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의 前 축구선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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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eeeee,#191919><colcolor=#000000,#e5e5e5> 이름 | 스테판 앙쇼 Stéphane Henchoz | |
출생 | 1974년 9월 7일 ([age(1974-09-07)]세) | |
스위스 프리부르주 빌렌스헤넨스 | ||
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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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 키 184cm | |
직업 | 축구 선수 (센터 / 은퇴) | |
주발 | 오른발 | |
소속 | <colbgcolor=#eeeeee,#191919><colcolor=#000000,#e5e5e5> 선수 | FC 뷜 (1989~1992 / 유스) 뇌샤텔 크사막스 FCS (1992~1995) 함부르크 SV (1995~1997) 블랙번 로버스 FC (1997~1999) 리버풀 FC (1999~2005) 셀틱 FC (2005) 위건 애슬레틱 FC (2005~2006) 블랙번 로버스 FC (2006~2008) |
감독 | 블랙번 로버스 FC U-18 (2008~2009) FC 뷜 (2009~2010) 뇌샤텔 크사막스 FCS (2015~2019 / 수석 코치) 뇌샤텔 크사막스 FCS (2019 / 임시) FC 시옹 (2019) 뇌샤텔 크사막스 FCS (2020) 올랭피크 리옹 (2022~2024 / 스카우트) | |
행정가 | FC 로잔스포르 (2024 / 고문) | |
국가대표 | 72경기 (스위스 / 1993~2006) |
1. 개요
스위스의 前 축구 선수.2. 클럽 경력
스위스의 FC 뷜에 입단하여 유소년 시절을 보낸 뒤, 뇌샤텔 크사막스 FCS에 입단하여 본격적인 프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커리어 초창기에는 미드필더로 뛰었으며, 1991년 12월 11일 17세의 나이로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레알 마드리드 CF를 상대로 84분 교체 투입되며 프로에 데뷔했다.이후 독일 분데스리가의 함부르크 SV로 이적하여 2시즌을 뛰었다.
2.1. 블랙번 로버스 FC
1997년 6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가 앙쇼의 영입에 관심을 가졌으나 발목 골절 부상에서 회복한 직후였기에 맨유 측이 확신을 갖지 못했고, 결국 £3m의 이적료로 블랙번 로버스로 이적했다. 뇌샤텔 크사막스와 스위스 대표팀을 맡았던 로이 호지슨 감독의 조언이 이적에 결정적이었다고 한다.이후 1997-98 시즌에 성공적으로 데뷔하여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단기간에 팀의 핵심 선수로 떠오르며 팀의 6위 안착을 이끌었다.
그러나 1998-99 시즌, 블랙번 올해의 선수에 뽑혔지만, 개인 활약과는 별개로 팀이 부진 끝에 강등되는 것을 막지 못했다. 팀이 강등되면 이적을 허용하는 조항이 계약에 있었기에 결국 시즌이 끝나고 이적하게 되었다.
2.2. 리버풀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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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풀의 미니 트레블을 견인한 센터백 듀오 |
1999년 여름, £3.5m의 이적료로 리버풀에 합류하였다.
1999-00 시즌이 시작된 직후, 사타구니 부상 수술로 세 달 가량 결장했다. 그러나 복귀한 이후 제라르 울리에 감독의 신임을 받아 곧바로 사미 히피아와 함께 리버풀의 주전 수비수로 발돋움했다.
2000-01 시즌에도 히피아와 공고한 센터백 듀오를 형성했고, 리버풀의 미니 트레블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해당 시즌 팀의 63경기 중 53경기에 출전하며 EFL컵, FA컵, UEFA컵 결승전에 모두 선발 출전했다. 특히 아스날 FC을 상대한 FA컵 결승전에서 철벽같은 수비를 앞세워 팀의 우승에 기여했다. 그러나 해당 경기 17분 티에리 앙리의 슛을 손으로 막아내고 후반전에도 손을 쓰면서 '핸드앙쇼'라는 별명이 생기기도 했다.
2001-02 시즌에도 계속해서 좋은 모습을 보이면서 팀의 프리미어 리그 2위를 이끌었다.
2002-03 시즌부터는 장기 부상으로 신음하면서 리그 19경기 출장에 그치는 등 다소 내구성에서 아쉬운 모습을 보였다.
