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24 04:09:55

송국리식 토기

파일:songgukri.jpg
1. 개요2. 송국리 유형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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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청동기 시대 유적 중 하나인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송국리 일대에서 출토된 민무늬 토기.

오늘날 충청도전라도서부 지역에서 주로 만들어지고 사용된 토기이며, 재질은 이다.

2. 송국리 유형 문화

고고학계는 기원전 15세기부터 기원전 4세기 무렵까지를 '청동기 시대'로 보는데, 청동기 시대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송국리 유형의 등장이다.

송국리 유형이란 현재의 충청남도 부여군 송국리 유적에서 발견된 독특한 구조의 주거지와 송국리식 토기를 표지로 설정된 개념이다.

거주지로는 중앙의 타원형 구덩이 양단에 2개의 기둥구멍이 설치된 원형 집자리를 보이며, 토기는 당연히 송국리형 토기가 주이다. 묘제로는 고인돌(지석묘), 돌널무덤(석곽묘), 움무덤(토광묘), 독무덤(옹관묘) 등 다양한 유형이 나타난다.

송국리유형의 발생 시점에 대해서는 기원전 10세기 무렵이라는 주장이 현재로서는 유력하다. 유적이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서부 지역에 집중되었다가 앞선 시기 문화상을 확실히 대체하며 거의 모든 남한 지역에 퍼져나갔다는 것은 어느 정도 학자들의 견해가 일치한다. 송국리 유형 문화는 경기도와 강원도 지역에서는 발견 예가 적으며, 북한 지역으로 가면 발견되지 않는다.

흥미롭게도 한반도에서 송국리문화의 대형취락이 일제히 사라질 무렵 일본에서 야요이인들이 출현하는데, 야요이인들의 초기 문화 유형은 바로 이 송국리 문화 유형과 상당한 유사점이 있으며, 실제로 송국리 문화를 영유하던 집단은 일부 일본열도로 직접 이주한 것으로 보인다. 이 당시 한반도에 살던 주민이 일본 열도로 이주했다는 사실 자체는 유전학적으로도 증명되고 있는데, 더 나아가 반도 일본어설을 지지하는 일부 역사 언어학자들은 이 송국리 유형 문화 유적을 원시 일본어족의 표지 유물로 간주하여, 이들이 일본어족의 기원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다만 실제로 야요이문화는 '송국리문화' 이외에도 그 이후의 초기 철기시대의 핵심적인 표지 유물인 세형동검을 위시한 여러 계통의 한반도문화를 흡수한 것이며, 더 나아가 야요이문화와 송국리문화 간의 관계를 연구한 대표적인 고고학자인 이홍종은 야요이문화의 시작은 전형적인 송국리문화라기보다는 송국리문화를 일부 수용한 열세문화 집단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본다는 점(이홍종, 송국리문화의 시공적 전개, 호서고고학회)에서 송국리문화를 야요이문화와 완전히 동일시하는 견해는 문제의 여지가 있다. 많은 오해와 달리 한반도 남부의 송국리 문화조차도 특정한 집단이 직접적인 이주로 인하여 확산된 것만은 아니며, 다른 지역과 교역 관계 등을 통해 해당 재지 주민이 적극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재지문화와 결합, 전파된 경우도 상당하다. 따라서 한국 고고학계에서 송국리문화가 야요이문화에 끼친 지대한 영향을 강조하면서도 양자의 차이를 구별하는 것에는 이와 같은 이유가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 즉, 애당초 송국리문화는 말 그대로 이주, 전파, 파급 등 다양한 형태로 확산되었던 일정한 문화양상에 가까울 뿐, 이 문화를 향유하던 이들 간에 반드시 어떤 인적, 언어적 연관관계가 있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종래에는 기원전 4세기라는 시점에만 주목, 바로 이 시기에 한반도 점토대토기문화의 개시와 일본열도의 야요이문화의 시작이 동시에 이루어졌다고 보고, '기존의 한반도 남부 주민들이 점토대토기문화에 밀려서 일본열도로 건너가 야요이문화를 개시했다'와 같은 자극적인 주장이 유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초기철기시대 전후의 문화양상은 그리 극적이지 않고, 또 상당기간 송국리문화와 점토대토기문화가 우호적으로 공존했음이 밝혀지고 있으며, 점토대토기문화의 유입 연대 역시 기원전 6세기까지 올라간 상황이다. 마찬가지로 최근에는 야요이문화 역시 개시 연대를 기원전 9세기까지 올려보는 연구도 있는데, 이 때 야요이문화 초창기에는 송국리문화가 아닌 그 이전 한국 청동기시대 전기에 유행한 각목돌대문토기가 나타난다는 점에서 송국리문화의 직접적인 이주의 결과라기보다는 간접적인 파급의 결과로 보기도 하며 (이홍종, 야요이토기와 무문토기의 실연대) 또한 송국리문화를 포함한 다양한 문화계통 주민들이 시차를 두고 이주한 데다가 죠몬계통을 위시한 선주민 문화와의 결합, 이들이 송국리문화의 요소를 선별적이고 차별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야요이 문화라는 새로운 문화가 탄생하게 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이정은, 규슈지역 송국리문화의 확산과 문화변동)

따라서 송국리문화가 야요이문화에 상당히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은 결코 부인할 수 없지만, 야요이문화를 송국리문화의 일종 내지 변형으로만 간주하는 견해는 상당한 비약이 포함돼 있음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