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6-05 19:29:26

아디다스/축구화

1. 개요

아디다스에서 생산한 축구화에 대한 문서. 본 문서는 1949년 현재의 아디다스가 설립된 이후의 축구화만을 다룬다. 그 이전의 다슬러 형제 신발 공장 (Gebrüder Dassler Schuhfabrik)은 푸마아디다스 공동의 역사이므로 별도의 문서에 서술한다.

2. 역사

2.1. 1994년 이전

1949년 다슬러 형제 중 동생인 아돌프 다슬러가 아디다스를 설립하면서 아디다스와 푸마는 완전히 갈라져 나오게 된다. 같은 해 아디다스는 그 유명한 삼바(Samba)를 출시한다.[1] 삼바의 개발 목적은 유럽의 추운 겨울에 사용 가능한 축구화를 만드는 것이었다. 이에 아디다스는 스터드를 없애고[2] 단단하게 얼어붙은 잔디밭에서 마찰력을 제공할 수 있도록 신발 바닥을 고무로 만든다.[3] 뿐만 아니라 아웃솔에 흡착판 같은 형태로 홈을 파 놓아 얼음에서 덜 미끄러지게 제작했다. 어퍼는 캥거루 가죽으로 만들어져 물이 스며드는 것을 방지하는 기능도 있었다.
다음 해인 1950년은 2차 대전 이후 처음으로 월드컵이 열리는 해였다. 비록 서독은 전쟁에 대한 책임으로 출전하지 못했지만, 다른 대표팀 선수들에게 삼바를 제공하면서 1950 FIFA 월드컵 브라질에서 아디다스는 새 축구화를 세상에 선보였고, 브라질에 딱 어울리는 "삼바"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 적중해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

아디다스의 이름을 널리 알린 모델이었으나, 사실 삼바는 얼음판에서나 좋은 축구화였지, 여름의 브라질 같이 잔디가 무럭무럭 자라는 환경에는 걸맞지 않는 축구화였다.[4] 이에 다음 대회인 1954 FIFA 월드컵 스위스를 앞두고 아디다스는 1953년 스터드를 다시 복귀시킨 아르헨티나(Argentina)를 출시한다. 아르헨티나의 가장 큰 특징은 스터드를 교체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이는 결승전에서 큰 차이를 만드는데, 1954년 월드컵 결승전 당일은 비가 와 경기장이 진흙탕이 되어 있었고, 이 경기장에서 세계 최강팀 매직 마자르 군단의 헝가리[5]와 당시만 해도 월드컵에서 뚜렷한 성과가 없던 서독이 맞붙었다. 서독 선수단은 전원 아디다스 아르헨티나를 신어 이날 경기에서 스터드를 긴 것으로 교체했지만, 헝가리 선수단은 상대적으로 짧은 스터드에 진흙이 껴 계속 미끄러지기 일쑤였다. 결국 서독은 3:2로 승리하며 기념비적인 첫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이 경기는 훗날 베른의 기적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된다.[6]

1960년대부터 아디다스는 본격적으로 축구화를 다변화하기 시작한다. 유명 선수들을 후원하고, 다양한 가격대의 제품을 출시하는 등급제를 시행하며 현대적인 판매 전략이 세워진다.
이 시기의 축구화에 대해서는 정보가 많이 남아 있지 않은 데다,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만들어진 모든 축구화를 나열하기는 어려우나, 60~80년대의 대표적인 모델을 나열하자면

60년대 후반~70년대 초반의 멕시코 시티와 아디다스 2000, 페냐롤 등의 모델과 80년대의 스트라토스, 1962년부터 1990년까지 4년마다 업데이트된 월드컵 시리즈, 그리고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축구화 코파 문디알 등이 있다.
뿐만 아니라 프란츠 베켄바워, 칼하인츠 루메니게, 파울 브라이트너, 한지 뮐러, 게르트 뮐러 등 당시 독일 대표팀의 유명 선수마다 이름을 딴 모델이 하나씩 존재했었다.

94년 이전까지의 아디다스 축구화들은 아웃솔을 제외하면[7] 어퍼 부분은 거의 동일한 형태로 제작되었다.[8] 모델들 간의 차이점이라면 어퍼의 소재[9]나 바느질 패턴, 삼선 로고의 디자인 정도였지, 현대의 축구화들처럼 실루엣이 제각각 다르게 출시되지는 않았다. 이는 당시 축구 이외의 아디다스 제품들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코파 문디알(축구화)과 삼바(풋살화), 가젤(러닝화), 슈퍼스타(농구화), 스탠 스미스(테니스화) 등 전 종목에 거쳐 출시한 신발들이 거의 동일한 디자인 문법으로 제작되었다.