2003-04 시즌에는 전반기에 다시 히피아와의 파트너십이 제 모습을 되찾는듯 했으나, 2004년 1월 사타구니 부상과 발목 부상이 재발하면서 다시 팀에서 장기 이탈하게 되었다.
2004-05 시즌에는 라파 베니테스 감독이 부임하면서 제이미 캐러거를 히피아의 짝으로 낙점하게 됨에 따라 자연스럽게 주전에서 밀려났다. 이에 이후로는 오른쪽 풀백으로 출전하는 빈도가 늘어났다. 이후 결국 2005년 여름 계약 만료를 앞두고, 겨울 이적 시장에서 이적을 결정했다.
2.3. 셀틱 FC
2005년 1월, 6개월 계약으로 셀틱에 합류했다. 그러나 이후 계속된 부상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고, 2005년 여름 계약 만료로 팀을 떠나게 되었다.2.4. 위건 애슬레틱 FC
셀틱 계약이 만료된 후, 다시 프리미어 리그 복귀를 결정하여 새로 승격한 위건 애슬레틱과 1년 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다시 부활하여 2005-06 시즌 내내 좋은 모습을 보이며 리그 26경기에 출전하여 팀의 돌풍을 이끌었다. 2006년 EFL컵 결승전에서도 선발 출전했으나 준우승에 그쳤다.2.5. 블랙번 로버스 FC 2기
2006-07 시즌에는 블랙번 로버스로 복귀했고, 꽤 괜찮은 퍼포먼스를 보였다. 그러나 결국 계속되는 부상에 의해 꾸준히 선발로 활용되기는 힘든 몸상태였기에 로테이션 멤버로만 활약했다.결국 2007-08 시즌이 끝난 이후, 팀과 이별했고 2008년 10월 13일에 선수 은퇴를 발표했다.
3. 국가대표 경력
스위스 연령별 대표팀을 거쳐 1993년 1월 23일, 18세의 어린 나이로 대표팀에 데뷔했다. 이후 2005년까지 총 72경기를 소화했다.UEFA 유로 1996에서는 조별 리그 1차전 잉글랜드를 상대로 선발 출전하여 철벽같은 수비를 보여주며 1-1 무승부를 견인했다. 그러나 이후 2경기를 연달아 패하며 본선 토너먼트 진출에는 실패했다.
이후 1999년부터는 대표팀 주장으로도 종종 활약했으나 유로 예선을 통과하지 못하여 UEFA 유로 2000에는 참가하지 못했다.
UEFA 유로 2004에서는 계속된 부상으로 인해 완전히 주전 자리를 잡지는 못했고, 조별 리그 3경기 중 선발 출전 1경기를 포함해 총 2경기를 소화했으나 본선 토너먼트 진출에는 실패했다.
이후 2005년 월드컵 지역 예선 프랑스전을 마지막으로 더이상 소집되진 못했고, 이후 대표팀에서 은퇴했다.
4. 지도자 경력
2008년 10월 은퇴 후, 2009년 6월까지 블랙번 로버스의 U-18 팀 감독을 맡았다. 이후 2009-10 시즌에는 유소년 시절 몸담았던 FC 뷜의 감독으로 부임했다.2015년 12월에는 친정팀 뇌샤텔 크사막스의 수석 코치로 임명되었다. 2019년 2월 6일, 미셸 데카스테 감독이 경질되자 임시 감독으로 팀을 이끌었다. 이후 시즌이 끝난 뒤 팀을 떠나게 되었다.
2019년 5월 27일, 2019-20 시즌을 앞두고 FC 시옹의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2019년 11월 4일 부진 끝에 자진 사임으로 물러났다.
2020년 7월에는 뇌샤텔 크사막스의 감독으로 다시 복귀했지만, 전반기에 경질되었다.
이후 2022년부터 2024년까지 올랭피크 리옹의 스카우트로 일했다가 FC 로잔스포르의 경영 고문으로도 잠깐 일했다.
5. 기록
5.1. 대회 기록
5.2. 개인 수상
- 블랙번 로버스 FC 올해의 선수: 1998-99
- 스위스 올해의 축구 선수: 2001,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