 이집트 국기를 체택한다.

3.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