2.2. 1994년~2015년

월드컵 시리즈가 큰 틀을 잡은 이래로 거의 디자인이 변하지 않았던 아디다스는 1994년 프레데터의 출시와 함께 완전히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간다. 1994년의 프레데터 컵은 악어 비늘마냥 고무 돌기를 얹고 있는 모습이었다. 스핀이라는 컨셉을 적용한 것으로도 아디다스의 축구화들 중 최초였다. 뿐만 아니라 1년 내지 2년 간격으로 새로운 세대를 출시하며 디자인도 계속 바꿔나가는 현대적인 축구화 마케팅을 처음으로 적용한 축구화이기도 했다.

2004년, 경량 축구화 F50가 출시된다. 첫 2년 간은 F50도 천연가죽으로 만들어졌으나, 튜닛 시리즈를 시작으로 인조 소재가 사용되어 무게가 획기적으로 줄어든다. F50 시리즈는 조립식 스터드, 획기적인 무게 등으로 2014년 단종까지 큰 사랑을 받았다.

2007년 코파 문디알과 월드컵 시리즈에서 영감을 받은 아디퓨어가 출시되었다. 2년 후 출시된 프레데터 X가 천연 가죽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으면서 아디퓨어는 아디다스 유일의 천연가죽 사일로가 된다.

2013년 "왕성한 활동량을 가진 미드필더"를 위한 나이트로차지가 출시되었다.

2015년 이전까지는 아디다스가 점차 축구화에 컨셉을 만들어나가는 시기였다. 처음에는 그저 새로운 모델로 출시되었던 프레데터가 2000년대에는 슈팅, 2010년대를 지나며 컨트롤 사일로가 되고, 천연가죽의 클래식함을 대표하는 아디퓨어, 스피드의 F50가 출시되는 등 아디다스는 사일로 별로 컨셉을 확실히 만들어나갔다.

2.3. 2015년~2024년

2015년, 아디다스는 축구화 사일로를 크게 업데이트한다.
프레데터, F50, 아디퓨어, 나이트로차지의 4개 사일로를 전부 단종시키고, X, 에이스, 메시의 3개 사일로가 새로 출시되었다.
X는 F50을 이어받아 '스피드'와 '혼란'이라는 컨셉으로 출시되었다.
에이스는 프레데터[10]를 대체하는 '컨트롤' 사일로다.
메시리오넬 메시를 위한 사일로로, 메시를 제외한 프로 선수들에게는 일반적으로 지급되지 않았으며, 기존에 메시가 신던 F50의 변형에 가까운 축구화다. '어질리티'라는 컨셉으로 출시되었다.

2.4. 연표

시기스피드슈팅터치컨트롤어질리티클래식
1982~1994파일:copalogo.png파일:copalogo.png
1994~2004없음파일:predator.png없음없음없음
2004~2006파일:아디제로.png
2006~2012파일:adp.jpg
2012~2013없음
2013~2015파일:나이트로차지.png파일:predator.png[11]]
2015~2017파일:아디다스 X 로고.jpg없음파일:아디다스에이스.png파일:메시.png
2017파일:copalogo.png파일:nemeziz.jpg
2018~파일:predator.png[12]]


[1] 현재는 패션 아이템으로 너무도 유명한 삼바지만, 그 시작은 축구화였다.[2] 2차 대전 이전에도 다슬러 형제의 축구화에는 스터드가 달려 있었는데, 이를 아예 없앤 것이었다.[3] 이를 껌처럼 딱 달라붙는다 하여 "Gum Sole"이라 부른다.[4] 삼바는 1970년대 풋살이 유행하면서 제 2의 전성기를 맞는다. 체육관 바닥에서 공을 차기에는 이만한 신발이 없었기 때문.[5] 1950년대 초반의 헝가리 대표팀은 역대 최강의 대표팀을 꼽을 때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팀이다.[6] 그러나 이 경기의 향방을 가른 결정적 요인은 축구화가 아니었다. 자세한 내용은 베른의 기적 문서 참조.[7] 사용 가능한 경기장에 따라, 최상급인지 보급형인지에 따라 스터드의 소재나 개수, 배치 등이 달랐다.[8] 간혹 가다 발목이 농구화처럼 높이 올라오는 리버풀 시리즈 같은 축구화가 있었으나, 이 디자인은 얼마 가지 못해 사라진다.[9] 그마저도 인조가죽이 없던 시대라 캥거루 가죽이냐 소가죽이냐, 소가죽이면 가공 퀄리티가 어느 정도냐 수준으로 나뉘었다.[10] 정확히는 단종 직전의 프레데터[11] 후에 프레데터가 에이스의 뒤를 잇는 컨트롤 사일로로 출시되지만, 사실 이때부터 컨트롤 사일로로 변화하고 있었다[12] 20여년간 슈팅 사일로를 책임지던 프레데터의 이름을 가져오긴 했으나, 완전히 다른 축구화라 봐도 무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