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8 21:38:34

숙변

1. 개요2. 실체

1. 개요

宿便 / coprostasis, fecal stasis

배출되지 못하여 뱃속에서 묵은 변을 뜻한다. 즉 오래된 변으로서 변비에 걸려 제시간에 배변 활동이 이루어지지 않은 변을 가리키는 말로 주로 변비가 심할 때 생긴다고 한다.

2. 실체

의학적으로 보면 말도 안 되는 개념이다. 장 자체가 연동운동으로 계속 움직이고 장 내벽은 점액질로 덮여 있어 미끈거리는 데다가 세포 분열로 내벽이 끊임없이 교체되기 때문에 숙변이 자리잡을 수가 없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인체검사 끝판왕인 내시경으로 봐도 그런 건 없다.

여기서 개념이 애매할 수 있어서 정리해보자면, 장기간 변비에 시달려 배출되지 못한 변은 피부 트러블을 야기하고 장내 가스가 차는 등의 문제를 가져오고 배출 시 항문 손상을 가져올 수 있기에 이는 가능한 제때 배출해야 하는 변이 맞다. 그러나 약팔이 등이 주장하는 숙변은 보통 “정상적으로 배변을 했는데도 장 안에 숨어서 배출되지 못한 변이 있다”는 의미로 사람을 낚는 데 사용되며, 이에 해당하는 숙변은 없다는 것이다. 당연히 전자의 경우는 채소의 섭취, 규칙적인 생활습관으로 개선하여 배출하는 게 몸에 이롭다.

이전부터 주장되던 개념이나, 디톡스 다이어트 등 상업적으로 해당 개념이 적극 활용되면서 마치 의학적으로 인정되는 전문용어인 양 쓰이기 시작했다. 대중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잘 믿지 않기 때문에 디톡스 다이어트 상품에 있어서 가장 단기간에 확실하게 물질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게 바로 대변이었다. 더욱이 다이어트 상품의 주 타겟인 10~30대 여성들은 여성호르몬과 다이어트로 인해 상당수가 변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숙변'이라는 개념을 도입한 홍보는 성과가 좋았다. 자신들이 겪고 있는 변비가 복잡한 사회 속에서 생기는 독소들 탓이라고 이야기 해주는 것이 이들의 귀를 솔깃하게 한 것. 사실 광고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면 디톡스 다이어트 등에서 말하는 이른바 숙변 제거와 변비 환자들에게 조언해 주는 내용에는 실질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 숙변이라는 낱말의 뜻을 상품 판매를 위해서 바꿔치기 한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변비 치료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

결국 '장내 남아 있는 대변 찌꺼기'라는 개념을 사용하는 건 유사과학이자 사기에 가깝다. 그냥 상품을 팔아먹기 위한 허위광고라고 보면 된다. 건강보조식품류 자체가 워낙 미신에 가까운 유사의학적 개념을 광고해 팔아먹는 게 일상이다 보니 묻힐 뿐.

한때 숙변을 제거한답시고 단식원 들어가서 미음만 먹고 살이 쪽 빠져서는 건강해진 줄 알고 좋아했다면 그거 다 헛짓거리였다는 소리. 사실 음식물을 먹지 않아도 은 나온다. 대장균의 사체와 죽은 장벽 세포가 똥이 되어 나오기 때문. 이것 때문에 숙변이 있다는 속설이 널리 퍼진 듯. 정상적으로 음식물을 먹고 배설하는 경우 수분을 제외한 대변 무게의 3분의 1은 대장균이다.

숙변과는 별개로 대장 벽에 안쪽으로 들어간 조그마한 혹 같은 공간(게실)이 생겨 이곳에 똥이 저장되어 각종 문제가 발생하는 질환을 게실염이라고 한다. 자료 사진을 보면 절제한 대장의 바깥쪽에서는 둥그런 혹처럼 튀어나와 있고 안쪽에서 내시경으로 보면 분명 관장한 깨끗한 대장임에도 불구하고 게실 안에 암갈색 똥이 들어차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숙변을 반박함에 있어 이 게실염을 근거로 드는 경우가 있으며, 그 대표적 사례로 유사과학 탐구영역이 있다. 게실염은 상당히 위험한 질환으로, 경우에 따라선 장폐색, 패혈증[1] 같이 생명을 위협하는 질환을 수반하기도 하는데, 이 게실염의 원인은 아주 작은 게실 속에 들어찬 극미량의 대변이다. 미량의 대변이 제대로 배출되지 않는 정도로도 사람이 죽을 수 있으며, 그렇지 않더라도 심각한 불편함과 질병을 앓게 된다. 즉, 약장수들이 말하는 것처럼 대량의 숙변이 장 내에 고여서 배출이 안 되는 상황인데 약 먹겠답시고 방치하면 사망에 이른다. 숙변 제거제 먹을 시간적 여유 같은 것은 아예 없고, 병원 응급실로 달려간 후 당장 대장 내 세척을 해야 하는 위급 상황이다.

숙변 학설이 널리 퍼졌을 때는 숙변을 없앤답시고 멀쩡한 결장을 잘라버리는 정신나간 수술이 유행하기도 했다.

아직도 적지 않은 수의 한의사들이 숙변 개념을 관성적으로 지지한다고 오해 받기도 하지만, 어느 의서에도 발견되지 않는 내용이므로 한의학계에서조차 정식으로 인정된 적이 없는 개념이다.


[1] '장 게실염에 동반된 녹농균 패혈증에 의한 문맥염 및 간 농양 1예' 문윤권, 손성완, 김민아, 김인수, 김용희, 정일순, 고병성. 대한소화기학회지. Vol. 67 No. 6 (2016) pg. 327, 5 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